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와 아기가 위험하다"...병원 못 가고 목숨 건 홀로 출산, 왜?
[편집자주] 인간은 유일하게 혼자서 출산할 수 없는 동물이다. 하지만 1년 뒤부턴 출생통보제에 따라 병원에서 아기를 낳으면 산모의 이름이 남는다. 그럼 원치 않은 아이를 낳아야 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이름을 안 남기는 보호출산제 도입 법안이 있지만, 자칫 영아 유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간의 자유와 책임, 생명까지 아우르는 딜레마다.
내년 7월부턴 병원에서 아기를 낳을 경우 부모가 출생신고를 안 해도 자동으로 정부에 통보된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출생통보제법'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8년 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유아가 2236명에 달한다는 감사원의 발표가 법안 논의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함께 다뤄진 '보호출산제' 도입 법안은 처리되지 않았다. 미혼, 미성년 등 여러 이유로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은 산모들이 병원에서 익명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버려지는 아기가 늘어날 수 있고, 아동의 '부모 알 권리'를 빼앗는다는 등의 이유로 야당이 신중론을 펴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혼모 지원 강화, 낙태죄 대체입법 등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시각에서 '원치 않는 출산' 문제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7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안'과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위기임산부 및 아동 보호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 등 보호출산제 도입 법안들이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1년 뒤 출생통보제가 시행됐을 때 보호출산제가 없다면 피치못할 사정으로 육아를 피하고 싶은 일부 산모들이 병원 밖에서 출산을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여야는 보호출산제 법안을 조속히 심의하기로 했지만 야당 내 일부 반대 의견 때문에 신속한 처리는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보호출산제 도입 여부를 둘러싼 논쟁만으론 근본적인 해법을 찾을 수 없다며 보다 포괄적인 논의를 주문했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회의 입장은 출생신고제를 시행하게 되면 병원 밖 출산이 많아질 수 있으니 최대한 빠르게 입법을 추진해 마무리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서둘러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아이를 키우고 싶은데 경제적인 상황이 되지 않아서, 사회적 인식이 두려워서 키우지 못하는 미혼모들을 위한 지원책은 이번 논의에서 빠져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원하지 않았던 임신이었다고 해도, 아이를 낳아 직접 기르고 싶어 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며 "미혼모들에 대한 사회 복지 수준은 제자리인 상태에서 보호출산제만 성급하게 시행하게 되면 오히려 미혼모들에게 익명 출산을 사회가 권유하게 되는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외협력국장도 "출생신고제와 보호출산제 도입 문제에 있어서 참 많은 논의가 빠져있는 느낌"이라며 "지금 보호출산제를 무작정 실시하면 그 아이들을 어떻게 입양시킬 것이고 훗날 그 아이들의 부모를 알권리는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잘 모르겠다. 친부가 지금보다 더 쉽게 친모와 아이를 포기할 수 있게 되는 등 여러 부작용이 굉장히 많이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 국장은 "보호출산제의 성급한 시행은 기둥을 세우지 않고 지붕을 얹는 격"이라며 "가장 먼저 미혼모에 대한 임신, 출산 지원 체계를 더 촘촘히 안정화시킨 뒤에 그래도 지금처럼 익명 출산이 많아지고 유기 아동이 많아진다면 그때 보호출산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여성이 원치 않는 출산 자체를 피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인 임신 중절, 즉 낙태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낙태죄는 2019년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지만 이후 국회는 대체 입법 논의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영아 유기 문제는 여성의 임신과 출산 전 과정을 다 들여다봐야 하는 문제"라며 "임신이라는 게 아무리 피임을 한다고 해도 완벽히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환경적으로 양육할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 여성이 갑작스러운 임신이나 출산을 하게 되면 굉장히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임신과 출산의 각 단계별로 이 과정의 당사자인 여성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근본적으로 여성에게 보장돼야 할 하나의 선택지인 임신 중절의 경우에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오고 난 뒤 후속 논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계속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종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채원 기자 chae1@mt.co.kr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김지영 기자 kjyou@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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