소설과 에세이로 여름 나기…휴가 때 뭘 읽어볼까

김용래 2023. 7. 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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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 '꿀벌의 예언', 히가시노 게이고 '매스커레이드 게임' 등 장르소설 풍성
현기영 대작 '제주도우다' 도전해 볼만…단편집 '연수', '너무나 많은 여름이'
지친 심신 보듬는 에세이집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이번 여름휴가에 그동안 분주한 일상에 쫓겨 읽지 못한 소설이나 에세이에 눈을 돌려보는 건 어떨까.

속도감 있게 읽히는 소위 '페이지 터너'(page-turner) 책들이 여름 휴가철 특수를 맞아 잇따라 나왔다. 출판사들은 더위를 날릴 만한 다채로운 소재의 소설과 에세이 라인업을 준비해뒀다.

[각 출판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개미'와 '타나토 노트' 등으로 한국에서 유독 인기가 높은 SF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꿀벌의 예언'(열린책들)이 먼저 눈에 띈다.

이 책은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으로 꿀벌이 사라져버리고 제3차 세계대전까지 발발한 참혹한 미래를 엿본 주인공 르네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펼치는 모험담이다. 인류를 구할 방법이 적힌 고대의 예언서를 찾아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르네와 그 일행은 과연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작가는 중세 시대에 활약했던 성전기사단이 21세기에 벌어진 세계대전을 끝낼 비밀이 적힌 예언서를 가지고 있다는 설정 등 역사적 상상력을 곁들여 흥미로운 역사 판타지 소설을 만들어냈다.

무더운 여름밤에는 귀신 이야기만 한 피서도 없다.

'저주토끼'로 지난해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올랐던 정보라의 소설집 '한밤의 시간표'(퍼플레인)는 야간의 한 연구소에서 벌어지는 괴이한 이야기다.

작품 속 연구소는 귀신 들린 물건들이 즐비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복도나 계단이 수시로 등장하며, 환청과 환영을 듣고 보게 되는 괴담의 공간. 연구소 직원들은 한밤의 시간표에 따라 순찰 근무를 하는데, 인간이 시간표나 안전 수칙을 어기고 무엇인가를 하려 들 때 그것은 저주가 되어 돌아온다.

도시괴담을 소재로 한 8편의 단편을 묶은 '영원히 알거나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된다'(은행나무)도 있다.

2000년대를 휩쓴 빨간 마스크 괴담, 어디에서 나를 지켜보는지 파악할 수 없는 몰래카메라, 폐쇄된 공동체에서 일어난 실종사건과 대낮 도심의 초자연적 존재까지, 강화길·김멜라·정지돈 등 8명의 작가는 우리 삶과 너무도 가까워서 더욱 섬뜩한 도시 괴담의 세계로 독자를 이끈다.

[각 출판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장편 미스터리 스릴러들도 풍성하다.

한국에서 특히 인기가 많은 일본의 추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스커레이드 시리즈'의 완결판 '매스커레이드 게임'(현대문학)은 크리스마스를 맞은 고급호텔 코르테시아 도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살인 사건 이야기다.

객실의 닫힌 문 안에서는 살인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마구 뒤섞이고, 가면 속에 숨겨진 과거의 비밀들이 하나둘씩 밝혀진다. 히가시노가 창조한 캐릭터 중 특히 독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온 엘리트 형사 닛타 고스케가 타고난 호텔리어인 파트너 야마기시 나오미와 함께 경쾌하게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더 게임'(문학동네)은 등단 40년이 된 소설가 김인숙이 처음으로 쓴 장편 추리소설이다.

1994년 애인과 데이트를 하던 중 칼부림 사건에 휘말린 주인공 황이만은 22년 뒤 낯선 아이디로부터 의문의 메일을 한 통 받는다. 메일에는 한 소년이 피 웅덩이 위에 쓰러진 섬뜩한 그림이 첨부돼 있고, TV에서는 22년 전 그가 피격된 골목에서 백골 사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보도된다. 범죄 피해자와 퇴직 형사 콤비가 충격적인 진실에 접근해가는 과정이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제목만으로도 휴가를 떠난 이들을 유혹하는 김사과의 '바캉스 소설'(문학동네)도 눈에 띈다.

지구온난화로 제주도가 열대지역으로 변해버린 머지않은 미래. 세계적인 금융 컨설팅 기업에서 일하던 이로아는 주식투자를 통해 경제적 자유를 이룬 뒤 제주의 최고급 리조트로 휴가를 떠난다. 밤마다 잠을 설치던 이로아는 어느 날 한밤중에 나타난 여자아이의 환영을 보고,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되지 않는 기억을 되살려 산길을 헤맨다. 첨단 금융 자본주의에 포획당한 현대사회와 직장인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에 더해 끊임없이 궁금증을 일으키는 스토리 전개가 흥미롭다.

[각 출판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장르소설은 아니지만 부담 없는 길이에 여운을 남기는 신작 단편집들도 있다.

장류진의 '연수'(창비), 김연수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레제) 눈에 띈다.

30대 화이트칼라 직장인들 사이에 고정 독자층을 거느린 장류진의 신작 '연수'(硏修)에 실린 여섯 편의 단편은 직업 세계에 대한 정밀한 묘사와 입에 짝 달라붙는 찰진 대사가 어우러져 속도감 있는 독서 체험을 선사한다. 분주하고 팍팍한 일상에 지친 청년 세대에 건네는 경쾌한 위로가 돋보이는 소설집이다.

'너무나 많은 여름이'는 소설가 김연수가 전국의 도서관과 서점 등지에서 진행한 낭독회에서 낭독하고 고쳐 쓴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생의 한 단면을 예리하게 잘라내 툭 던져 보여주는 단편들이 독자를 멈칫하게 만든다. 수록된 단편들의 길이가 짧아서 기차나 비행기 등으로 이동하며 호로록 읽기 좋다.

휴가라고 해서 꼭 가볍고 속도감 있는 소설만 좋은 건 아니다.

집이나 휴가지 숙소에 콕 틀어박혀 호흡 길고 진중한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면 원로작가 현기영의 세 권짜리 역작 '제주도우다'(창비)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부터 4·3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근현대사를 4·3의 비극으로부터 살아남은 '안창세'의 목소리로 젊은 세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지금은 유명 휴가지로 탈바꿈한 제주 조천리를 공간적 배경으로 작가는 11세 소년 안창세가 16세가 되는 5년 동안 제주에 불어닥친 광풍과 격변의 현대사를 직시한다. 작가 특유의 힘 있는 서사와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을 통해 해방공간 제주 젊은이들의 열망과 좌절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특히 이번 여름 휴가지로 제주를 택한 독자라면 이 소설을 통해 수려한 제주의 풍광의 이면에 한국현대사의 가장 아픈 상처가 도사리고 있음을 되새겨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각 출판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소설 말고 소설가가 쓴 배꼽 잡게 웃긴 에세이도 여름휴가엔 제격.

'대도시의 사랑법' 등 주목받는 소설을 써낸 박상영의 신작 에세이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인플루엔셜)은 작가가 데뷔 후 최근까지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 중 휴식과 여행을 테마로 한 글들을 모으고 다듬었다.

보수적인 지방 도시에서 자란 작가가 청운의 꿈을 품고 상경했지만 기대와 어긋나버린 서울살이, 도피하듯 친구와 떠난 첫 유럽 배낭여행, 작가로 이름을 알린 뒤 제주 최남단 가파도에서 보낸 한 철 등 사람과 여행, 일과 쉼에 관한 이야기들이 담겼다. 작가 특유의 수다스러운 입담과 촌철살인의 유머가 쉴 새 없이 이어져 읽는 내내 재미있는 친구 하나를 새로 사귄 느낌이 들기도 한다.

폭넓은 여성 독자층을 거느린 에세이스트 황선우·김혼비의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문학동네)도 그동안 최선을 다해 일상을 영위하고 휴가를 막 떠난 이들에겐 안성맞춤이다.

최선을 다하지 말자는 다짐은 몸과 마음이 지치고 다치지 않도록 서로의 안녕도 세심하게 물어보고, 함께 좀 웃어보자는 뜻. 두 저자가 일과 일상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건네는 유머와 위트 넘치는 말들 속에는 상대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용기를 북돋는 다정한 마음이 담겼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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