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달래기 어렵네” 유상증자 때 무증 카드 끼워 넣어도 안 먹혀
주주 달래기용 무상증자 동시 진행...생색내기·자본 돌려막기 우려도
최근 주식시장에서 유상증자와 무상증자를 동시에 진행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기존 주주들에게 손을 벌려 자금을 마련하는 동시에 주가 부양책으로 무상증자를 진행해 주주들을 달래려는 의도다. 무상증자를 한다고는 하지만 대다수가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업체로 만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곳들이다. ‘공짜 주식’ 꼼수에도 돌아선 투심은 회복하기 어려운 모양새다.
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유상증자와 무상증자를 동시에 결정한 상장사는 피씨엘, 꿈비, 진원생명과학, 에스씨엠생명과학, 클리노믹스, 피플바이오, 노을, 보로노이 등 8개사로 집계됐다.
이중 꿈비를 제외한 7개사는 연구·개발비용이 많은 제약·바이오, 의료기기 기업이었다. 통상 제약·바이오 기업은 제품 상용화 후 이익이 발생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에 투자 유치, 기업공개, 메자닌, 유상증자 등 외부 자금을 조달해 버티곤 한다. 그간 메자닌 채권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지만, 전환사채 콜옵션·리픽싱 규제가 생기면서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규제로 인해 투자자들이 어지간히 좋은 기업이 아닌 이상 메자닌 매수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주주배정 유상증자는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회사 내부에 자금이 필요한데, 외부 투자 유치가 어렵다는 신호를 시장에 줄 수 있어서다. 대규모 유상증자로 지분 가치 희석 우려가 커지는 점도 주가 하락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에 ‘당근’으로 내놓곤 하는 게 무상증자다. 무상증자는 자본잉여금을 자본금 계정으로 옮겨 새로운 주식을 발행하고, 공짜로 주주들에게 주식을 나눠주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기업가치에 변화가 없지만, 신주 발행으로 인한 권리락 효과 및 재무 건전성이 탄탄하다는 의미 등이 반영될 때가 있어 주가부양책으로 쓰이곤 한다.
그러나 올해 유무상증자를 결정한 기업 중에는 재무건전성이 탄탄하지 않은 제약·바이오 기업이 다수였다. 꿈비의 경우, 지난 2월 상장한 새내기 기업인데 상장 3개월 만에 주주들에게 손을 벌렸다. 꿈비는 상장 직전에는 흑자를 유지했지만, 상장 후 올해 1분기부터 영업손실 12억원을 기록해 적자로 돌아섰다.
무상으로 나눠주는 주식 수도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다. 피플바이오, 에스씨엠생명과학, 진원생명과학은 보통주 한 주당 신주 0.2주를 배정하기로 했다. 꿈비(0.3주), 클리노믹스(0.5주) 등도 나눠주는 주식 수가 미미하다. 유상증자 공시 후 주가 하락, 향후 지분가치 희석을 보상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다.
유상증자로 조달된 자금을 무상증자에 이용하는 앞뒤가 바뀐 사례도 있다. 지난 4일 노을은 3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와 보통주 한 주당 신주 1주를 배정하는 무상증자를 결정했다. 노을은 지난 2019년부터 적자를 내면서 자기자본을 까먹는 기업이다. 2분기 20억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내면, 사실상 자본잠식 상태가 된다.
무상증자로 발행하는 신주는 총 1847만3530주로 액면가 500원을 기준으로 하면 자본잉여금 92억원이 필요하다. 이번 유상증자로 300억원을 조달한 후 발행가와 액면가 차이에서 발생하는 주식발행초과금을 이용해 무상증자를 하는 셈이다. 자본잠식 우려도 유상증자가 마무리된 후에야 잠잠해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미 시장참여자들의 마음은 돌아선 분위기다. 지난 4일 장 마감 공시 후 다음 거래일부터 노을 주가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공시 후 첫 거래일인 5일에는 하한가를 기록했고, 전날까지 3거래일 연속 낙폭을 키우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리픽싱 발행 조건이 바뀌기 전까지 제약·바이오 기업은 주로 전환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는데, 리픽싱 조건이 바뀌고 시중 금리가 오르면서 자본조달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며 “주주배정 유상증자로 자본을 조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데, 과거 발행했던 메자닌 채권의 차환 용도가 많아 기존 주주들의 피로감이 높은 상태”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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