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스토리] '태권도'의 고향은 제주도?
['제주스토리'는 제주의 여러 '1호'들을 찾아서 알려드리는 연재입니다. 단순히 '최초', '최고', '최대'라는 타이틀에만 매몰되지 않고, 그에 얽힌 역사와 맥락을 짚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그 속에 담긴 제주의 가치에 대해서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태권도의 발상지가 제주도라는 이야기 혹시 들어보셨나요?
최근 제주자치도의회에서 느닷없이 태권도와 관련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는데, 바로 이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어떤 이야기인지 꼼꼼히 들여다보니, 신빙성이 충분한 내용이었습니다.
주장의 증명력을 뒷받침하는 조형물인 이른바 '주먹탑'도 현재 서귀포시에 남아 있습니다.
어찌 보면, 제주도 1호인 동시에, 전 세계 1호라고 할 수 있는 태권도 관련 유형 기념물일텐데요.
제주도와 태권도 사이에 얽힌 이야기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 태권도 발상지가 제주도라고?
태권도라는 무술의 연원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가 많습니다.
일련의 몸동작이 점차 정밀해지고 순서와 체계, 격식을 갖춰가는 것이 어느 순간 '무술'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것 일텐데, 그 첫머리를 어느 지점으로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없을 수 없겠죠.
혹자는 우리의 고대 무대로 전해지는 수박(手搏)에서 그 뿌리를 찾거나 조선시대에 쓰인 '무예도보통지'에서 근원을 찾기도 합니다. 근세 중국의 유술(柔術)이나 일본의 가라테로부터 발전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국기원은 태권도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기원전 고조선에서 꺼내 들기도 합니다. 다만, 근세 이전 맨손무예와 해방 이후 현대태권도사와는 구분을 하고 있긴 합니다.
복잡하고 의견이 분분한데요. 그럼에도 '태권도'라는 명칭이 첫 등장한 곳은 비교적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태권도'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하며 보급한 사람, 그러니까 태권도의 창시자로 불리는 사람은 1953년 제주에서 창단된 제29사단의 사단장 최홍희 준장(1918~2002)이었습니다. 29사단은 당시 '태권도사단', '태권부대' 등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 가라테를 수련했고, 해방이 된 이후에는 국내 주요 무도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무도인들이 수련하던 여러 무술을 엮어 태권도를 창시한 인물입니다.
최홍희에 의해 '만들어진' 태권도는 제주에 있는 사단 부대원들에게 보급됐고, 이후 다른 부대에도 군용무술로써 전파됐습니다.
이후엔 태권도 국제화의 초석으로 영문 태권도교본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 "시범으로 큰 태권도"...해외 처음 등장한 순간은?
전 세계 4억 명가량이 수련하는 것으로 알려진 태권도의 국제적 위상은 흔히 "시범으로 컸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해외에서 '태권도'라는 이름을 처음 알린 것은 언제일까요?
바로 최홍희 사단장이 단장으로 있었던 '국군태권도시범단'이 1959년 3월 2일부터 19일 동안 월남과 중국에서 시범을 한 것이 최초라고 합니다.
당시 이 시범으로 해외에 '태권도'라는 이름이 알려졌다는 것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보유한 구술자료에도 이 같은 내용이 남아 있습니다.
국사편찬위 자료에 따르면, 지난 1959년 3월 2일에 최초로 이루어진 '국군태권도시범단'의 해외원정은 1958년 월남의 고딘디엠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전방에 위치한 6군단 29사단의 태권도시범을 관람한 후 이에 감명 받아 자국에 귀국한 뒤에 시범단을 한국 정부에 정식으로 초청함으로서 이뤄졌다고 돼 있습니다.
■ 태권도 탄생한 제주, 그동안 잠잠했던 이유는?
국내에선 태권도의 성지, 발상지를 자처했던 지역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충북 진천과 경주 등이 있는데, 충북진천은 '화랑무예 태권도'라는 슬로건으로, 경주 역시 화랑도의 고장으로서 태권도의 발상지나 다름없다는 식입니다.
대체로 2000년대 초반 태권도공원 유치를 위한 여론전에서 나왔던 주장들인데, 결국 태권도공원은 전북 무주로 가게 됐습니다.
경주는 최근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유치를 위해 다시 태권도의 본고장이라는 주장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제주도는 태권도와 관련해 이야기를 하기 껄끄러운 입장에 처했었습니다.
그 배경엔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는데요.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최홍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의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제태권도연행(ITF) 정순천 위원이 지난달 제주자치도의회에서 열린 정책토론에서 한 발표에 따르면, 최홍희는 일제시기 학도병 출신으로 평양학병 반일동맹 조직을 도모하다 형무소에서 해방을 맞았습니다.
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독립군을 토벌하는 일본 관동군 소위 신분으로 해방을 맞았습니다.
해방 이후 두 사람의 신분이 바뀌어 최홍희는 국군창설요원으로 장군급으로 출발한데 반해, 박 전 대통령은 최홍희 밑에서부터 군생활을 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1961년 5·16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독립군 출신 장성들의 군에서 몰아내는데 이때 최홍희도 군복을 벗고 외국 대사로 떠나게 됩니다.
이후 1972년 최홍희는 독재정권의 탄압을 이유로 캐나다로 망명을 하기에 이릅니다.
그가 총재로 있었던 국제태권도연맹(ITF, 1966년 창설) 캐나다 토론토로 본부를 옮기게 됩니다.
이후 국제태권도연맹 자리는 지금의 태권도계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세계태권도연맹(WT)이 대신하게 됩니다. 세계태권도연맹의 초대 총재는 박정희의 경호를 맡았던 김용운이었습니다.
최홍희는 이후 해외에 태권도를 보급하면서 북한에도 태권도를 보급하게 됐는데 이러한 행보 때문에 '친북인사'라는 멍에를 써야 했습니다.
6·25한국전쟁에 참전해 싸운 참전용사이자 한국형 군용무술을 창시한 사람에 '친북' 딱지가 붙게 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최홍희는 살아생전 '빨갱이 소리를 들어가며 북한을 자주 다닌 것도 결코 남한보다 더 정들어서가 아니라 북한을 통해 올바른 태권도를 사회주의 국가와 제3세계에 보급함으로써 나의 꿈을 실현하자는 데 있었다. 그런 까닭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 고위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아듣도록 '태권도는 어떤 개인이나 국가가 절대 정치적 목적으로 쓸 수 없는 국제무도임'을 뚜렷이 했던 것'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 최초의 태권도 조형물 '주먹탑' 수난사
최초의 태권도 관련 조형물 '주먹탑'은 1954년에 건립됐습니다.
1953년 당시 제주에서 창설된 29사단의 상징탑으로서 세워진 것인데,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수난을 겪기도 했습니다.
탑은 1980년대 누군가의 소행으로 부서졌다가 2000년에 들어서야 복원됐습니다.
현재 복원된 탑(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2820번지) 인근에 세워진 안내판에도 "1985년 누군가에 의해 3등분으로 훼손되어 땅 속에 묻혀 있다가 대정지역에 태권도 공원 유치를 바라는 지역주민들의 염원에 따라 대정읍 개발협회와 상모리연합청년회가 2000년 11월 2일 상모리 2949-5 일대에서 발굴하였고 이듬해 상모리 농남못 앞에 이설하여 소공원 조성과 함께 복원하였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주먹탑은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파괴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제주지역 역사학자인 이영권 선생은 그의 저서 『제주역사 다시보기-왜곡과 미화를 넘어』에서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밝혔다.
그가 지목한 범인은 다름 아닌,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씨.
1985년 11월, 전 씨가 제주도 모슬포 군 비행장을 방문했을 때 깨부쉈다는 것입니다.
그의 저서엔 "전두환이 아니라 전경환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힘은 전두환 못지않았던 모양이다. 그가 방문할 예정이라고 해서 그만 이 탑을 빠개고 묻어버렸다는 것이다. 소위 '친북인사' 최홍희와 관련이 있는 탑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라고 돼 있습니다.
■제주에서 다시 '태권도' 제창된 이유는?
최홍희는 살아생전 '태권도가 통일되면 조국도 통일된다'고 주창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지난달 28일 제주자치도의회에서 태권도와 관련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던 원인도 최홍희의 발언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성용 제주자치도의회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통해 "최근 국기원이 2024년 남북 태권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공동 등재를 추진하는 과정을 접하고, 이럴 때 제주가 '태권도 발상지'로서의 역사적 가치와 북한태권도의 시초가 된 상징성을 '남북평화협력의 매개체'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남북 태권도의 유네스코유산 공동 등재 목소리는 남북 관계가 좋았던 지난 2018년 국제태권도연맹(ITF)와 세계태권도연맹(WT)가 평양에서 협약을 맺으며 나왔던 것입니다.
날로 팽창하는 한반도의 긴장 관계 속에서, 통일부를 이끌 차기 수장 또한 이 긴장감에 기름을 붓는 인사가 임명됐다는 소식이 서울에서 전해져 옵니다.
과거 '비타민C' 외교로 통했던 국내 지방 정부의 대표적 대북교류사업인 제주자치도의 북한 감귤 보내기도 맥이 끊긴 지 올해로 13년이 됐습니다.
제주도가 태권도의 발상지가 된 지 햇수로 70년. 태권도로 남북 평화를 도모하고자 했던 최홍희 선생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때입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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