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주도 탄소 배출권 시장 열릴까… 당국, 관련 사업 검토 착수

정현진 기자 2023. 7. 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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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에 이상 고온이 이어지면서 전세계 탄소 배출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국내도 자발적 탄소 배출권 시장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융당국은 자발적 탄소 배출권 시장 개설 방안에 대해 검토 중이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4월 해외의 자발적 탄소 배출권 시장에 대한 현황 파악에 나섰다. 거래소는 지난 2015년부터 환경부로부터 위탁받아 배출권 거래 시장(K-ETS)을 운영해 오고 있다. 금융위원회도 올 초부터 일본 금융청과 관련 논의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2018년부터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한 탄소배출권 거래 플랫폼 인증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우리 정부는 올해 초 토큰증권(STO) 발행과 유통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새로운 형태의 증권 시장의 개막을 알린 가운데, 자발적 탄소배출권을 STO 형태로 발행하는 방안이 함께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래픽=정서희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자발적 탄소 시장·VCM)은 정부가 주도하는 기존 탄소배출권 시장(규제적 탄소 시장·CCM)과 달리 민간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장이다. 유럽·싱가포르·일본 등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에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21년 미국 컨설팅회사 맥킨지앤드컴퍼니에 따르면 탄소 크레딧의 발행 규모는 2020년 2억3400만톤에서 2021년 3억7800만톤으로 60% 이상 증가했다. 2030년까지 CCM과 비슷한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정부가 주도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목표에 맞게 배출권 거래제 대상 기업과 각 기업의 탄소 배출 허용량을 설정한 후, 이에 맞는 탄소 배출권을 무상으로 기업에 할당한다. 할당량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은 초과분만큼의 배출권을 다른 기업으로부터 사들여야 한다. 이렇게 정부가 나눠주는 탄소배출권이 거래되는 시장이 기존의 CCM이다.

기업이 실제 탄소 배출량과 허용배출량 차이만큼의 잉여 배출권을 팔 수 있다는 점에서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기업에 적극적인 탄소 감축 유인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 일례로 포스코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지난 2015~2020년 동안 정부로부터 할당받은 배출권을 팔아 약 5600억원의 이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포스코는 “다른 기업과 배출권을 교환하며 잡힌 평가이익을 제외하고 실제 배출권 순매도로 얻은 수익은 약 1000억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철강 산업 특성상 탄소 배출을 많이 할 수밖에 없어, 국내에서 가장 많은 무상 배출권을 할당받는 기업 중 하나다.

하지만 CCM에서는 탄소배출권 거래제 대상 기업 간의 배출권 거래만 이뤄지는 만큼, 비대상기업의 탄소 감축 활동을 유도할 수가 없다는 한계가 있다. 또 대상 기업이어도 최대 할당량만큼의 배출권만 팔 수 있다 보니 기업의 더 적극적인 탄소 감축 활동을 제한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VCM이 CCM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시장으로 떠오른 것이다. VCM에서 거래되는 탄소 배출권은 참여자가 자발적으로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프로젝트를 이행하고, 공인 기관에서 이를 인증받아 획득하는 탄소 배출권(크레딧)이다.

VCM에서는 배출권거래제 대상 기업뿐 아니라 비대상기업, 개인과 비정부기구도 탄소 배출권을 사고팔 수 있다. 다양한 시장 참여자가 VCM에서 크레딧을 팔아 추가 수익을 거둘 수 있고, 이미 CCM에서 잉여 배출권을 팔아 수익을 내는 기업도 VCM에서 또 크레딧을 팔아 추가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VCM이 도입되면 국내 배출권 시장의 가장 큰 단점으로 꼽혔던 유동성 부족 해소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2022년 기준 배출권 거래 시장(K-ETS)의 거래량은 1200만여톤으로, 배출허용총량(6억1100톤)의 2% 수준에 불과하다. 미진한 거래량 탓에 가격 변동성도 크다. CCM의 보완적 성격인 VCM이 개설되면 배출권 거래가 늘면서 국내 CCM 시장의 성장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리너리가 지난해 4월 22일 자발적 탄소 배출권 거래 플랫폼 '팝플'의 운영을 시작했다. /그리너리 제공

국내에서는 대한상공회의소와 SK 등이 VCM 개설에 앞장서 왔다. 대한상의는 지난 3월 토종 자발적 배출권 시장을 연내 개설하겠다고 밝혔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자 SK그룹 회장이 이끄는 SK도 올해 초 UAE 국부펀드인 ‘무바달라’와 자발적 탄소시장 아시아 파트너십 구축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지난 2021년에는 국내 유일 크레딧 인증기관인 탄소감축 인증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국내 스타트업 그리너리는 지난해 탄소 크레딧 거래 플랫폼인 ‘팝플(POPLE)’을 선보였다.

이와 더불어 최근 국내 금융당국이 투자자가 신뢰할 수 있는 VCM 개설을 위해 본격적인 검토에 나선 것이다.

VCM에서 거래되는 대상이 ‘크레딧’인 만큼 크레딧에 대한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이 VCM 활성화를 위한 핵심 과제로 꼽힌다. 이에 따라 모든 거래 정보가 기록되는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한 크레딧 발행이 주목받고 있다. 올해 초 금융위원회가 도입한 STO와 VCM의 결합 가능성이 높아지는 이유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적으로 자발적 배출권 거래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면서 “특히 블록체인 기술이 가진 높은 투명성과 보안성을 통하면 탄소배출권 거래 추적이 가능해진다는 점이 장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상자산과 연계하면 거래가 용이해지고 투자자 유입이 늘면서 배출권 유동성이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또 “올해 초부터 조각투자 등 STO 수혜가 기대되는 분야로 민간 기업의 사업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져 왔는데, STO로 민간 기업의 배만 불린다는 지적이 있었다”면서 “VCM과 STO의 결합으로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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