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섬속의 섬’에 살고 싶어졌다[강동삼의 벅차오름]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관광객들이 제주 섬(JEJU ISLAND)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곳은 어디일까. 아마도 이생진 시인의 시(詩)처럼 ‘동쪽에는 그만한 태양은 솟는 법인데 유독 이곳에서만 해가 솟는다고 부산 피우며 달려가는 곳, 푸른색 이외에는 손을 대지 않는 곳, 바람이 심한 날은 제비처럼 사투리로 말하는 곳,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까운 곳,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는 곳, 바다가 술에 더 약한 곳’ 성·산·포는 아닐까. 기왕 성산포에 갔다면 우도 한바퀴를 돌고 오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언제 다시 오나’ 하는 마음으로 우도행 배에 몸을 싣게 된다. 그 섬 속의 섬, 새벽을 여는 섬, 우도에 가면 바로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우도방문을 환영하는 글과 조우한다.
#삼발이를 타고 시계방향으로 한바퀴… 우도팔경 보는 재미 쏠쏠… 살고 싶어졌다
우도 천진항(왕복요금 1만 500원)까지는 약 15분. 내리면 청정 섬을 위한 교통수단인 ‘삼발이’ 자전거를 빌리게 마련이다. 우도에 가면 그 앙증맞은 ‘삼발이’를 시계방향으로 한바퀴를 여행하는 게 정해진 코스다. 삼발이를 타고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 사람은 없다. 우도를 거의 다 돌았을 때, 검몰레해수욕장을 지나면, 우도 서퍼(U DO SUPER)란 포토존에 새겨진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와 마주한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를 배경 삼고 찰칵하는 순간, 문득 가장 우도 다운 말을 만난 듯 싶어 기분이 삼삼해진다. 우도를 여태 가보지 못한 이들에게 이렇게 전송해주고 싶어진다.
‘바람이 좋아, 살고 싶어졌다’.
서귀포시 성산항에서 약 3.8㎞ 떨어진 우도는 소가 머리를 들고 누워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우도라 붙여졌다. 제주 본섬과 우도 사이 배에서 바라보는 우도가 가장 아름답다 해서 붙여진 우도8경 중 하나인 ‘전포망도(前浦望島)’, 소가 누워있는 형상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그리고 삼발이를 타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우도8경은 ‘천진관산(天津觀山)’. 우도 도항의 관문인 동천진동항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의 모습을 말한다. 여기에서 바라보는 한라산 부근의 경치는 흠 잡을 데 없을 만큼 아름답다. 실제 저만치 성산포마을 뒤 오름과 한라산이 풍경화처럼 걸려있다.
이어서 우도의 서쪽 바닷가에 하얀 홍조단과 해빈이 있는데 이 하얀 모래사장은 대한민국에서 우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으로 2004년에 천연기념물 제438호로 지정되어 있는 ‘서빈백사(西濱白沙)’에 빠지고, 우도의 또 다른 항구인 하우목동항을 지난 후 ‘인어공주’ 촬영지를 거쳐 방사탑, 하고수동해수욕장, 우도에 있는 섬 비양도 입구에 다다른다. 여름밤이었으면 고기잡이 어선들이 무리지어 우도의 바다를 불빛으로 밝히는 ‘야항어범(夜航漁帆)’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우도8경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뺏기는 건 어쩌면 거의 한바퀴를 돌 때쯤이다. 동안경굴((東岸鯨窟:검몰레 모래사장 끄트머리 절벽 아래 동굴에 거인 고래가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과 높이 20여m폭 30여m의 쇠머리오름 기암절벽인 ‘후해석벽(後海石壁)’, 그리고 쇠머리오름의 남측 기슭 해식동굴에선 오전 10시에서 11시쯤 동굴안으로 쏟아지는 햇빛이 천장의 동그란 무늬와 합쳐지면서 한낮에도 달이 뜬다는 ‘주간명월(晝間明月)’에 서서히 ‘우’며든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인사하는 우도 8경 중의 하나인 ‘지두청사(地頭靑莎)’를 보려면 우도봉을 올라야 한다. 쇠머리오름이라 불리는 이곳은 우도사람들은 섬머리라고 부른다. 이곳에 올라가서야 비로소 제주본섬을 사랑하게 될 지도 모른다. 오름의 남동 사면은 곧바로 높이 100m의 해안단애를 이루며 바다로 내지르고, 북사면은 용암유출에 의해 파괴된 형태로 완만한 용암대지의 우도마을로 이어져 있어 오름이 곧, 섬 그 자체다.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푸른 빛깔의 우도 잔디와 하늘과 바다, 그리고 멀리 본섬의 풍경이 눈부시게 시려온다.
제주의 전설 속 주인공 설문대할망은 급하게 오줌이 마려워 한 발은 성산읍 오조리의 식산봉에 걸치고 다른 한 발은 성산일출봉에 놓고 오줌을 눴는데 그 줄기가 워낙 거세 제주도 동쪽 끄트머리 땅이 떨어져 나가 우도가 됐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설문대할망은 빨래를 할 때 한라산을 깔고 앉아 한 발은 관탈도(추자도 인근 섬)에 디디고 다른 한 발은 지귀도(보목항 앞 무인도)에 두었는데 그때 빨래판을 삼은 섬이 우도였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 하늘에서 바라본 우도의 모양은 펑퍼짐한 빨래판을 닮았다고 한다.
# 훈데르트바서 박물관은 어쩌면 우도9경으로 자리잡는 ‘핫플’
이제 우도는 연간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다. 외국인들도 제주 방문지로 우도를 꼽을 정도다. 그런 우도에 새로운 명소가 생겼다. 어쩌면 젊은이들에겐 우도8경이 아닌 우도9경을 이곳에서 보는 지도 모른다. 우도봉에서 지두청사까지 만나고 올레 11.3㎞(해안선 길이 17㎞)를 거의 다 돌았을 때 훈데르트바서 파크의 건축물을 만난다. 프린데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1928~2000년)는 오스트리아의 3대 화가이자 건축가이자 환경운동가로 메마른 도시의 건축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자연에는 직선이 없고 곡선만 있다”고 깨닫고 곡선으로만 박물관을 디자인을 했다. 불현듯 같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여류시인 잉게보르그 바하만은 훈데르트바서와는 전혀 다른 표현을 했다는 사실과 오버랩된다. ‘나는 항상 나다. 어떤 것이든 나를 휘게 하려 한다면 차라리 나는 부러지겠다’고.
어쨌든, 훈데르트바서 이름을 딴 박물관은 회화관, 판화관, 생애관, 건축관, 파크관 등 5개의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다. 알록달록한 타일과 곡선미를 뽐내는 뮤지엄에선 화장실마저 예술적이다. 특히 ‘톨칸이’ 카페에 앉아 차 한잔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모든 피로가 풀릴 지도 모른다. 그림보다 아름다운 성산 일출봉을 보며 사색하며 앉아 멍 때려도 좋은 곳이다. 돌아오는 길, 우도수제맥주를 기념품으로 사들고 와도 좋다. 맛깔 난 거품이 애인의 달콤한 밀어보다 더 달콤하게 빠져들기 때문이다.
#잠깐, 여기 쉬었다 갈래… 섭지코지와 붉은오름, 그리고 글라스하우스
삼발이를 타고 우도를 한바퀴 돌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 버린다. 집으로 돌아가기엔 못내 아쉬운 오후 1시. 성산항으로 돌아와 섭지코지로 핸들을 돌려도 좋다.
제주도의 동쪽 해안에 볼록하게 튀어나온 곳에 자리잡은 섭지코지는 제주 방언 좁은땅이라는 뜻의 섭지와 곶이라는 뜻의 코지가 합쳐져 섭지코지라 부른다. 바위로 둘러친 해안절벽과 우뚝 치솟은 전설 어린 선바위 등 묘한 매력이 배어나온다. ‘폭풍의 언덕’ 소설 속의 한 장면처럼 펼쳐지는 해안절벽과 바람에 휘날리는 금계꽃 들판에서 그만 인상파 화가의 명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수석인 기암괴석들도 그런 분위기에 한몫 한다.
더 기막힌 건 소설 ‘폭풍의 언덕’(에밀리 브론테)보다 슬픈 선돌바위의 애절한 전설도 만난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에게 반한 동해 용왕신의 막내 아들은 100일 정성이 부족하여 선녀와의 혼인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슬픔에 빠진 그는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주기 만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그 자리에 선채로 돌이 되어 버렸다 한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용왕신의 아들의 애틋한 마음 때문인지 선돌 앞에서 사랑의 맹세를 하고 혼인을 하면 훌륭한 자녀를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폭풍의 언덕’을 연상케 하는 ‘바람의 언덕’에는 붉은오름과 방두포 등대가 있다. 머리 쪽은 막히고 밑은 터졌다고 하여 방두포라고 했단다.
붉은오름 위 소원을 들어주는 이 방두포등대를 내려오면 섭지코지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목도하고 놀란다. 일본 오사카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건축물이 여기에 언제 들어섰을까. 제주의 햇살을 그대로 담겠다는 듯, 제주의 바다를 그대로 품겠다는 듯 양팔을 벌리고 낮지만 높게 서 있다. 이미 그는 제주에서 서귀포시 안덕면 본태박물관으로 이름을 알렸다. 건축의 누드작가 답게 노출 콘크리트에서 오는 단순함과 절제미가 돋보인다. 글라스하우스 내에는 민트레스토랑과 카페, 민트 스튜디오가 있어 체험 프로그램도 경험할 수 있다. 민트가든에는 둥근 원형 안에 그네 포토존이 있다. 이곳에서 그네를 타서 사진을 찍으면 성산일출봉에서 찍는 사진처럼 나와 줄을 서서 연인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바람의 언덕에서 글라스하우스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의 상징인 노출 콘크리트의 문이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성산포도 명품뷰다. 한컷만 찍고 돌아온다면 아마도 후회할 지도 모른다. 안도의 또다른 건축물 유민미술관도 글라스하우스보다 더 물러나 보일 듯 말 듯 조용히 자리잡고 있다. 노출 콘크리트와 현무암의 조화가 돋보인다.
황폐해져 버리고 태풍에, 비바람에 쓸려 녹슬어가는 올인하우스가 아쉬웠던 섭지코지는 그렇게 다시 젊어지고 있었다. 여행에서 오는 피로감마저 보상받는 기분이다.
돌아오는 길, 나도 모르게 입 안에서 노랫말이 흥얼거려지기 시쟉했다. 며칠전 제주경찰청장이 기자들과의 소박한 저녁 자리에서 “제주의 보물이 뭡니까”라고 느닷없이 기자들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질문만 하던 기자들은 훅 들어온 당혹스런 질의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돌, 바람, 해녀, 한라산, 제주사투리, 생지옥(생각을 지우는 옥빛바다), 유네스코3관왕….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있는데 그가 말했다. ‘368개의 오름’이라고. 1년새 그는 지독한 오름앓이를 하고 있음을 고백했다. 그러면서 또 느닷없이 해바라기의 ‘어서 말을 해’를 흥얼거렸다.
‘사랑한다 한 마디 그를 잡고 말을 못하면 떠나가버려, 어서 말을 해…’. 하루종일 귓가에 이 ‘가사가 맴돌면 안되는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중독되고 말았다. 최근 며칠동안 입안에서 멜로디가 떠나가지 않을 정도로 맴맴 돈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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