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방북 거부 남한은 적대국가?
◀ 김필국 앵커 ▶
최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금강산 방문 계획이 알려지자 마자 북한이 담화를 통해 검토해볼 필요도 없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 차미연 앵커 ▶
그런데 이런 담화를 낸 곳이 대남기구가 아니라 외무성이었는데요.
이례적이기도 하지만 따져봐야 할 다른 이유도 있는 듯 합니다.
◀ 김필국 앵커 ▶
극도로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 북한이 외무성을 통해 서둘러 강경한 어조로 거부한 이유는 뭔지, 최유찬 기자가 분석했습니다.
◀ 리포트 ▶
지난 6월 27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통일부에 북한주민 접촉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오는 8월 고 정몽헌 회장 20주기 추모식을 금강산에서 열기 위해 북한과 접촉해보겠다는 취지였습니다.
통상 통일부가 7일 이내에 신고를 수리하고, 방북을 희망하는 측이 북한의 초청장을 받아 정부 최종승인을 받으면 방북이 허용됩니다.
현회장은 5년 전에도 이런 절차를 거쳐 금강산을 방문했습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2018년 8월] "올해(2018년) 안으로는 금강산 관광이 되지 않을까 전망하고 있습니다. 북측에서도 그렇게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현정은 회장은 보수 진보 정부를 막론하고 그동안 수차례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과 독대를 하는가 하면 금강산 등의 대북 사업 운영권을 확인받은 유일한 남측 인사이기도 합니다.
그런만큼 일각에선 현회장 방북이 성사되면 북한과 소통의 물꼬가 트일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북한의 반응은 냉랭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수리 여부를 결정하기도 전인 지난 1일, 북한은 담화를 통해 어떤 인사의 방문 의향을 통보받은 적도 없고 검토해 볼 의향도 없다며 거부했습니다.
현대아산 측은 결국 신고를 철회했습니다.
[구병삼/통일부 대변인(7월 3일)] "현대아산 측이 북한주민 접촉신고를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옴에 따라서 오늘 중에 정부는 이를 수용할 예정입니다."
북한은 이미 금강산 관광지구내 남측 건물들을 철거했고, 우리 정부는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는 상황.
북한이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던 현회장의 방북까지 거부할 만큼 극도로 경색된 남북관계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셈입니다.
더 주목되는 건 이 담화를 낸 주체가 북한의 대남 기구가 아니라 외무성 국장 명의였다는 사실입니다.
1991년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남과 북은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로 규정돼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과 접촉할 때 우리나라는 외교부가 아닌 통일부가, 북한도 외무성이 아닌 노동당 통일전선부나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상대해 왔습니다.
그런만큼 이번 담화는 이제 남북관계를 특수관계가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의 일반적인 국가 관계로 재정립하고, 적대국가로서 남측을 상대하겠다는 의중을 내포한 거란 분석이 나옵니다.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정은 위원장이) 남한과 절대로 상대하지 않겠다고 얘기를 했고,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적대적이고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견해로 볼 수 있습니다."
대남기구였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이미 폐지됐거나 유명무실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북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던 2018년, 남북고위급 회담과 연락사무소 개소식 등 북한 대표로 남북관계 현안을 조율했던 건 당시 조평통 위원장이었던 리선권이었습니다.
[리선권/당시 조평통 위원장(2018년 9월)]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또 눈길도 정답게 오가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는 이미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고"
하지만 북미협상이 결렬된 2019년 이후 활동이 줄어들더니, 2020년 리선권이 조평통 위원장에서 외무상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후임자 선임 소식도 들리지 않습니다.
2021년 3월에는 김여정 부부장이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정리하는 문제를 일정에 올려놓지 않을 수 없다는 담화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여정이) 쓸모없게 된 대남 기구를 정리하는 문제를 의제에 올리겠다고 예고를 했고, 그 이후로는 조평통의 징후나 활동 등이 전혀 포착이 안되고 있습니다."
북한 뿐 아니라 우리 통일부의 대북 관련 업무도 변화가 예상됩니다.
[김은혜/대통령실 홍보수석(7월 2일)] "(윤 대통령은) 그동안 통일부는 마치 대북 지원부 같은 역할을 해왔는데 그래서는 안된다. 이제 통일부가 달라질 때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그동안 북한 문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유지해 왔고, 외교부 출신의 신임 문승현 차관도 통일부의 치열한 변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25년 만에 장차관이 모두 외부 인사로 채워지게 될 통일부의 역할은 남북화해협력보다 인권문제 제기 등 대북 압박에 방점이 찍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대진/원주한라대 교수] "남측에서도 지금 남북관계의 특수성보다는 국제관계 보편성과 일반성에 입각해서 대북 정책을 전개하고 있죠. (북한이) 여기에 대한 대응을 정비례 차원에서 또 맞대응을 하는"
전문가들은 남과 북 양측에서 교류와 대화를 담당하던 공식 창구가 모두 막히고, 강경 대치가 이어진다면 우발적인 충돌 상황에 대한 통제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남북 연락채널이 모두 끊어졌고, 강대강 국면이 지속되는 지금 남북 양측의 입장(대립)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우발적 충돌을 방지할 수 있는 채널이 전혀 없는 상황이거든요."
남측과의 접촉을 전면 배제하겠다고 나선 북한은 최근 중국 러시아와의 접촉면을 늘리는 한편, 일본과의 대화에도 여지를 두며 돌파구를 찾고 있습니다.
[정대진/원주한라대 교수] "북한이 미국으로 가는 채널을 남한이 아니라 중국을 통해서 확보할 수 있는 것이고, 일본은 북한에 대해서 북일 정상회담이나 관계 정상화에 대해서 거의 노골적으로 어필을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지금 미국과 일본과 대화 채널이 있는데 굳이 남한과 대화를 해야 될 실익이 없는 셈이 되는 거죠."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미중 양국은 갈등과 탐색을 반복하며 한층 복잡해진 정세 속에서, 우리나라 또한 평화를 지키며 국익을 챙길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통일전망대 최유찬입니다.
최유찬 기자(yuchan@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unity/6501320_291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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