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흡연할 권리 있지만…헌재 "혐연권이 우선"[세상을 바꾼 법정]㉒

박승주 기자 2023. 7.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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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도 2013년에도 "혐연권이 상위 기본권"
세계적으로 흡연 규제…한국 5명 중 1명 흡연자

[편집자주] 판결은 시대정신이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와 때론 나아 가야할 방향을 담고 있어서다. 우리 사회는 짧은 기간 압축적으로 성장하면서 여러 차례 격변기를 거쳤다. 이 때문에 1년 전에는 옳다고 믿었던 시대정신이 오늘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과거와 정반대의 판결이 많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판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짚어봤다.

(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마약 소지 혐의로 재판받았던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마약만큼은 아니지만 담배도 남에게 피해를 끼치기 쉽다.

담배는 술보다 역사가 짧지만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500여년 전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했던 콜럼버스와 대원들이 담배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연의 역사도 못지않다. 영국 국왕 제임스1세는 세계 최초로 금연 정책을 펼쳤고 오스만의 술탄 무라트4세는 담배를 피웠다는 이유로 수만 명을 처형했다고 기록돼 있다.

극단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지금도 흡연권과 혐연권은 계속 충돌한다. 흡연이 백해무익한데다 금연이 쉽지 않다는 점은 누구나 알지만 담배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금연 장려' 사회적 분위기…금연공간 계속 확대

다만 자신의 건강과 타인이 입을 피해를 이유로 금연을 장려하는 것이 사회적 분위기다.

지난 1995년에는 국민건강증진법이 만들어졌다. 담배 광고와 판매를 규제하는 한편 공공장소 금연을 유도하기 위해 금연구역과 흡연구역을 구분·지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간접흡연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금연 조치는 더 강화됐다. 2002년 국민건강증진법에는 공중시설 소유자는 시설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거나 금연·흡연구역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반발하는 사람도 나왔다. A씨는 2003년 금연구역 지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이 흡연장소를 제한하고 비흡연자의 권익만을 위한 조항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A씨는 "흡연이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창의력 신장에 도움이 되며 국가의 중요 세원이 되는 등 순기능이 많다"며 "납세로 국가와 지자체 재정에 기여하는 만큼 흡연구역을 늘리고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담배의 유해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됐고 금연정책은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정책"이라며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은 간접흡연의 폐해를 막기 위해 흡연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으로 공공복리를 위한 합리적 제한"이라고 맞섰다.

◇20년 전 헌재 판단은…"혐연권이 흡연권보다 상위"

헌재는 2004년 8월 흡연권과 혐연권 모두 헌법에 근거한 시민의 기본권이라고 판단했다. 두 권리 모두 헌법 17조가 규정한 '사생활의 자유'와 10조가 규정한 '행복추구권'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다만 두 권리가 충돌할 경우 생명권과 직결되는 혐연권을 우선해야 한다고 봤다.

헌재는 "흡연권은 사생활의 자유가 핵심이지만 혐연권은 사생활의 자유뿐 아니라 생명권까지 연결되는 것이므로 혐연권이 흡연권보다 상위의 기본권"이라고 밝혔다.

상하의 위계질서가 있는 기본권끼리 충돌할 경우 상위 기본권 우선의 원칙에 따라 하위기본권이 제한될 수 있으므로 흡연권은 혐연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인정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흡연이 국민 건강을 해치고 공기를 오염시켜 환경을 해친다는 점에서 국민 공동의 공공복리와 관계있다"며 "공공복리를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한 헌법 조항에 흡연행위를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PC방 금연구역 지정에도 헌법소원…"간접흡연 막아야"

헌재의 결정이 나온 뒤 금연구역 지정이 점차 확대·강화됐다. 2015년 카페·음식점이 전면 금연구역이 된 데 이어 2017년 말부터는 당구장과 스크린골프장도 금연구역이 됐다.

그보다 앞선 2013년에는 PC방이 전면 금연구역에 포함됐는데 PC방을 운영하는 B씨 등도 헌법소원을 냈다. 그러나 헌재의 판단은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헌재는 "청소년을 비롯한 비흡연자의 간접흡연을 막고 혐연권을 보장해 국민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개정된 금연구역조항은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방법도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또 PC방처럼 여러 명이 이용하는 공간의 간접흡연 문제를 해결하려면 금연·흡연구역을 분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해당 공간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봤다.

아울러 "PC방 영업 자체가 아닌 영업방식을 제한할 뿐이어서 청구인들의 직업수행 자유를 크게 제한하지 않는 반면 혐연권을 보장하고 국민 건강을 증진하는 공익의 효과는 매우 크다"며 B씨 등의 청구를 기각했다.

◇흡연자 설 자리 줄어…한국 흡연율 감소하다 소폭 상승

흡연자의 설 자리는 세계적으로도 좁아지는 추세다. 각국은 국민 건강과 사회적 비용 절감을 위해 흡연율 감소에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은 2019년 담배 구매가능 연령을 18세에서 21세로 높였고 캘리포니아주와 하와이주는 미성년자가 동승한 경우 차 안 흡연을 금지했다.

뉴질랜드는 2009년 이후 출생자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담배를 구입할 수 없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영국에서는 2030년 흡연율 5% 미만을 목표로 담배 구매 연령을 해마다 한살씩 높이는 방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흡연율이 십수년간 감소세를 보이다가 지난해 소폭 상승했다.

질병관리청의 지역사회건강조사에 따르면 평생 다섯갑(100개비) 이상 흡연했고 현재 흡연하는 사람의 비율을 뜻하는 흡연율은 2009년(26.7%)부터 감소해 2021년 19.1%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0.2%포인트 올라 19.3%가 됐다.

남성 흡연율은 35.3%로 전년 대비 0.3%p 감소했으나 여성은 3.4%로 0.7%p 증가했다.

par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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