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서평 유레카] 고대 한반도 살던 조상은 한민족 아니라 ‘인류’였다
인류의 진화ㅣ이상희 지음ㅣ동아시아ㅣ276쪽ㅣ1만6000원
먼 옛날 인간과 침팬지의 조상은 하나였을까. 그 조상은 어떻게 걸어다녔을까.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됐을까. 수백만년전 고인류는 정말 난폭한 사냥꾼이었을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왜 지구에서 사라졌을까. 한국인들은 모두 단군의 자손인 한민족일까.
인류의 진화에 대한 물음에는 완벽한 답이 없다. 고인류학자들도 땅속에 수백만 년간 묻혀 있던 고인류의 화석을 보고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과거 수십 년 동안 믿어왔던 정설도 새로운 화석이 발굴되거나, 새로운 연구 성과가 나옴에 따라 뒤집히기도 한다.
이상희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쓴 ‘인류의 진화’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최근 연구 성과와 과학적 발견을 한 권에 담은 다이제스트다. 한국인 최초의 고인류학 박사인 저자는 이 책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네안데르탈인 등 고인류들이 속한 호미닌(사람아족)부터 한반도에 살았던 고인류까지 기나긴 이야기를 풀어냈다.
20세기 중반까지 학계에서는 고인류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에서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을 거쳐 마지막으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다고 생각했다. 한 줄로 늘어선 듯이 진화해 ‘우수한’ 사람으로 완성됐다는 주장이다. 20세기 후반에는 고인류가 나뭇가지처럼 뻗어가는 모양으로 진화했다는 주장을 정설로 받아들였다. 하나의 공통조상에서 두 개 이상의 자손으로 진화하기를 반복해 결국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 호모 루돌펜시스, 호모 에르가스테르 등 다양한 화석종이 발굴됐고 지금도 후속 연구 성과들이 나오고 있다.
21세기인 지금은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나뭇가지끼리 얽힌 듯이, 서로 다른 종 사이에서도 유전자 교환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전 인류 진화도에서 네안데르탈인은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주지 못하고 멸종한 패배자다. 하지만 최근 연구결과 우리의 유전자 중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발견됐다. 이상희 교수는 “인류의 진화는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앞으로 행진하는 모습도, 곁가지와 본가지로 갈라져서 울창한 아름드리나무가 되는 모습이 아니라 갈라졌다가 다시 만나고 다시 갈라지는 강 줄기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고인류학은 새로운 고인류 화석이 발굴되고 미토콘드리아 분석, DNA 분석 등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놀라운 사실이 지속적으로 밝혀진다. 최근에는 기후학과 지질학 등 다른 분야와 융합한 연구를 통해서도 인류 진화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이 밝혀지고 있다.
인류가 고기를 사냥해 먹으면서 지능이 폭발적으로 발달했다는 정설도 깨어졌다. 학계에서는 약 20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석기로 동물을 사냥하며 육식을 시작했다고 본다. 약 500만 년 전부터 줄곧 아프리카에서만 살았던 고인류가 이때 대형 동물을 따라 유라시아까지 따라가며 전 세계로 퍼졌다는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가 뛰어난 사냥꾼이라는 증거는 동시대에 살았던 동물의 뼈 화석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당시 동물 뼈 화석에서는 대다수 V자로 난 흔적 위에 U자 흔적이 난 것으로 관찰됐다. 호모 에렉투스가 뾰족한 석기로 고기와 내장을 얻은 후에 다른 짐승이 와서 이빨로 남은 찌꺼기를 먹었다는 뜻이다.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었다. 당시는 고인류의 두뇌 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때였다. 두뇌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고기에서 얻었다면 고인류 화석과 함께 발굴되는 동물 뼈 화석의 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나야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호모 에렉투스 이후로 그 수는 늘지 않았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는 최신 연구 성과들을 소개했다. 당시 동물 뼈 화석 중에는 U자 흔적 위에 V자 흔적이 난 것도 다수라는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가 뛰어난 사냥꾼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다른 짐승이 먹고 지나간 찌꺼기도 먹었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연구 결과에서는 고인류가 곤충식을 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현재 몇몇 문화권에서 곤충을 끼니로 먹는 것처럼 고인류도 곤충으로부터 충분한 칼로리를 얻었을 거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검은모루 고인류 유적과 력포사람, 화대사람 등 한반도에서 발굴된 고인류에 대해서도 재미나게 다뤘다. 그는 한민족의 기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저마다 부모가 두 명 있다. 위로 3대째인 조부모는 네 명, 4대째인 증조부모는 여덟 명 등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20대째 조상은 104만 명이 훌쩍 넘는다.
저자는 “1000년을 넘으면 더이상 조상의 의미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현재 지구상에 살고있는 모든 사람의 조상은 5000년 전에 살고 있던 모든 사람”이라며 “현재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조상들이 한반도에만 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한민족’은 과학적이고 생물학적인 실체가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인 개념”이라며 “누가 한민족에 속하는지 조상과 자손의 관계에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생물학적 조상 중 특정한 사람을 조상으로 인정하고 다른 이는 제외하는 사회적 관계에서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한반도의 고인류를 찾고 연구하는 일은 단일 민족의 기원을 찾는 일이라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며 “오히려 바다가 땅이었던 시절에 지금의 한반도에 살고 있던 고인류는 한민족이 아니라 인류였다는 사실을 다시 살펴볼 수 있다”고 결론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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