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식탐탐] ⑫ '사람이 만들고 하늘이 짓는' 자두-살구 교잡종 플럼코트

김진방 2023. 7. 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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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와 살구 장점만 모아 개발…"새콤달콤한 맛과 상큼한 과즙 매력적"
기능성 물질 풍부해 농가소득 개선에 도움…서리피해·후숙 관리 등 숙제

[※ 편집자 주 = 각종 콘텐츠 플랫폼에서 '먹방', '맛집'이 주요 콘텐츠로 자리 잡으면서 먹거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요식업계는 자영업 태동기, 프랜차이즈 시대, 노포·맛집 유행기를 지나 이제는 어떤 식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만들었는지가 중요해지는 '식재료 시대'에 왔습니다. 연합뉴스는 농도(農道) 전북에 자리한 농촌진흥청과 함께 국내 우수 식재료(농축산물)와 가공식품을 중심으로 생산물, 생산자, 연구자의 뒷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또 현업에 있는 셰프와 식음업계 전문가들의 솔직한 식재료 리뷰를 담아내 소비자의 궁금증을 해소할 계획입니다. 코너 제목은 '좋은 식재료를 탐구하고 연구한다'는 의미로 호식탐탐으로 지었습니다.]

자두와 살구 교잡종 플럼코트 '심포니' (전주=연합뉴스) 김진방 기자

(전주=연합뉴스) 김진방 기자 = "어느 농사나 그렇지만, 플럼코트는 손도 많이 가고 쉽게 생각하고서 심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어요. 하늘과 같이 짓는 거지."

지난 6일 전북 완주의 플럼코트 농장에서 만난 이종대(77)·양민영(71) 부부는 하늘을 가리키며 플럼코트 농사의 어려움에 대해 입을 모아 말했다.

이름도 생소한 플럼코트는 자두와 살구의 종간 교잡종으로 살구의 달콤한 맛과 향, 자두의 새콤한 맛과 상큼한 과즙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과일이다.

플럼코트라는 이름도 자두를 뜻하는 '플럼'(plum)과 살구의 애프리코트(apricot)의 합성어다.

유전적으로도 자두가 50%, 살구가 50% 딱 반반씩 섞여 있어 자두와 살구 두 과일의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국내에서는 8∼9년 전부터 농가 생산이 늘면서 고급 과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미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상업적으로 종간 교잡 육종을 했던 품종으로 40년이 넘는 역사가 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발간한 <플럼코트 재배 매뉴얼>(2016)에 따르면 플럼코트는 인위적으로 육종하지 않아도 자연 상태에서 자두와 살구 간 교잡으로 자연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 1755년 유럽에서 자연 발생한 플럼코트가 최초로 보고된 바 있다.

플럼코트라는 용어는 1914년 미국의 식물육종학자인 루터 버뱅크(1849∼1926)가 처음 사용했다.

전통적인 과일은 아니지만, 나름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민간 육종회사를 통해 집중적으로 보급됐으며, 국내에서는 1999년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처음 종간 교잡 육종을 시작했다.

자두와 살구의 교잡이 가능한 것은 '핵과류'(과육이 단단한 한 개의 씨를 둘러싸고 있는 과일) 간 교배조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는 77종의 핵과류가 존재하고, 이론상으로 이들 간 교잡 육종이 가능하다.

실제로 플럼코트 외에도 핵과류 교잡종에는 플럼코트와 자두를 교배한 '플루오트'(pluot)가 있다.

플럼코트 농사짓는 이종대, 양민영 부부 (완주=연합뉴스) 김진방 기자

플럼코트처럼 식물을 서로 교잡 육종을 하는 이유는 부모 식물의 장점을 물려받을 수 있어 병충해 저항성 등 불리한 환경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형질을 보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실수의 경우 기존에 없던 독특하고 새로운 맛의 과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 덕분에 교잡 육종이 널리 행해진다.

물론 교잡종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플럼코트만 해도 대부분 꽃가루가 없어 착과율(과실나무에 과일이 열리는 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수분수(꽃가루 생산만을 위해 심는 나무)로 살구나무를 함께 심어줘야 한다.

또 물 빠짐이 나쁜 땅에 심으면 뿌리 활력이 떨어져 나무가 말라 죽을 수 있고, 나무가 크게 자라는 특성 때문에 나무 간 가격을 충분히 주지 않으면 제대로 생장하지 못한다.

독특하고 매력적인 맛과 비교적 높은 가격만 생각하고 단순한 호기심으로 심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9년간 플럼코트 농사를 지은 양민영씨는 "한평생 복숭아 등 과수 농사를 지어온 우리도 적과부터 수확, 후숙, 수확 후 비료 살포 등 사후 관리까지 상당히 신경을 써서 농사를 지어야 제대로 된 결실을 볼 수 있다"면서 "이 모든 것을 살뜰히 챙긴다 해도 3월에 꽃이 피기 때문에 서리피해를 입으면 농사를 망치게 되니 하늘과 함께 농사를 짓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플럼코트 나무 사이사이 심는 수분수인 살구나무 관리도 초보 농사꾼들이 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움이 있다"면서 "후숙해야 하는 과일이기 때문에 수확 시기가 조금만 늦으면 낙과가 많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대량으로 심기보다는 적정한 면적을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2020년 전남 지역 일부 농가는 착과가 부진하고 수확 과일이 짓물러져 과수나무를 모두 베어내는 '폐농'을 하기도 했다.

이런 모든 어려움에도 플럼코트 농사가 매력적인 이유는 고급 과일답게 ㎏당 시세가 1만4천원대로 복숭아(8천원대)보다 두 배 가까이 높기 때문이다.

이주현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사 (전주=연합뉴스) 김진방 기자

농진청은 국내 환경에 맞춰 2007년 플럼코트 1호 품종인 '하모니'를 개발했고, 2010년 과육이 짙은 붉은색을 띠는 '티파니', 2012년 과중(果重)이 120g 이상 나가는 '심포니' 등 신품종을 육성했다.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보급된 플럼코트는 2011년 5.5㏊, 2015년 50㏊, 2019년 133㏊, 2022년 200㏊로 재배 면적이 점차 늘고 있다.

플럼코트는 맛뿐 아니라 기능성 물질 함량도 높다.

이주현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사는 "플럼코트는 맛도 맛이지만 다른 과종에 비해 폴리페놀과 플라보노이드와 같은 항산화 물질 함량이 월등히 높은 장점이 있어 고기능성 과수로 유망하다"면서 "폴리페놀 함량은 자두의 1.2배, 복숭아의 2.5배에 달하고, 플라보노이드 함량은 자두의 2.5배, 복숭아의 6.5배나 된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사는 "플럼코트가 농가 입장에서 환영받는 이유는 과일을 수확하는 시기가 늦은 과종에 비해 6월에 수확하기 때문에 약제·방제 횟수도 적어 비교적 생산비가 적게 들고, 식재 후 3년 정도면 결실기에 도달해 자본 회수가 빠르기 때문"이라며 "이런 장점에도 재배기술 숙련도에 따라 품질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단순히 새로운 과종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품종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신중하게 농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농진청은 플럼코트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화 시기 모니터링, 후숙 과정 중 식미 평가 등 관련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농가 교육을 통한 재배기술 향상과 지속적인 육종 연구가 이뤄진다면 플럼코트는 자두와 살구의 장점만을 가진 교잡종으로서 농업인들의 새로운 소득 작목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전문가들도 플럼코트의 맛과 생과로서 활용성을 높게 평가했다.

어라우즈 오너셰프인 장준우 셰프는 "플럼코트는 살구와 자두의 장점을 합쳐 놓아 향이 진하면서도 당도와 산도의 균형이 무척 좋은 과일"이라며 "살구나 복숭아는 껍질에 털이 있어 먹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지만, 플럼코트는 껍질째 먹어도 큰 거부감이 없고, 껍질 부분에 향이나 산미가 집중돼 있어 이런 부분에서 강점이 있다"고 평했다.

푸드라이터 정재훈 약사도 "플럼코트는 잘 익은 과일처럼 달면서도 살구의 향이 진하게 느껴진다. 향미뿐 아니라 질감 또한 둘을 섞은 듯 팡팡 터지는 자두의 과즙과 살짝 부서지는 듯한 살구의 조직감이 동시에 느껴진다"며 "꽃향기와 아몬드향이 입안에서 은은한 신맛, 시원한 단맛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매력적이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플럼코트는 생과로 먹어도 좋지만 잘게 썰어 치아바타 위에 올리고 올리브유를 뿌리면 시원한 향미가 증폭된다"면서 "냉장 보관을 하면 향기가 약해지는 점을 어떻게 개선하느냐가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플럼코트를 즐기도록 하는 관건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플럼코트로 만든 디저트 [정재훈 약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도움 주신 분들 : 박진우 농진청 홍보팀장, 김승호 주무관)

chin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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