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역사 한눈에’···30년 만에 새단장한 청주 고인쇄박물관[현장에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가지 않고도 현존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직지)’를 원본 상태로 감상할 기회가 마련됐다. 지난달 28일 재개관한 충북 청주시 흥덕구 고인쇄박물관을 통해서다.
고인쇄박물관에 들어서자 금속활자판이 붙어있는 거대한 책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보니 모양이 다른 3만여자의 금속활자가 빼곡하게 박혀있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장 기능보유자 임인호씨(59)가 밀랍주조법으로 복원한 직지 금속활자다.
장원연 청주고인쇄박물관 주무관은 “활자장이 5년에 걸쳐 복원한 금속활자”라며 “630여년 전 직지를 인쇄한 금속활자를 복원했다. 직지 원본만큼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다시 문을 연 고인쇄박물관은 방문객들이 직지를 더욱 쉽게 이해하고 우리나라 인쇄술의 발전, 일본과 중국 유럽 등 인쇄술의 변화를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청주시는 지난해 9월부터 33억원 사업비를 들여 고인쇄박물관의 낡은 시설 등을 재정비 해왔다. 고인쇄박물관은 연면적 5287㎡ 지하 1층 지상2층 규모로 유물 6100여점이 소장돼 있다.
제1전시실에는 직지가 전시돼 있었다. 1377년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 직지는 상·하권으로 구성돼 있다. 현재 직지의 유일한 원본은 하권만 남아있는 상태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소장 중이다.
이곳 직지는 프랑스 원본을 고해상도 스캔을 통해 원형 그대로 재현한 ‘직지 현상복제본’이다. 옆에는 ‘직지 원형추정본‘도 자리 잡고 있었다.
장 주무관은 “원형추정본은 1377년 직지가 처음 인쇄됐을 당시를 추정해 복원한 책”이라며 “당시 종이와 먹 등을 연구해 원형 그대로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고인쇄박물관은 프랑스국립도서관의 협조를 받아 원본의 종이 성분과 표면 가공에 관한 정보를 과학적으로 조사·분석해 두 책을 제작했다. 원본의 종이 무게와 두께를 고려해 전통 기법으로 제작된 문경 한지를 사용했다.
제1전시실에는 거꾸로 인쇄된 ‘날 일(日)’자와 비뚤어진 ‘사람인(人)’ 등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의 특징 등이 자세히 설명돼 있었다.
제1전시실이 직지를 알리는 공간이었다면 제2전시실은 우리나라 인쇄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서책을 찍어낼 때 오자가 있을 경우 태(笞·볼기)를 30대 맞는다’는 조선 시대 왕실에서 인쇄물을 관리하는 법률 등을 소개돼 있었다.
장 주무관은 “조선 시대 당시 왕들은 백성들을 위해 의학서와 증수무원도와 같은 법의학서 등을 인쇄물로 제작해 배포했다”며 “의학서 등에서 오자가 나온다면 백성들이 피해를 볼 수 있어서 제작자를 엄하게 벌하는 등 엄격히 관리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종 때 금속활자가 더욱 발전했다”며 “‘소학’ 등 백성들의 교육과 문화를 위해 금속활자 기술을 더욱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고인쇄박물관은 또 구텐베르크 박물관과 협업을 통해 양피지와 반달칼, 구텐베르크 성서 등 독일의 인쇄시설도 전시하고 있다. 직지는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서 간행됐다. 고인쇄박물관은 구텐베르크 42행 성서 복사본을 전시하는 등 구텐베르크 박물관과 다양한 교류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대구에서 왔다는 허미정씨(32)는 “고인쇄박물관을 통해 우리나라 인쇄기술의 우수성과 역사, 시대별 의미 등을 시각적 자료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라고 말했다.
청주 고인쇄박물관은 정비된 흥덕사지에 1992년 3월 17일 개관했다. 흥덕사는 고려 우왕 3년인 1377년 직지를 인쇄한 사찰로 그동안 기록으로만 존재했다가 1985년 그 터가 발견돼 1986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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