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펼쳐진 속초 실향민 이야기
◀ 김필국 앵커 ▶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최대의 연극축제가 최근 국토 최남단 제주도에서 열렸는데요.
전국의 내로라하는 극단들이 모여 19일 간 뜨거운 경연을 벌였다고 합니다.
◀ 차미연 앵커 ▶
강원도 대표로 출전한 속초의 한 극단은 실향민 치매 노인 이야기를 무대에 올려 주목을 받았다는데요.
그 현장을 이상현 기자가 찾아가봤습니다.
◀ 리포트 ▶
22년 만에 제주를 찾았다는 대한민국 연극제.
19일에 걸쳐 제주 곳곳에선 크고 작은 연극 관련 행사들이 줄을 이으며 축제 분위기를 한껏 띄웠고, 전국에서 1500여 명의 연극인들이 찾아와 펼쳐보인 공연들은 제주의 여름밤을 시원하게 적셨습니다.
[이상현 기자/통일전망대] "전국 16개 시도의 대표 극단들이 참여하는 이 대한민국 연극제는 올해로 벌써 41년째를 맞았는데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연극제라고 합니다."
[정민자/41회 대한민국연극제 집행위원장] "각 지역의 대표팀을 뽑아서 전국에 있는 어느 한 곳을 지정을 해놓고 거기에서 본선 대회를 치르는, 우리 연극계에서는 최고, 최대의 축제라고 할 수 있죠."
그 가운데 찾아가본 한 소극장.
강원도 대표로 출전한 속초의 한 극단이 공연을 앞두고 있었는데요.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가장 많이 살았던 실향민 도시의 극단답게 그동안 분단과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무대에 올려왔던 팀으로, 이번엔 치매를 앓고 있는 실향민의 이야기를 들고 제주를 찾았습니다.
[김강석/극단 파.람.불 대표(친구 김씨 역)] "저 또한 통일이라든가 실향민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못했었는데 작품을 통해서 강원도 뿐만이 아니라 지금 제주까지 와서 많은 관객 분들에게 이런 소재로 연극을 선보이는 것 자체가 조금 뜻깊은 공연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금세 꽉 채워진 객석 앞에서 나훈아의 노래 '홍시'로 연극은 시작됩니다.
"어우 이게 뭐에요?! 아버님 제발요~!"
치매를 앓는 황노인을 돌보는 문제를 놓고, 대를 이어 순대집을 하는 아들 내외와 이른바 공시생인 손자, 그리고 애주가인 대학원생 손녀가 한바탕 소동을 벌이는데요.
[조은진/배우(손녀 황미래 역)] "제가 어렸을 때부터 살았던 속초집, 옆집에 바로 실향민 할아버지가 사셨거든요. 그 때 뭔가 늘 뒷 모습에 그리움이 남아있고 뭔가 공허한 모습, 그런 잔상들이 지금 연극에서 황노인에게 대입돼서 보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들어선 황노인의 친구 김씨.
"영감탱이가 왜? 노망 나서 똥칠하냐?" "아니,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김씨의 소개로 요양원 대신 황노인을 돌볼 간병인을 집에 들이게 되는데요.
"안녕하세요, 황창주씨 댁 맞죠?" "옥이?!"
간병인 미옥을 황노인은 13살 동갑내기였던 고향 함경도에서의 첫사랑 옥이로 착각했고, 옥이와의 풋풋했던 추억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70여년 전의 황창주로 돌아갑니다.
또 전쟁으로 숨졌던 군인 출신 저승사자와 함께 보이기 시작한 양복 차림의 젊은 남성.
함께 떠난 피난길에서 목숨을 잃었던 서른살의 아버지였습니다.
"아바이.. 아바이~!"
[윤국중/배우(황노인 아버지 역)] "가장 연장자이신 선배님한테 반말을 해야되고 그리고 아들처럼 대해야 한다는 그런 부담감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역할, 그러면 지금 바라보는 아들은 어떤 모습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
고향과 첫 사랑, 그리고 아버지는 치매 노인에게 끝까지 잊혀지지 않는 기억입니다.
"니, 노인네가 와 죽는지 아니?" "나이들면 하나둘씩.." "외로워서, 그리워서 죽디. 그기 사람 말리는기거든."
피난 내려와 만났던 아내를 포함해 주변 대부분이 이미 저승으로 떠났고, 친구 김씨마저 저승사자와 함께 먼저 보내게 된 실향민 황노인에게, 사무친 그리움은 끝까지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원동력입니다.
"사람이 너무 그리우면 시든대요." "그립다는 거이 사람을 못 살게도 하지만 사람을 살게도 한다. 야, 첫 사랑이라는게 모이니? 그냥 그 시절이 그리운 거다. 나한테 옥이는 그런거다."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를 앓고 있지만 그리움이 묻어있는 먼 기억을 되살려내는 80대의 실향민 이야기.
[박재순/관람객] "이제 우리 생에 대해서 생각할 점이 있었고 어떻게 살아야 되겠느냐까지 생각하게 되는 그런 연극이었습니다. 잘 봤습니다."
이 이북 실향민 이야기는 한반도 최남단, 제주에서 펼쳐진 대한민국 연극제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고요.
[신오일/한국연극협회 속초지회장] "함경도 사투리가 대사에서 묻어나오니까 제주도에서 함경도 사투리를 듣기가 좀 어렵잖아요?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나서 많은 분들이 야, 그래도 여기서 함경도 사투리 듣는게 어려운데 하면서 이런저런 좋은 말씀들 해주셨습니다."
강원에서 제주, 더 나아가 한반도 전역을 관통해낸 메세지로 한여름 연극축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통일전망대 이상현입니다.
이상현 기자(shon@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unity/6501322_291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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