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속 다녀왔습니다"…'스즈메' 고향 오이타가 열렸다[르포]
폐허 속 낡은 문, 실제 운영 중인 온천과 기관차공원·학교…불편한 교통은 숙제
(오이타=뉴스1) 금준혁 기자 = "아뢰옵기도 송구한 히미즈의 신이시여. 머나먼 선조의 고향 땅이여. 오래도록 배령받은 산과 하천이여. 경외하고 경외하오며, 삼가 돌려드리옵나이다."
올해 국내에서 개봉돼 흥행에 성공한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재난의 문을 잠글 때 외우는 주문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으로 일본 전역에서 재난의 문을 닫는 소녀의 이야기인데, 일본 규슈 동부 오이타(大分)현을 주배경으로 한다. 지난달 22일 제주항공의 취항으로 문이 열린 오이타를 다녀왔다.
거점으로 잡은 벳푸시에서 전철로 한 시간을 달려 오후 6시40분쯤 도착한 우스키항. 시간이 안 맞았는지 배는 떠나고 없었다. 기대했던 오렌지 굴뚝이 두개 달린 증기선 대신 근처에서 검은색 굴뚝을 가진 배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우스키항은 스즈메가 남자 주인공인 소타와 미야자키현을 떠나 '오렌지 시코쿠 페리'를 타는 곳이다. 영화에서는 미야자키에서 바로 페리를 타고 에이메현의 야와타하마항을 가지만 실제로는 이곳에서 타야 한다. 미야자키는 규슈섬에, 에이메는 일본을 이루는 4개의 섬 중 가장 작은 시코쿠섬에 있다.
조선소가 있는 탓에 바다냄새보다 기름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기름냄새와 용접소리를 따라 우스키역에서 10분 정도만 걸으면 우스키항을 찾을 수 있다. 타워크레인이 긴 손으로 여행자를 안내한다.
스즈메의 등굣길도 근처에 있다. 스즈메의 고등학교와 스즈메가 소타를 만나러 학교를 땡땡이 치는 건널목이 함께다.
역으로 돌아와 6분 정도를 걸으면 우스키 고등학교가 나온다. 에어컨 실외기, 네개씩 배열된 창문 속으로 보이는 커텐, 툭 튀어나온 학교 옥상, 창문을 가리는 나무도 그대로다.
바로 앞 건널목에 있는 표지판 글씨부터 간이 화장실까지 구현돼 있다. 잠시나마 스즈메의 친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영화의 헤드카피처럼 '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칠 것만 같다.
다음날 본격적인 문단속에 나섰다. 스즈메가 변덕스러운 자연의 상징물이자 흰 고양이로 변신하는 다이진의 요석을 뽑으며 문단속 난이도가 극한으로 올라가는 시발점을 찾으러 갔다.
유노히라 온천은 영화에서 폐허가 된 온천마을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사람이 사는 지역이다. 그러나 가는 길은 다이진만큼이나 변덕스럽다.
도쿄같은 대도시를 떠올려서는 안된다. 배차간격도 듬성듬성하지만 열차도 느릿느릿하다. 이따금 무궁화호가 다니는 한국의 시골마을을 떠올려야 한다. 이를 얕본 초보 여행자는 하루 계획을 모두 바꿔야 했다.
오전 8시 열차를 놓쳐 오전 9시50분쯤 탄 열차는 한시간 반이 지난 오전 11시23분에 유노히라역에 도착했다. 역에 간다고 끝이 아니다. 유노히라 온천마을은 역에서 5㎞ 떨어진 곳에 있다.
택시를 순순히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역에서 내리는 순간 택시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접게 된다. 산골 마을의 중턱에 덩그러니 있는 작은 역,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 것도 없다.
다행히 역에 상주하는 직원이 콜택시를 불러줬다. 파파고, 손짓발짓, 그림까지 동원했지만 "택시를 타고 들어가 한시간을 머무르고 역으로 돌아오는 택시를 잡고 싶다"는 말을 서로가 이해하기까지는 10분이 넘게 걸렸다.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인류애를 보여준 직원에 감사할 뿐이다.
역에서 택시를 타고 미시령처럼 구비구비한 산길을 10분정도 가다 보면 미지의 온천마을을 드디어 마주한다.
실제 폐허는 아니지만 못지 않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다. 오르막길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있는 료칸에서는 사람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하천에서 들리는 물소리 그리고 하천 상류의 공사장 소리가 전부다.
그래서 영화의 분위기를 내기는 제격이다. 빛바랜 홍등이 길마다 걸려 있고 모티브가 된 소품 가게와 다리가 있다. 우스키처럼 싱크로율이 높다고 볼 수는 없지만 느낌만큼은 닮아 있다. 마을 자체가 크지 않다 보니 10분이면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다만 이곳을 찾기 위해 들인 노력에 비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의 포스터에도 나온 최초의 문. 실제로는 유노히라에 없기 때문에 분고모리역으로 다시 이동해야 한다. 유노히라역에서는 철도로 한시간 정도 떨어져 있다.
역에서 10분정도 거리에 과거 증기기관차의 차고지로 쓰이던 분고모리 기관고가 있다. 원형의 돔구조에 이가 빠진 유리창, 원형의 구조에 서있는 철골에 상상력을 입히면 영화의 장면이 떠오른다. 모티브가 된 지역이기는 하나 완전히 같지는 않다. 또 내부를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포토스팟으로 활용하기는 어렵다.
문단속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니 오후 6시를 훌쩍 넘겼다. 교통이 잘 발달된 곳도 아니고 정보가 많지 않아 예상보다 시간을 많이 썼다. 금액을 고려하지 않고 이동해 약 10만원의 비용도 들었다. 고작 20분을 탄 택시비로 2500엔이 나왔을 때는 미터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스즈메처럼 밥을 굶거나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기도 했고 고된 일정에 열차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여행의 묘미라지만 초보 여행자가 즐기기에는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도쿄 인근의 가마쿠라 고등학교가 오랫동안 슬램덩크 성지로 인기를 누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교통의 중요성이 더욱 돋보인다. 아직은 숙제로 남은 셈이다.
rma1921k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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