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아랫사람' 착취가 당연한 사회의 '그늘'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3. 7. 8. 08: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너그럽고 친절한 사람으로 살고 싶지만 쉽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너그럽고 친절한 사람으로 살고 싶지만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괜히 착취당하고 인생이 피곤해지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적으로 만난 전문적인 관계에서는 부탁을 쉽게 들어주거나 양보하거나 또는 지나치게 성실한 모습을 보였을 때 되려 더 많은 부탁과 참을성과 더 많은 업무가 밀려오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듀크대의 연구자 매튜 스탠리와 동료들은 직장에서 상사들을 대상으로 부하직원이 얼마나 부탁을 잘 들어주고 너그러운 편인지에 대해 묻고 직원들에게 착취적인 요구를 하겠는지 물었다. 과한 요구에는 보상 없이 야근 하기, 역시 보상 없이 휴일 반납하고 출근하기, 점심시간 반납하고 일하기가 있었다. 

그 결과 상사들은 너그러운 사람으로 통하는 직원에게 너그럽지 않은 직원들에 비해 더 많은 부탁을 하겠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너그러운 직원들에게 보상해주고 우대하기는 커녕 더 많은 부담과 업무를 주고 결과적으로 더 적은 보상과 많은 착취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상사들은 평소 이타적이고 너그러운 편인 직원들이 거절을 잘 하고 다소 이기적인 직원들보다 더 어려운 부탁을 ‘자발적으로 기꺼이’ 할 거라고 믿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너그러운 직원들은 심한 부탁을 해도 크게 싫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부릴 수 있을 거라고 믿는 편이었다. 

그런 반면 자신의 부하직원이 아닌 이타적이고 너그러운 직원이라는 평가를 받는 가상의 인물에 대한 시나리오를 주고 이 사람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것이 얼마나 도덕적인 일인지 평가하게 했을 때는 옳지 못하다고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하는 특성을 이용하여 이타적인 사람을 착취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인식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잘못된 행동임을 알고는 있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이 부하직원에 대해 하는 행동이 바로 그 잘못된 행동이라는 생각은 잘 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다만 너그러운 사람을 착취하는 것이 옳지 못한 일임을 상기하도록 했을 때에는 무리한 요구를 하려는 의향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왜 자꾸 회사를 나가는지, 왜 우리 회사에 일하러 오지 않는지에 대한 고민을 듣곤 한다. 또 어떤 회사는 절대 가지 말라거나 하는 이야기 또한 자주 들을 수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그 기저에는 희생만 요구하고 제대로 된  보상은 하지 않는 환경, 마음을 다해 열심히 할 수록 손해를 보고 혼자 바보가 되는 환경, 결국 공정성과 상호성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열심히 해도 돌아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현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인 듯 보이기도 하다. 그간 우리 사회가 이타적이고 친절한 사람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돈을 받았으니 당연히 과도한 요구도 받아들여야 한다거나 또는 여성이라면 엄마라면 당연히 희생해야 한다고 하는 등 각종 사회적 족쇄를 통해 착취를 정당화해온 것은 아닐까. 

결국 아무 것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학습한 사회에서 착취의 세습을 거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나는 저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또는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대한 희망이 없기에 나라도 살 길을 찾겠다며 각자도생을 부르짖으며 물질적 가치에 대한 열망만이 점점 더 커져간다. 

한국 미디어에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갑질을 당하기는 싫지만 나는 하고 싶고, 착취당하기는 싫지만 나는 착취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메시지들이 읽혀서 당황스러울 때도 많다.

이 사회에서는 낮은 위치에 있다면 착취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는 공식이 그간 얼마나 공고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회를 지배하는 공식을 깨기는 어려우니까 다들 착취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고 하기보다는 나라도 위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는 보다시피 모두가 모두에 의해 밟히는 사회다. 

때문에 나라도 이런 정신적인 신분제와 높은 지위에 대한 선망/동경에서 최대한 멀어져보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위의 연구에서 나타났듯 때로는 도덕적인 문제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더 나은행동을 보이게 되니까. 

Stanley M. L. Neck C. P. & Neck C. B. (2023). The dark side of generosity: Employees with a reputation for giving are selectively targeted for exploitation.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108 104503. doi:https://doi.org/10.1016/j.jesp.2023.104503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