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현장을가다] ⑧방치된 빈집을 마을호텔·청년주택으로

백도인 2023. 7. 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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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상가는 문화거점시설·청년 창업공간으로 개조하고 거리 정비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작은 정원 만들기' 동참해 아름다운 마을 만들어
순천시 구도심의 놀라운 변화…마을과 상가에 다시 활기

[※ 편집자 주 = 현대 도시의 이면 곳곳에는 쇠퇴로 인한 도시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산업구조 변화와 신도시 개발, 기존 시설의 노후화가 맞물리면서 쇠퇴는 갈수록 빠르고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쇠퇴한 도시들을 방치할 수는 없다. 주민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도시 경쟁력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도시재생은 쇠퇴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그치지 않고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도시의 재탄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도시 재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연합뉴스는 모범적인 도시재생 사례를 찾아 소개함으로써 올바른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순천시 중앙동의 아름답게 정비된 도로 모습 [촬영 = 백도인 기자]

(순천=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한국의 국가정원 1호인 순천만국가정원, 자연의 보물창고인 순천만습지로 유명한 전남 순천시는 근래 가장 뜨는 관광지 가운데 한 곳이다. 그러나 순천만 일대가 주목받기 전에는 구도심의 향동과 중앙동 일원이 순천의 대표적 관광지이자 번화가였다. 이들 지역은 조선시대 순천부 읍성이 있었던 군사와 행정의 중심지였고 이런 역사성을 바탕으로 1980년대까지도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신도시가 개발되고 관광객이 빠져나가면서 이들 구도심은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인구가 줄고, 방치되는 낡은 집과 상가가 빠르게 늘어갔다. 뒷골목은 밤이 되면 나다니기 무서울 정도로 어둡고 지저분했다. 사람이 사는 곳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쇠락한 구도심의 빈집과 상가를 문화시설로 리모델링

이 일대는 2014년 도시재생 선도사업 대상에 선정되면서 옛 영화를 되찾는 여정을 시작했다. 예로부터 크고 작은 공방이 밀집한 지역의 특성을 활용해 '문화의 거리'를 만들자는 콘셉을 잡았다. 먼저 좁고 지저분한 길을 넓힌 다음에 걷기 좋은 길을 만들었다. 곳곳에 주차장을 만들고 골목골목을 깨끗하게 정비했다. 빈집들은 카페, 공유 부엌과 함께 예술학교, 창작스튜디오, 창작마당 등의 문화시설로 리모델링했다. 전국의 예술인들이 낮은 비용으로 생활하며 다양한 창작 작업을 하도록 하자는 구상이었다.

예술인을 위한 거주 및 창작 시설 [촬영 = 백도인 기자]

특히 주요 거점에 조성한 5개의 핵심 문화 및 거주 시설은 보석 같은 존재다. 사진, 시, 한복 등 각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는 전국의 유명 작가들이 무료로 생활하면서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하고 전시회를 열 수 있도록 한 시설이다. 이들 작가와 그 작품을 보고 배우기 위해 많은 지망생과 지인들이 찾아오고, 주민을 상대로 한 작은 전시회와 공연이 펼쳐지면서 문화의 거리를 상징하는 곳이 되고 있다.

관광객과 시민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이 일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무엇보다 유행에 민감하고 소비력이 높은 젊은이들이 몰리는 게 고무적이다. 곳곳에 카페와 술집, 음식점이 생기고 옛 한옥을 활용한 숙박업소들도 속속 자리를 잡고 있다. 최근에는 좁은 골목의 가정집들을 리모델링해 작은 가게를 내려는 젊은 상인들이 늘고 있다. 순천시는 이 골목이 걷는 재미가 있는 데다 가게 종류가 다양한 점에 착안해 '옥리단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새로운 명소로 키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일대의 변화상을 사진으로 담고 있다는 작가이자 주민인 천명규 씨는 "과거에는 사람이 사는 동네인가 싶을 정도로 망가졌는데 천지개벽이라고 할 만큼 바뀌었다"며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면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고, 이제는 빈집과 상가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변했다"고 말했다.

새 명소로 부상하는 옥리단길 [촬영 = 백도인 기자]

도시재생사업으로 빈집과 상가 급감·유동 인구 급증

실제 순천시의 조사 결과 5년여 간의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한 결과 이 일대의 빈집과 상가는 187동에서 7동으로 급감했다. 반면에 유동 인구는 65%나 급증했다.

문화의 거리에서 만난 조수진(25)씨는 "무엇보다 젊은 취향의 카페와 맛집이 많이 있고 아기자기한 골목들이 있어 걷는 즐거움이 있다. 탁 트인 공간과 넓은 주차장이 있어 여유롭고 편리한 것도 젊은이들이 이곳을 자주 찾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작은 하천을 사이에 놓고 향동·중앙동을 맞바라보는 또 다른 원도심 저전동은 동네 빈집을 마을호텔과 셰어하우스, 청년가게, 청년임대주택 등으로 활용해 마을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빈집을 개조해 만든 마을호텔과 셰어하우스는 현재까지 모두 일곱 채다. 하루 최고 15만원이면 정원이 잘 가꿔진 집 한 채를 온전히 쓸 수 있는 데다 도심에 있다는 편리성까지 갖춰 인기가 매우 높다. 조용하고 깨끗하기까지 해 주말이면 일찌감치 동나기 일쑤다. 현재 세 채인 청년임대주택도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

순천초등학교 인근의 저전동 상가 거리에 있는 빈 점포들은 청년들의 창업 공간으로 내놓았다. 이 거리는 학생들이 급감하며 상권이 무너졌던 곳으로, 현재까지 7곳을 리모델링해 제공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세련된 감각으로 무장한 청년들의 가게가 속속 문을 열면서 상권은 조금씩 회복세를 보인다.

저전동의 빈집 개조해 만든 마을호텔 [촬영 = 백도인 기자]

이들 사업은 유동 인구를 늘려 노인들만 남다시피 한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또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 자체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상당한 일자리 창출과 주민소득 창출 효과를 내고 있다.

집수리 공구를 대여해주는 에코마을관리소, 마을 공유경제를 실현할 경제 및 문화예술시설인 공유경제복합시설 등 주민을 위한 시설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주민들 담 허물어 정원 공유하고 공터에는 화단 조성

저전동의 가장 큰 자랑이자 특징은 '이웃사촌 정원 만들기'다. 엄밀히 말하면 정원을 만든다는 것보다 담을 허물어 집 안에 있는 정원을 이웃과 공유하는 것이다. '정원의 도시' 순천이라는 지역적 특징을 살린 사업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모두 11가구가 담을 허물었다. 아직 담을 허물지 못했거나 내놓을 만한 정원이 없는 주민들은 대신에 집 앞 도롯가나 작은 공터에 꽃을 심어 화단을 만들고 있다. 거의 예외 없이 모든 집이 참여하고 있다.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는 공공기관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100년 전통의 저전성당이 담을 없애고 정원을 개방했으며 순천남초등학교도 담 없는 학교 만들기에 동참했다. 순천시도 작은 자투리땅들을 소규모 정원으로 탈바꿈시키는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덕분에 저전동은 골목 어디를 가나 꽃과 나무가 가득한, 크고 작은 정원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소식이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주말이면 마을을 둘러보려는 방문객들이 줄을 잇고 있고 이 덕분에 동네 상가들의 매출도 껑충 뛰었다.

저전동의 '이웃사촌 정원'과 길가 작은 화단 [촬영 = 백도인 기자]

'저전골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의 이강철 사무국장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민들이 담을 허물고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다"며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많다 보니 이웃들끼리 서로 잘 알고 공동체 의식도 높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고 해석했다.

주민 김익순(83) 할머니는 "우리같이 나이 많은 주민들이 할 일도 없고 하니까 심심풀이 삼아 화단을 가꾸는 것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웃어넘기면서도 "사실 매일 물 주고 풀 뽑고 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내 동네고 내 집 앞이니 내가 잘 가꾸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임창우 순천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은 "이 도시재생사업은 전국적으로 가장 초창기에 시작한 것임에도 가장 성공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며 "지역의 특색과 여건을 최대한 살리고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낸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doin1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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