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좌파가 다시 프로이트를 읽는 이유[PADO]
[편집자주] 이제는 거의 잊혀졌다고 생각했던 정신분석학이 다시 미국 좌파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 좌파의 사상적 지형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나도 흥미로운 관찰거리이지만 뉴스테이츠먼의 2023년 5월 27일자 기사는 그 이면에 깔려 있는 원인도 함께 살펴보고 있어 값어치를 더합니다. 2020년 버니 샌더스의 민주당 경선이 실패하고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촉발된 'Black Lives Matter'(BLM) 운동도 정치적 역풍을 맞게 되는 등, 상당히 유리해 보였던 상황에서 총체적 실패를 경험한 좌파가 다시 내면의 세계를 반추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진단입니다. 읽어보시면 (필자의 진단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매우 흥미로운 관찰이 될 것입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그에 대한 미국 내 반대파가 의견의 일치를 보이는 지점이라면, 정신분석이 미국인의 삶을 괴롭히리라는 점이다.
"그들은 우리가 역병을 들여온다는 걸 모르고 있네." 1909년 증기선을 타고 뉴욕항에 도착해 처음 미국땅을 밟았을 때, 프로이트가 칼 융에게 했다고 알려진 유명한 말이다. 농담조로 한 말이었겠지만 여기엔 일말의 진심도 담겨 있다. 억압된 미국인들은 분열된 인간 자아 안에서 경쟁하며 비등하고 있는 힘과 마주할 준비가 거의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뉴욕에 도착했을 무렵, 그는 정신분석의 대표자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터였다. 당시 신경증 환자를 위한 새로운 대화 기반 치료법으로 등장한 정신분석은, 꿈을 해석하는 방법이자 사회적·철학적 분석의 역할도 했다. 임상 치료로서 정신분석은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적인 것으로 변용함으로써" 신경증을 치료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리클라이너 소파에 누워 정기적 상담의 형태로 나누는 말 만으로도 충분했다. 프로이트는 "말이란 본래 마법이었으며... 여전히 태곳적 마법의 힘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고 여겼다.
185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프로이트는 자유주의가 승전보를 울리던 시기에 성장했지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 속에서 그는 유럽이 무질서와 유혈 사태에 휩싸이는 것을 목도했다. 인류에 대한 프로이트의 관점에 인간의 완전성과 합리성 개념은 거의 없다. 그는 인간의 정신 활동 대부분이 의식과 전혀 관계없이 일어난다고 여겼다. 성적 본능은 인간의 정신 질환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에도 "극도로 큰" 영향을 미친다. 인류 문명의 성패가 이 강력한 본능을 더 높은 목적으로 전환하는 데 달려 있기 때문이다. 금지된 성적 및 폭력적 행동을 저지르고 싶다는 억압된 충동은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 대중에게 동성애와 같은 "(성적) 도착"도 마찬가지로 널리 퍼져 있다고 설파했다.
역사학자 네이선 G 헤일에 따르면, 초기에 미국에서 프로이트를 폄하하던 이들은 그를 "성적 자유와 비관적 결정론, 자유방임, 퇴폐"를 옹호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역병'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전후(戰後) 몇 년이 지났을 무렵, 미국에서 정신분석은 임상 치료법 및 지식인들의 토론 주제로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미국은 이 프로이트 '역병'에 맞서는 항체를 만들어 낸 듯했다. 프로이트가 처방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그가 풀어놓은 힘을 길들였다. 미국에서 프로이트의 언어는 일상 어휘에 흡수됐고, 정신분석은 비주류 임상 치료법으로 작은 부분을 차지했을 뿐이다. 한편긍정과 신앙고백주의(confessionism), 과도하게 약에 의존하는 새로운 치료 문화가 미국인의 삶 속에서 대두됐다. 그리고 지난 70여년간 사회담론 및 법률 영역에서 혁명적 변화가 거듭되며, 미국 사회의 오랜 성적 금기가 상당 부분 사라졌다. 1979년 미국의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래쉬는 "심리치료가 극렬개인주의와 종교의 지위를 이어받았다"고 썼다. 래쉬는 미국에서 "정신건강이란 억제를 타파하고 모든 충동을 즉각적으로 만족시키는 것"이란 생각이 팽배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이후 자유시장 경제 원리가 부활해 수십 년간 지속되면서 개인을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분열된 자아가 아닌 합리적이고 자기 이익에 충실한 행위자로 보는 관점이 되살아난 듯했다. 인지행동치료 같은 비정신분석 치료가 주류로 떠올랐고 새로운 우울증 치료제가 시장에서 넓게 자리잡았다. 한편 프로이트의 유산은 '비판이론'에 대해 미국이 반발하고 뇌 과학이 정신분석학 접근법의 숙적이었던 행동주의의 영향을 받게 되자, 학문적 논쟁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프로이트의 미국 도착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사에서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렇게 결론짓는다. "프로이트의 사상은 미국 문화에서 점차 밀려났다."
요즘 미국 좌파에서 이를 뒤집으려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프로이트와 그가 창시한 전통에서 미국인의 삶에서 지배적인 흐름과 대비되는 입장을 발견하고 이를 옹호하는 이들이 뉴욕을 비롯한 지식의 중심지에서 새로이 등장하고 있다. 과거의 논쟁이 잡지와 팟캐스트, 좌파 지식인 모임에서 새롭게 펼쳐지고 있다. 이들은 정신분석의 이점이 임상 치료를 받는 개인에게만 국한되는지, 아니면 사회 전체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논한다. 프로이트의 유산이 미국에 역병 대신 치유를 줄 수 있을까?
"사람들이 다시 정신분석으로 몰려들고 있다." 한 문예지의 표현이다. 지난 12월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동굴 같은 교회에서 열린 좌파 정신분석 매거진 '파라프락시스'(Parapraxis) 창간 파티엔 진지한 모습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당시 행사를 다룬 기사에서 파라프락시스의 에디터 해나 지빈은 "21세기를 위한 정신분석"을 모색하려 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도 긴 기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다는 자료를 인용해 정신분석의 유행을 긍정적으로 다뤘다. "사회정의(social justice) 지향적인 정신분석가 집단에 따르면, 프로이트의 사상은 의식에 포착되진 않지만 사회를 창조하고는 그 안에서 인간의 위치를 정립하는 힘들을 이해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정신분석과 미국 좌파의 연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급진 좌파 정신분석의 초기 선구자이자 성 해방 운동가이며 '오르곤 에너지 축적기'를 발명한 빌헬름 라이히는 1939년 미국에 도착한 후, 솔 벨로우와 노먼 메일러 같은 작가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다양한 사회 운동으로 좌파가 마르크스와 역사유물론에 대한 기존의 배타적 애착에서 벗어나고 있던 1960년대, 프로이트가 미국 신좌파의 길잡이로 등극시키는 데 공헌한 이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망명 지식인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같은 이론가였다.
70년대 이후 정신분석의 힘이 쇠약해지면서 미국 좌파에 대한 프로이트의 영향력도 함께 약화된 듯 보이지만 영향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데미지'(Damage) 같은 기성 매체 외에도 뉴욕에서 정신분석학적 글을 소개하는 곳들이 새로 생겼다. 데미지는 정신분석탐구협회(Society for Psychoanalytic Inquiry)에서 내는 온라인 매거진으로 최근 인쇄물로도 확장하고 있다.
"정신분석학은 사회 및 정치적 문제와 사건에 새롭게 접근하는 방법으로서 가능성이 꽤 무궁무진해 보이는 틀입니다." 파라프락시스 매거진의 설립자이자 임상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알렉스 콜스턴이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개인 또는 집단에 대한 (정신) 분석은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비평을 대체할 수 없죠… 정신과 사회는 완전히 일치하지도 않고 완전히 조화를 이루는 것도 아닙니다."
(계속)
김수빈 PADO 매니징 에디터 subin.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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