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속도+충격 가격=패션의 미래’라는 공식 [딥다이브]

한애란 기자 2023. 7.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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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Z세대가 가장 많이 찾는 패션 브랜드. 뭔지 바로 떠오르시나요. 바로 쉬인(Shein)인데요. 기업가치 600억 달러의 쉬인이 뉴욕증시 상장을 추진 중이란 뉴스가 연이어 나옵니다. 만약 IPO가 성사된다면 2021년 중국 차량공유 기업 디디추싱 이후 가장 큰 중국계 기업의 뉴욕증시 상장이라는데요.

혹시 쉬인을 잘 모르시거나 ‘아, 그 중국산 값싼 옷 파는 온라인 쇼핑몰?’이라고만 알고 계신다면 다시 보셔야 할 겁니다. AI 기술을 이용한 ‘실시간 소매’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패션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꿔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논란과 잡음도 많은 ‘울트라 패스트 패션(ultra-fast fashion)’의 선두주자, 쉬인을 들여다봅니다.

미국과 유럽의 Z세대가 사랑하는 온라인 패션브랜드 쉬인. 쉬인은 중국 광저우가 주요 생산기지이지만, 중국에서는 판매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겨냥했다. 쉬인 홈페이지
*이 기사는 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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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자라 수준으로 급성장

쉬인은 중국인은 잘 모르지만(중국에선 판매하지 않음) 미국을 포함한 세계인이 열광하는 중국 패션브랜드입니다. 오프라인 매장은 하나도 없지만 전 세계 150여개국에서 지난해 230억 달러(약 30조원)의 매출을 올린 온라인 패션 기업이죠. 230억 달러라는 지난해 매출은 스웨덴 H&M(약 210억 달러)보다 많고 자라의 인디텍스(238억 유로)에 근접한 수준입니다. 패션업계의 거대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겁니다.

지난 3월 모금라운드에서 평가된 쉬인의 기업가치는 600억 달러. 전 세계 비상장기업 중에선 ‘틱톡’의 바이트댄스(2200억 달러)와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1500억 달러) 다음으로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 세계 3위 유니콘입니다.

쉬인의 싱가포르 본사 모습. 중국에서 설립된 쉬인은 지난해 본사를 광저우로 이전했다. 일각에선 뉴욕증시 상장을 위한 일종의 ‘국적 세탁’이라고 보기도 한다. 쉬인 홈페이지
이런 쉬인이 미국 뉴욕증시 상장을 추진 중입니다. 로이터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JP모건체이스가 쉬인의 IPO 준비 작업을 맡고 있습니다. 아직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할지, 나스닥에 할지는 정하지 않았다는데요. 현재 본사는 싱가포르이지만, 2012년 중국 난징에서 설립돼 중국 공장에서 만든 옷을 판매하는 쉬인은 중국계 기업으로 통하죠. 디디추싱의 흑역사(2021년 NYSE IPO 이후 중국 정부 압력에 시달리다 1년 만에 상장폐지) 기억이 아직 생생한 터라, 쉬인이 무사히 뉴욕증시에 데뷔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립니다.

특히 미국 정치권에서 중국계 기업 쉬인의 미국 상장을 마뜩잖아 한다는 게 큰 걸림돌인데요. 그럼에도 쉬인의 놀라운 성장세는 투자 관점에서 볼 때 매력적인 게 사실입니다. 쉬인의 매출은 2019년 40억 달러에서 2020년 100억 달러, 2021년 157억 달러, 그리고 2022년 230억 달러로 불어났습니다.

민첩성으로 패션 산업을 바꾸다

1000개 넘는 신상품이 추가됐다고 알리는 쉬인의 홍보이미지. 쉬인 홈페이지

몇년 전만 해도 존재감 없었던 쉬인은 미친 속도와 충격적인 가격으로 패션업계를 뒤흔들었습니다. 쉬인 사이트에서 고객들은 5.99달러 티셔츠와 9.99달러 드레스 같은 상품 수십만 개를 볼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인사이더의 최근 기사에 따르면 쉬인이 1년 동안 새로 생산해내는 스타일이 약 31만5000개라고 합니다. H&M은 연간 4400개 수준인데 말이죠. 매일 신상품이 1000종류씩 올라온다는 쉬인의 홍보문구 그대로인데요.

신상품이 매일 100개도 아니고 1000개라니.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까요. 글로벌 컨설팅업체 BCG가 지난 3월 낸 보고서에서 이를 분석했는데요. BCG가 분석한 쉬인의 경쟁력 원천은 이겁니다. 기술을 기반으로 한 ‘민첩한 공급망’.

이에 따르면 쉬인은 신상품을 처음에 100~200개씩만 주문합니다. 어떤 상품이 얼마나 팔릴지 모르니까 일단 팔아보고 시장 반응을 테스트하는 거죠. 사이트에 제품 사진이 올라오면 그때부터 고객 반응(클릭률, 즐겨찾기, 판매율 등)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취합합니다. 자체 개발한 알고리즘이 이를 분석해 수요를 예측하는데요. 여기에 AI 예측모델이 500개 이상의 매개 변수(이전 판매량, 제품 기능, 날씨 등)까지 분석해 예측 정확도를 높입니다.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가 주문이 자동으로 생산됩니다.

쉬인은 중국 전역에 약 6000개 협력업체를 두고 있는데요. 이들 공장의 가동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가장 빨리 생산해낼 수 있는 최적의 공급업체를 찾아 주문을 내죠. 이 모든 과정이 이뤄지는 디지털 생산센터에 근무하는 직원만 약 2000명이라고 합니다.

쉬인의 배송센터 모습. 쉬인은 디지털 생산센터를 통해 중국 내 작은 공장들에 필요할 때마다 주문을 낸다. 일종의 ‘우버’ 같은 방식이다. 쉬인 홈페이지
‘실시간 소매(real-time commerce)’ 또는 ‘울트라 패스트 패션’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요에 즉시 반응하는 주문형 소량 생산 모델인데요. 그 결과 쉬인은 변덕스러운 패션 트렌드를 바로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BCG에 따르면 쉬인의 재고 회전일수는 평균 40일에 불과합니다. H&M은 4개월이 넘는데 말이죠. 재고가 적다는 건 더 많은 제품을 할인 없이 정가에 팔 수 있단 얘기이기도 합니다. 쉬인 제품 중 할인으로도 소진되지 않는 미판매 재고비율은 2% 미만입니다. 재고가 적기로 유명한 자라의 미판매 재고율이 10% 수준으로 알려진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효율이죠. BCG가 “민첩한 공급망은 패션의 미래”라고 분석한 이유입니다.

‘쉬인하울’은 통한다

쉬인 창업자 쉬양티엔(Chris Xu)은 언론 인터뷰 한번 한 적 없이 베일에 가려진 인물인데요. 검색엔진 최적화(검색했을 때 상위에 노출되게 하는 것) 시스템을 만든 엔지니어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2008년 동료들과 온라인 쇼핑몰을 창업하며 사업가로 변신했습니다. 검색엔진 최적화 기술을 사용해 온라인 마케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이어 2012년 스페인 사이트 개설을 시작으로 여성복 온라인 판매에 뛰어든 게 쉬인의 시작입니다.

철저히 데이터에 기반한 쉬인의 ‘디지털 머천다이징’은 엔지니어 창업자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데요. 또 쉬양티엔이 쉬인 설립 초기부터 주력한 게 있습니다. 바로 인플루언서 마케팅입니다.

‘shein haul’ 로 검색하면 나오는 유튜브 영상 이미지. 쉬인에서 받은 옷들을 입어보며 스타일을 공유하는 영상은 Z세대에게 인기가 있다. 유튜브 화면 캡처
‘sheinhaul’로 검색하면 유튜브나 틱톡 영상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데요. 인플루언서들이 한무더기의 쉬인 옷을 입어보면서 그 느낌을 공유하는 영상입니다. 팔로워들에게 쉬인 사이트 15% 할인 코드를 공유하기도 하죠. 물론 그 옷들은 쉬인이 무료로 보내준 거고, 인플루언서들은 판매수수료와 함께 협찬비를 받습니다. 와이어드 기사에 따르면 쉬인이 관리하는 인플루언서는 패션 업계에서도 이례적으로 많은 수준이라는데요. 2020년 인도 정부가 중국에 대한 보복조치로 쉬인 앱을 금지했을 때 쉬인 협찬을 받던 인도 인플루언서만 2000명이었다고 합니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타깃은 명확합니다. 철저히 10대와 20대 여성 고객에 어필하죠. 그 결과 쉬인은 미국 10대들이 가장 좋아하는 전자상거래 사이트 2위(1위는 아마존)에 올랐습니다. 다른 어떤 의류 브랜드보다 틱톡에서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가격과 트렌드에 민감한 Z세대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겁니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쉬인의 미국 패스트패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11월 기준 50%에 달합니다. H&M(16%)과 자라(13%), 패션노바(11%), 포에버 21(6%), ASOS(4%)를 모두 합친 수준입니다.

쉬인은 최근 의류가 아닌 생활용품, 주방용품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데요. 스케처스나 란시노같은 브랜드가 입점해서 판매할 수 있게 하는 제 3자판매 플랫폼 ‘마켓플레이스’를 지난달 미국에 출시한 겁니다. 아마존을 닮아가고 있는 셈인데요. 미국에서 인기몰이 중인 또다른 중국 온라인 쇼핑 플랫폼 ‘테무’를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중국 기술회사 전문 애널리스트인 마루이는 “쉬인은 단순한 패션회사 이상”이라고 말하는데요. “우리는 쉬인을 자라와 비교하지만 아마존처럼 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쉬인은 주방용품과 생활용품 쪽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아마존처럼 되고 있다. 쉬인 홈페이지

‘비윤리적 기업’이란 낙인

매력적인 성장스토리를 가진 쉬인이지만 약점도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마진이 작다는 겁니다. 쉬인은 재무제표를 공개하진 않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해 순이익은 8억 달러라고 합니다. 매출 대비 순마진율이 3.5%인 셈인데요. 자라로 유명한 인디텍스의 순이익률 12.3%나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의 11.9%보다 훨씬 낮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온라인 마케팅엔 꽤 많은 돈이 듭니다. 쉬인은 모든 주문에 대해 무료배송, 무료반품 정책을 펼치는데요. 이 역시 수익 면에선 썩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쉬인에서는 옷부터 신발, 가방까지 모두 합쳐 30달러 이내로 장만할 수 있다. 예산이 빠듯한 Z세대가 쉬인에 열광하는 이유다. 쉬인 홈페이지
더 치명적인 문제는 ‘비윤리적인 기업’이란 부정적 이미지입니다. 쉬인은 중국 브랜드인 걸 최대한 숨기고, 심지어 본사까지 지난해 싱가포르로 이전하며 ‘국적 세탁’ 중인데요. 하지만 위구르족 강제노동과 관련된 신장지역 면화를 조달했을 거란 의혹과 함께(쉬인 측은 이를 부인) 중국 내 협력업체 공장 근로자들이 하루 18시간 이상 불법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IPO를 준비 중이어서일까요. 쉬인도 이런 여론에 상당히 신경을 씁니다. 그래서 최근 6명의 인플루언서를 2주 동안 중국 무료 여행에 초청했습니다. 중국의 쉬인 공장과 배송센터를 직접 둘러보고 관련 영상을 찍게 만든 거죠. 그 결과는? 폭망이었습니다. 인플루언서들이 깔끔한 창고와 행복한 노동자를 담은 영상을 만들어 올리긴 했는데요. 그 홍보영상들에 엄청난 악플이 쏟아지는 역풍을 맞은 겁니다. 놀란 인플루언서들은 줄줄이 영상을 내리거나 사과 영상을 올려야 했죠. 쉬인은 “슬프다”는 성명을 발표해야 했고요. 뉴욕타임스 보도대로 “마케터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되고 말았는데요.

사실 신장 면화가 아니더라도, 환경을 생각하면 패스트 패션 산업 자체가 지구엔 해롭습니다. 옷을 많이 만드는 것 자체가 엄청난 환경 오염을 일으키기 때문인데요. 쉬인이 연간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630만 톤에 달한다는 추정도 있습니다. ‘가치소비(소비로 가치관과 신념을 표현)’를 한다는 Z세대가 실제로는 쉬인을 패션 거대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한데요.

타임지에 따르면 한 틱톡 인플루언서는 쉬인의 협찬을 받는 걸 두고 비판이 일자 이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지속 가능한 쇼핑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부유하지 않으면 비싼 친환경적 제품은 못 산다는 뜻).”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런 논리로 환경에 해로운 소비를 정당화시키고 있는 거겠죠. 그리고 그 덕분에 아마도 쉬인은 많은 논란을 딛고 계속 무섭게 성장할 거고요. By.딥다이브

만약 SNS에서 쉬인 광고를 본 적 없다면 당신은 쉬인의 타깃 고객이 아닌 겁니다. 기성세대엔 낯설지만 Z세대엔 아주 익숙한 브랜드가 바로 쉬인인데요. 핵심 구매층만 공략하는 절묘한 온라인 마케팅과 국적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든 전략이 통하고 있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무섭게 성장하는 ‘울트라 패스트 패션’ 브랜드, 쉬인이 미국 증시 상장을 준비 중입니다. 만약 성사된다면 중국에서 설립된 기업의 뉴욕증시 IPO로는 역대 두번째 규모가 될 겁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민첩한 공급망’이 쉬인의 성공 비결입니다. 신상품을 하루 1000개씩, 그것도 10달러 안팎의 아주 싼 가격으로 쏟아내고 있죠. 소비자 트렌드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주문에 반영하는 ‘리얼타임’ 커머스입니다.

-쉬인을 둘러싸고는 환경과 노동 관련 이슈가 끊임없이 제기되는데요.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 쓰지만 되레 역풍을 맞기도 했습니다. 물론 ‘비윤리적 기업’이란 낙인과 매출 성장세는 별개인 걸로 보이긴 합니다.

*이 기사는 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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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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