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기사 망했어요, 이 분들 '덕분에'…[남기자의 체헐리즘]

남형도 기자 2023. 7.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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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청 빗물받이 전담관리반 1조 2인방과 함께한 '빗물받이 청소'…모기 물리고, 바퀴벌레 함께 파내며 매일 청소, 31도 더위에 경사 오르내리며 진땀, "비 오는 날 빗물 '콸콸' 내려가는 거 보면, 속이 뻥 뚫려"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직접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맘으로 현장을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가장자리에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고민했습니다. 빗물받이 전담관리자 분들이, 청소를 매일 열심히 하신 덕분에, 빗물받이가 너무 깨끗해서요. 최대한 더러운 걸 찾아다닐까, 쓰레기가 그나마 많았던 것만 넣을까 싶었지요. 그러다 생각을 고쳤습니다. 애써주신 덕분에 깨끗해진 거잖아요. 잘 관리하면 이리 된다고요. 있는 그대로 쓰고, 외려 그 노력을 기리자고요. 전과 후가 이리 다른 걸요./사진=남형도 기자
"아하하하하, 아마 오늘 다녀도 쓰레긴 아무것도 없을 거예요. 너무 깨끗할 거야!"

장동석씨(59)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골목에 울렸다. 빗물받이 전담관리반 1조 조장의 자신만만하던 말. 불안해진 난 상하좌우를 부단히 두리번거렸다. 아니, 이게 아닌데. 더러운 빗물받이를 찾고 있었다. 담배꽁초가 꽉꽉 낀, 애쓰지 않아도 어디서나 자주 보이던 그것. 그걸 청소하러 왔건만, 대체 왜 다 이리 깨끗한 걸지.

장씨의 유일한 조원, 과묵하게 빗물받이를 살피던 김현덕씨가 슬며시 웃으며 말을 보탰다.

빗물받이 전담관리반 1조 조장 장동석씨(오른쪽)와 기자(왼쪽). 빗물받이 쓰레기를 함께 치우는 중./사진=형광조끼 나도 입고 싶은데, 생각했던 남형도 기자

"저희 조장님이 있잖아요. 일 욕심이 하도 많아요."(현덕씨)

"에이, 또 왜 그러시나. 하하하."(동석씨)

섭씨 31도. 온몸이 불타는 듯 뜨거웠던 여름. 서울 금천구 어느 골목길. 이 동네 빗물받이를 휩쓸며 다 치워낸 '무적 1조' 전담관리반을 뒤따르던 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이리 고심했다.

'이런, 이번 주 체헐리즘 기사는 망한 걸까.'

5월 15일, 금천구 '빗물받이 전담관리반'의 출범
서울 금천구청 앞에 모인, 빗물받이 전담관리자 분들과 송선훈 금천구청 치수과 주무관(오른쪽)./사진=남형도 기자
2023년 5월 15일. 학생들이 '스승의 은혜'를 부르던 날. 서울 금천구청 앞마당엔 나이 지긋한 평균 60대 어르신들이 모였다. 모두 10명. 이들은 목장갑을 끼고, 집게를 들었다. 빗물받이 전담관리반의 출범이었다.

만들어진 계기는 이랬다. 지난해 여름, 강남역이 시퍼렇게 잠겨 물바다가 됐던 밤. 이를 본 한 중년 남성이, 몸을 숙여 무언가 번쩍 들었다. 꽉 막힌 '빗물받이'였다. 그러자 종아리까지 찼던 물이 쑥 빠졌단 목격담이 전설처럼 돌아다녔다.

지난해 여름, 서울 강남역이 물에 잠겼을 때 나타나 빗물받이를 들어 물이 빠지게 했던 '슈퍼맨'. 그러나 영웅이 나타나는 걸 우연에 기댈 순 없고, 과거로부터 배워야 했다. 평소에 관리해야 한단 걸./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약 1년이 흘렀다. 기억에서 희미해진 '강남역 슈퍼맨'을 대신할 이가 필요했다. 빗물받이를 매일 치워줄 사람 말이다. 어르신 일자리로 모집했다. 10명을 뽑는데 13명이 지원했다.

이들 중에 장동석씨와 김현덕씨가 있었다.

건설 현장에서 수십 년 일하며 잔뼈 굵은 동석씨."잡부야말로 실제 현장 일을 다 하며, 더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외치던 사람. 특히 자신이 지어낸 서울 영등포 6층짜리 건물을 지나갈 때면 몹시 뿌듯해했다. 현덕씨벽돌을 쌓는 '조적' 일을 40년 해왔다. 살려고 매일 버텼던 두 사람의 관절은, 세월에 풍화되어 더는 무게를 견딜 수 없게 됐다.

정말 일하고 싶던 이가…빗물받이를 퍼내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끌고 가며 빗물받이를 살피는 동석씨. 대화할 때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갈 때도, 하나하나 다 살폈다./사진=남형도 기자
빗물받이 전담관리반에 합격하기 전까지, 동석씨는 실은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는 이리 회상했다.

"내년이면 환갑인데, 일자리 경쟁이 아주 치열해요. 지원하는 것마다 떨어졌어요. 많이 울었지요. 두 달을 방에서 울고 나오지도 않았다니까요."

빗물받이를 치운지 얼마 안 됐을 때, 5월 무렵 초기에 상태가 이랬다. 쓰레기가 엄청 많았다./사진=금천구청

일은 잘하지만, 면접 때 말주변이 없어서 불리했다고. 그런 그가 빗물받이 청소 일을 하게 된 거였다. 매일 일할 곳이 생겼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그 얼마나, 정말로 일을 하고 싶었을지.

동석씨는 빗물받이 전담관리반 1조 조장. 현덕씨는 조원. 둘은 이리 만났다. 5월 15일, 마침내 금천구 가산동, 독산 3동, 4동 등 몇 개 동을 다니기 시작했다. 금천구 안에 있는 빗물받이만 약 1만 5000개. 보통 일이 아녔다. 그리고 처음 마주했던, 오래 쌓인 빗물받이 안 쓰레기는 참혹했다.

속이 다 시원하다. 쓰레기를 왜 이리 마구 버렸을지. 뚜껑을 열고, 쓰레기가 가득한 내부를 보고, 들어가 일일이 파냈을 게다. 짐작만으로도 노고의 무게를 안다./사진=금천구청

"아우, 힘들었지요. 빗물받이 뚜껑 열면 모기가 엄청 많았어요. 많이 물렸죠. 담배꽁초가 아주 무지하게 많았어요. 시장 골목에 있는 빗물받이는 더 심했고요. 손으로 아예 퍼냈지요."(동석씨)

"지렁이는 또 얼마나 많았어요. 바퀴벌레랑."(현덕씨)

오르락내리락, 하루 평균 2만 보…다가가니 '하수구' 악취가
빗물받이 전담관리반 두 분과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기자. 고약한 하수구 악취가 빠짐없이 올라와 오래 머물기 쉽지 않았다./사진=송선훈 금천구청 주무관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7월 6일. 약 두 달 동안 매일 빗물받이를 치운 이들. 그 덕분에 이리 깨끗해진 거였다. 이날 빗물받이 전담관리반 1조에 참여한 나와, 조장 동석씨, 조원 현덕씨는 나란히 걸으며 빗물받이만 뚫어져라 봤다.

동석씨의 자전거 바퀴가 도르르르. 부드럽게 구르는 소릴 따라 발을 맞췄다. 자전거 손잡이엔 아이스박스가 걸려 있었다. 그 안엔 얼음물 세 통이 들어 있었다. 아이스박스 작은 주머니엔 일자 드라이버가 꽂혀 있었다. 뒷좌석엔 쓰레기봉투를 실었다. 두 사람은 나와 대화하면서도, 스치는 빗물받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프로다웠다.

빗물받이만 집중해서 보니, 정말 많단 걸 실감했다. 서울 시내에 55만7000개가 있다고 하니. 오르락내리락, 좁다란 길을 빠른 속도로 함께 걸었다. 그러면서 매일 이 길을 걸었을 이들을 짐작했다. 동석씨는 "하루 평균 2만 보 정도는 걷는다"고 했다. 구석구석, 안 닿는 곳이 없었다.

빗물받이를 들어 쓰레기를 치우려는 김현덕 빗물받이 전담관리자./사진=금천구청

"8일 만에 왔다"며 동석씨가 다니며 말했다. 동네 범위가 워낙 넓어, 다니는 주기가 그리 정해지는 거였다. 대부분 깨끗했으나 그사이 쓰레기가 쌓인 곳도 있었다. '담배꽁초'는 특히나 가장 많고, 치워도 계속 버린단다.

낙엽과 비닐봉지와 플라스틱, 담배꽁초 쓰레기가 범벅이 된 빗물받이가 보였다. 동석씨가 "치우고 가자"고 했다. 그 앞에 쪼그리고 앉으니 쓰레기가 더 잘 보였다. 목장갑을 낀 손으로 하나씩 주워,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좁은 틈의 쓰레기는 일자 드라이버로 일일이 파냈다.

그러느라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깊숙한 곳의 하수구 내음이 코에 훅하고 들어왔다. 묵직하고 습한 악취였다. 뚜껑을 열고 파냈다면 더 괴로웠을 거였다. 그 일을 사람이, 곁에 있는 이들이 빠짐없이 한 거였다.

개똥 봉지 놓여 있고…냄새난다며 '장판'으로 덮어놓고
차라리 바닥에 버리는 게 낫겠다. 치우는 게 훨씬 더 힘들어진다. 담배꽁초 제발 좀 아무데나 버리지 마세요./사진=금천구청
두 사람이 워낙 잘 치워놓아 빗물받이 대부분은 깨끗했다. '평소 관리'의 힘이었다. 보기에도 깔끔하고, 빗물에 막힐 염려도 없어 좋아 보였다. 그러자 동석씨는 체험하러 온 나를 걱정하며 틈틈이 이리 말했다.

"여기 시장 골목은 빗물받이 쓰레기가 정말 심했는데요. 이젠 깨끗해요. 다 파내가지고요. 어디 하나 지저분한 데가 없네요! 금천구는 여러 자치구 중 제일 깨끗하다, 그렇게 얘기해주세요. 하하하."

개똥을 여기에 버린 인간은 대체 누굴지. 나이가 지긋한 이들이 허릴 이리 깊이 숙여서 하나하나 줍고 있다. 모두가 못 봤을진 몰라도, 버린 자는 알 거다. 자기가 벌인 일이란 것,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나 그리 깨끗할 수만 있으랴(하하). 아니나 다를까, 걸어가다 까만 비닐봉지 하나가 보였다. 그걸 본 동석씨가 "그거 개똥이여, 개똥"이라고 했다. 다가가 들어보니 물렁물렁했다. 개똥이 맞는 것 같았다. 송선훈 금천구청 치수과 주무관 "어떤 동에선 빗물받이 뚜껑을 열어 안에다 개인 쓰레기를 넣고 닫은 경우도 있었다"고 혀를 찼다.

동네 소담한 공원에서 음료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는 빗물받이 전담관리자 두 분./사진=음료수를 쏜 남형도 기자

한여름 땡볕은 피할 곳이 많지 않았다. 무더위가 본격 시작되는 날씨라 땀이 금세 주르르 흘렀다. 경사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동석씨도 수건을 아예 목에 두른 채, 땀을 계속 훔쳤다. 중간에 공원이 보이면 의자에 앉아 숨을 골랐다. 동석씨가 "얼음물 드세요"라며 컵에 콸콸 따라주었다. 찬물이 달궈진 목구멍을 뚫는 순간 시원히 숨통이 트여 살 것 같았다.

"비 오는 날, 물 빠지는 것 보면 속이 뻥 뚫리지요"
청소라고 해서 별다른 방법이 있는 게 아니다. 뚜껑을 열고 안에 있는 걸 줍고 쓰레기 봉투에 버리고. 그러니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함부로 버리지 않으면 된다. 여긴 쓰레기통이 아니므로./사진=금천구청
심각한 빗물받이를 청소하겠다며 왔다가, 깨끗한 걸 마주했을 때. 실은 심히 걱정했었다. 문제가 있는 걸 보여줘야 하는데 싶어서. 그러다 문득 그걸 바라보는 동석씨와 현덕씨 표정을 봤다. 자랑스러워 보였다. 그럴만했다. 실은 그건 원래 깨끗한 게 아녔고, 그들이 일일이 치워낸 거였으므로.

그래서 그저 있는 그대로 잘 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이리 물어보았다.

"비 많이 오는 날에요. 빗물받이가 깨끗하니, 콸콸 물 빠지는 거 보면 좋으시지요?"(기자)

"아우, 그럼요. 속이 아주 시원하지요. 막혔던 제 몸 여기저기가 내려가는 것 같아요. 깨끗해서 보기도 좋고요."(동석씨)

"아무렴요. 조장님이 잘해주신 덕분에요."(기자)

"하하하하하, 다른 조도 깨끗할 거예요. 엄청 고생들 했거든요. 정말요."(동석씨)

하수구 냄새가 올라온다며 겹겹이 쌓아 빗물받이를 막아둔 사람. 비가 갑자기 쏟아지면 물이 빠질 수 없게 돼 문제가 생긴다./사진=남형도 기자

셀 수 없이 많은 빗물받이를 돌아보았다. 바뀌었으면 하는 게 있었다. 악취가 올라온다며 저마다의 덮개로 막아놓은 게 많았다. 동석씨는 "한 20~30%는 덮여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다 갑자기 빗물이 쏟아지면 막히는 경우가 많다고. 어떤 빗물받이는 아예 뚜껑을 열고, 안쪽에 장판으로 덮어놓았다. 드라이버로 구멍을 뚫었으나 내려가기엔 시원찮아 보였다. 빗물받이가 덮인 걸 보면 살짝 치워두는데, 구청에 1시간 동안 민원 전화를 넣은 몰상식한 이도 있단다.

끝으로 시민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가 있냐고 물었다. 너무 상식적인 얘기가 돌아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기에 꼭 남긴다.

"쓰레기 많이 버리지 말고, 특히 담배꽁초 빗물받이에 넣지 말고요. 자기 집 앞은 자기가 쓸었으면 좋겠습니다."

찬물을 따라 마시는 장동석 조장님.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따라가는 것만 해도 쉽지 않았다. 얼음물은 필수였다./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오가며 만나는 공원. 거기 소담한 그늘이 가장 좋은 쉼터였다. 쉬고 있는데, 동석씨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눴다. 쉼이 끝나고 걸으며, 그에게 무슨 이야길 했느냐고 물었다. 동석씨보다 일하는 시간이 더 길어서, 돈을 더 버는 이와의 대화였단다. 눈빛에 아쉬움이 묻어있기에 그에게 물었다.

"더 일하시고 돈을 더 버는 게 좋으신 거지요?"(기자)

"그럼요, 당연한 말씀이지요. 집에 빨리 가서 뭐 하겠어요. 물가는 물가대로 너무 올랐고요."(동석씨)

그리고 그가 이리 덧붙였다.

"자식이 둘이에요. 둘 다 대학생이고요. 아르바이트는 다 하는데…."

그제야 알았다. 나보다 20년을 더 살아 무릎이며 허리가 욱신거린다고 했음에도, 그의 발걸음이 몹시 치열했던 이유를.

경사가 가파른 언덕길도 평지처럼 성큼성큼 가던 사람, 아니 두 자녀의 아버지./사진=남형도 기자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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