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국가재정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적은?
[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미디어오늘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세금이 걷히지 않는다. 5월말 기준 전년보다 국세수입이 36조 원 덜 들어왔다. 언론을 보면 세금이 걷히지 않으니, 불용이 예측된다고 한다. 계획한 지출을 하지 않으면 불용이 생기게 된다. 돈이 없으니 하기로 한 사업을 못 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래서 “수입이 적으면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언론보도가 많이 보인다. 불용을 넘어 좀 더 적극적으로 지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보도까지 있다.
그러나 수입이 줄었기 때문에 정부가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언론 보도는 민주주의 국가의 예산 편성 과정을 오해한 것이다. 가정살림과 국가재정은 다르다. 가정살림은 수입규모에 맞춰서 지출규모를 정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국가재정은 세입은 예측의(estimation) 영역이지만 세출은 정치적 자원배분(allocation)의 영역이다. 즉, 소득세를 100조 원을 걷을 것으로 예측했어도 실제로는 110조 원이 들어올 수도 있고, 아니면 90조 원만 걷힐 수도 있다. 예측은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세출은 국민의 대표가 정치적으로 결정한 금액이다. 행정부가 탄력적으로 지출하면 안 된다.
근대국가의 시작이 무엇일까?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정한 세법에 따라 세금을 걷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승인한 곳에 지출하는 것이다. 국회가 땅 파는데 100억 원을 지출하라고 예산 심의 때, 여야가 확정했으면, 행정부는 100억 원을 써서 땅을 파야 한다. 101억 원 지출은 불가능하고, 99억 원 지출도 바람직하지 않다. 비효율적인가? 땅 파는데 100억 원을 쓰라고 주장한 정치인에는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행정부가 국회 심의 결과에 불만이 있다고 자의적으로 지출 규모를 조절해서는 안 된다. 요는 행정부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국회에 정부안을 제출하고 국회 예산 심의 때 확정한 사업은 모두 지출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즉, 국세수입이 적게 들어온다고 행정부가 임의대로 지출 금액을 줄이는 것은 근대국가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는 심각한 반민주적 행위다. 세수가 적게 들어오는데 계획된 지출을 그대로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물론이다. 만약 세수감소 등의 이유로 국회가 승인한 지출을 줄여야 한다면, 정부는 국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를 '세출감액 경정 추경'이라고 한다. 보통 '추경'이라고 하면 '세출증액 경정 추경'이 일반적이긴 하다. 그러나 행정부가 국회가 확정한 세출 규모를 늘리고 싶을 때는 물론이지만, 줄이고 싶어도 국회에 추경안을 제출하고 국회의 승인을 득해야 한다. 국회의 승인 없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정한 지출액을 정부가 임의로 줄이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세수가 줄었기에 불용 가능성이 커졌다는 언론보도는 모두 민주주의의 기본을 망각한 기사다. 세수가 줄어서 만약 지출 축소가 필요하면 정부의 선택지는 불용이 아니라 세출 감액 경정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물론 추경호 경제부총리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추경호 부총리는 “강제적 불용은 없다”고 정확히 밝힌다. 다만, “자연스러운 불용은 활용”하겠다고 언급한다. 여기서 행정부 공무원의 갈등이 생긴다. 회식 자리에서 부장님이 “나는 짜장면, 알아서 비싼 거 시켜”라고 말하면 자연스럽게 최대 지출 금액이 정해지게 된다. 마찬가지다. 원칙적으로는 행정부 공무원은 국회가 정한 금액을 모두 지출하여 불용이 발생 안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추경호 부총리가 “자연스러운 불용을 활용하겠다”고 하면 불용 발생을 없애기 위해 노력할 수가 없다.
주식 투자자들의 격언이 있다. 예측 실패는 용서해도 대응 실패는 용서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세수 예측은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세수결손에 따른 대응 실패는 용서하면 안 된다. 정부는 아직 세수결손을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추경호 부총리는 추경은 없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본예산 세입예측 감액을 국회에 요청하는 '세입감액 경정 또는 세출감액 경정' 추경조차하지 않는다고 수차례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불용 등을 활용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언론은 지출을 줄여서 불용을 활용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한다.
국가재정을 이해하는 가장 큰 적은 국가재정을 가정살림에 비유해서 이해하는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가정살림과 국가살림은 다르다. 가정은 수입이 줄면 지출을 줄이고 수입이 늘면 지출을 늘릴 수 있다. 국가는 내수가 안 좋아서 세수입이 줄면 오히려 지출을 확대해야 하고 반대로 경기과열로 세수입이 늘면 지출을 축소하는 것이 원칙이다. 국가의 지출은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하는 자원배분의 영역이어서 함부로 행정부가 줄이거나 늘릴 수 없다. 국가재정을 가정살림처럼 해석하는 언론이 줄어들지 않는 한 국가재정의 올바른 이해는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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