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낭만 캠핑’ 어디까지 해봤니…빗소리×커피 ‘설렘 주의’
텐트 말리는 수고로움 괜찮다면
빗소리와 커피 한잔 ‘설렘 조합’
계곡·물가 위험…비탈길 피해야
지난주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됐다. 기상청에서는 6월 하순부터 7월 하순까지 장마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8월 하순에는 가을장마가 있을 거란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낭만 캠퍼라면 더 없이 기다렸을 우중 캠핑의 계절이 돌아왔다. 빗소리 듣기 좋은 곳, 강원 영월로 떠났다.
비가 내리면 숲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숲속에서 오롯이 고요한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다. 어떤 여행자들은 곧장 비 소식에 실망을 감추지 못하기도 하지만 낭만을 추구하는 캠퍼들에겐 또 다른 설렘주의보가 되곤 한다. 떨어지는 빗소리 들으며 정성스레 내린 커피 한잔을 마시는 기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비가 내리면 모든 사물의 냄새가 평소보다 짙어진다. 흙냄새, 풀 냄새, 숲 냄새, 그리고 커피 향까지도. 타닥타닥 텐트에 부딪히는 빗소리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 날, 그 순간만의 특별한 백그라운드뮤직(BGM)이 되어 주니까.
영월, 동강, 산수화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꽤 오랫동안 그 시간이 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늘 그랬다. 캠핑에서의 비는 어떤 냄새보다 강한 기억이 되었다. 지난 주말부터 장마 소식이 들려왔다. 마음만 먹으면 한 달 내내 우중 캠핑을 즐길 수도 있을 테다. 우중 캠핑 ‘시즌 온’. 이런 날엔 캠핑장도 한가롭다. 평소라면 캠핑장에서 흔히 마주하게 될 이런저런 소란함이나 방해 없이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비 소식으로 망설일 이유가 없다.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보다 떠나야 할 핑계가 훨씬 더 많으니까. 비록, 텐트를 치거나 말리는 등의 성가신 일들이 남아 있다 할지라도.
밤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더니 오전엔 빗줄기가 잠시 잦아들었다. 트렁크에 반려견 바다(보더콜리 17㎏·중형견)의 켄넬을 먼저 실었다. 그 옆으로 텐트와 침낭 등의 캠핑에 필요한 장비들이 차곡차곡 자리를 채웠다. 바다와 아파트 단지 내 산책길을 한 바퀴 돌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배변 활동을 충분히 시켜주면 차량 이동 중에 반려견이 배변 실수를 하거나 멀미할 가능성을 줄여준다. 바다는 거의 매주 여행을 떠나는 편이라 이런 이동에 익숙하다. 수년간의 여행 경험으로 이제 바다는 수 시간 걸리는 장거리 여행도 문제없이 거뜬하다. 트렁크 문을 열고 “들어가”라고 말하자, 가볍게 뛰어올라 켄넬 속으로 한 번에 착지한다. 자리를 잡고 편안하게 엎드린 모습을 확인한 뒤 트렁크 문을 닫았다.
집에서 영월까지는 차량으로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도착해서 텐트를 막 치고 나니 잦아들었던 빗줄기가 다시 굵어졌다. 릴렉스 체어에 앉아 핸드밀 손잡이를 돌린다. 얼마 전에 구입한 에티오피아 원두가 둔탁한 소리를 낸다. 스토브 위에서 바글바글 물이 끓는 소리가 빗소리와 섞이며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막 내린 커피는 습도가 높은 날씨에 더욱 진한 향을 뿜어냈다.
비 오는 영월의 동강은 거칠게 흐르고 높은 산과 낮은 구름이 채도 낮은 그림의 한 장면으로 아름답게 펼쳐졌다. 그래, 이 맛이지. 최근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 맘 졸이던 일, 복잡했던 마음에서 한순간에 놓여나는 기분이었다. 가볍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맑아진다. 흐르는 동강, 그리고 타닥타닥 떨어지는 빗소리, 코끝을 간질이는 커피 향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순간이다. 캠핑 한 번으로 달라질 현실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힘을 내고 일상을 다시 살아낼 마음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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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미술 감상은 덤
산 좋고 물 좋은 영월이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힐링 가득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겠지만, 영월의 매력을 더 진하게 느끼고 싶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은 강물이 굽이치면서 지층이 깎여 만들어진 자연 곡류하천이다. 이름처럼 한반도 모양의 절벽지형으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를 꼭 빼닮아서 인상적이다. 전망대에 올라 이곳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는 것도 좋겠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뗏목 체험을 추천한다. 모터를 달아 만든 뗏목을 타고 한반도 지형을 한 바퀴 둘러보는데, 동승한 가이드의 ‘영월 사투리 설명’이 흥미롭다. 젊은달와이파크는 작가들의 예술 감성을 한눈에 만날 수 있는 미술관이다. 거대한 붉은 조형물인 ‘붉은 대나무’가 인상적인 곳으로 입구부터 압도적인 색감과 스케일에 놀란다. 이곳에서는 다채로운 현대미술 작품과 박물관, 공방이 있는 복합예술공간을 만나볼 수 있는데 젊은달와이파크의 시그니처인 ‘붉은 대나무’ 외에도 새빨간 선들의 세계를 걷는 듯한 긴 통로를 형상화한 ‘붉은 파빌리온’, 강원도 소나무 장작을 엮어 만든 ‘목성’ 등이 있다. 다채로운 색감과 재치있는 작품들이 많아 어느 곳에서 사진을 찍어도 특별한 추억이 돋보이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다음날 아침,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산등성이 아래로 내려앉은 구름이 예쁘더니 한낮에는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다. 돌아오는 길 우리도 젊은달와이파크에 들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원주 뮤지엄 산에서 한창인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 청춘’ 전시회도 보았다. 폭염에는 캠핑만 고집하지 않고 시원한 공간을 찾아 여유롭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테다.
알아 두면 좋아요
1. 우중 캠핑은 낭만이지만 국지성 호우가 잦은 지역이라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장마철에 계곡이나 물가에서 캠핑은 피해야 한다. 경사가 급한 비탈길도 주의할 것. 자칫 산사태로 돌에 깔릴 수 있다.
2. 타프나 거실형 텐트의 지붕에 고이는 빗물은 수시로 쏟아주거나,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도록 경사를 조절하자.
3. 천둥·번개가 칠 때, 타프 폴대에 낙뢰를 맞을 수 있으므로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다.
4. 텐트 안에서 가스 랜턴이나 스토브를 사용하지 말자. 텐트 안 습기 조금 없애려다 자칫 화재나 화상, 질식의 위험에 처할 수 있다.
5. 우비와 김장용 대형 비닐을 꼭 챙기자. 비를 맞으며 텐트를 철거할 때 유리하다. 비가 오는데 깔끔하게 정리하겠다는 마음보다는 무조건 비닐에 넣고 집에서 맑은 날 펼쳐 말리는 게 좋다.
글·사진 홍유진
여행작가. 1년의 절반은 타지에 살며 그곳에서의 삶을 기록한다. <오늘부터 차박캠핑>, <보통날의 여행>, <나만의 여행책 만들기>, <시크릿 후쿠오카>, <무작정 따라 하기 오사카. 교토>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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