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보러 갈 오페라도 없는데...대유행한 ‘오페라빽’
‘근래 여학생들의 10분의 7,8은 손에 들고 다니는 ‘오페라빽’-유행중에 유행은 실로 이것이니 모양은 귀주머니 접어서 그려놓은 것같고, 빛은 검정 바탕에 자회색 동을 가로나 세로 단 것, 혹은 검정 바탕에 꽃모양을 접어 붙인 것, 밑에는 솔도 달리고 유리나 ‘세루로이드’로 육모 혹은 방울이 달렸으며 둥그런 쥐일 손은 흰뼈랍니다.’(‘금춘의 류행 의복, 신, 양산’, 조선일보 1925년4월6일)
최신 패션 유행을 소개하는 기사가 신문에 났다. 당시 여학생은 유행을 이끄는 패션 리더였다. 그런데 이 여학생 열명에 일곱, 여덟은 오페라백을 들고 다닌다고 했다. 한 때 거리에서 3초에 1번씩 보인다고 해서 ‘3초 백’ ‘지영이 백’으로 통한 럭셔리 핸드백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이렇듯 광적으로 유행한 오페라백의 정체는 뭘까. 이 기사에서 소개한 학생용 제품은 그리 비싸진 않았던 모양이다. 보통은 1원30전, 여학생용 고급은 3원50전이었다. 오페라백이 뭐길래 여학생들이 앞다퉈 필수품처럼 들고 다녔을까.
◇보러 갈 오페라도 없는데…
오페라백은 1920년대 여학생들의 핫템이었다. 원래는 오페라 보러갈 때 들고다니는 작은 핸드백에서 유래했다. 오페라 공연도 없는 조선에서 왜 오페라백이 유행했는지 알 길이 없다. 1920년대엔 경성공회당과 YMCA강당, 그리고 학교 강당 정도가 서양음악 콘서트를 할 만한 공간이었다. 이곳에선 실내악과 독주회가 주로 열렸다. 오페라는 올려본 적도 없다. 전막 오페라 공연은 1937년 5월26일~27일 경성 부민관에서 올린 ‘나비부인’이 처음이었다. 일본 소프라노 미우라 다마키가 주연 초초상을 맡고, 테너 김영길이 핀커튼을 부른 이 땅의 첫 전막 오페라다. 보러 갈 오페라도 없는데, 오페라백만 먼저 들어온 난감한 상황이었다. 일본을 통해 들어온 ‘박래품’(舶來品)이 빚은 촌극이었다.
◇변사 시험문제에 등장한 ‘오페라 빽’
1920년대는 아직 무성영화시대였다. 무성영화 상영 때는 내용을 설명하는 변사(辯士)가 필수적인데, 새로 변사가 되려면 자격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1927년 2월25일 경기도청이 주관한 변사시험에 오페라백을 묻는 시사상식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어떤 응시자가 ‘괴상한 복면’이라는 엉뚱한 답을 써 시험관을 포복절도하게 했다.(동아일보 1927년3월1일) 변사 면허 응시자들이 대개 남자였기에 생긴 일이다.
◇구슬박은 ‘오페라 빽’ 유행
오페라백은 1920년대 내내 여학생들의 필수품이었던 모양이다. 우산, 양말, 내의와 함께 여성의 일상용품으로 등장할 정도다. 1928년엔 구슬박은 오페라백이 대유행했다.(‘금년 봄에 유행할 양산과 넥타이’, 조선일보 1928년4월4일)
경성제대 예과에 다니던 조용만(1909~1995)은 1928년 안국동을 지나는 모던 걸, 모던 보이를 스케치한 에세이를 썼다. ‘햇빛에 번쩍이는 복사빛 파라솔과 봄바람에 날리는 노란빛 넥타이 그리고 구두 뒤축에 질겅질겅 씹히는 ‘곤세-루’바지와 정갱이 위에 펄렁거리는 ‘사-지’ 치마, 급한 일이나 있는 것같이 부리나케 달아나는 ‘뽀이’의 손에는 발을 떼어놓을 때마다 바이올린이 앞으로 왔다갔다, 황새 같은 ‘뽀이’를 따라가려고 아기적어리는 ‘껄’의 손에는 오페라 빽스가 대롱대롱….’(동아일보 1928년 4월19일) 넥타이와 바이올린, 파라솔과 오페라백은 당시 모던 보이, 모던 걸의 대표적 패션이었다.
◇여성 환심 사는 선물로
오페라백은 젊은 여성의 환심을 사기 위한 선물로도 적당했다. ‘어떤 사람은 ‘오페라 빽’같은 것을 사 보내는 점잖치 못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대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의 몸치장이 아름답고 모던 껄의 대표적 표본이라 할 만한 차림차리를 탐해서 덤비는 악마의 떼와 같은 무리이었습니다.’ (‘모던 걸 참회록’ 177쪽, 별건곤 제16, 17호, 1928.12)
작은 핸드백을 선호하던 유행은 1930년쯤 서서히 바뀌었다. ‘올 가을의 핸드백 모양은 대체로 큰 것이 유행을 합니다. 실상 넓이 여섯치에 길이 네치쯤 되는 것이 제일 실용적일 것입니다.’(‘올 가을의 핸드백은’, 동아일보 1931년9월2일) 물건을 여유있게 집어넣을 수 있는 큰 핸드백이 유행한다는 내용이다.
◇”핸드백대신 책을 든 이가 더 빛나”
박래품인 핸드백 유행이 못마땅했던지 전통 주머니 ‘엽랑’을 핸드백대신 이용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도 있었다. ‘모던 유행과 정취에다 조선 취미를 살립시다’(조선중앙일보 1936년4월12일)란 제목 아래 핸드백 대신 ‘엽랑’을 쓸 것을 추천했다. 하지만 대세를 바꿀 순없었다. 양식 의복에 전통 주머니차림이 어울릴 리도 없었다.
소설가 상허 이태준(1904~?)은 ‘나는 여성 여러분이 핸드빽 상점에보다 책사(서점)에 더 드나드시기를 바라는 자입니다. 아름다운 핸드빽보다 좋은 책을 든 분이 더 빛나 보이더군요’(매일신보 1941년1월22일)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책은 애당초 핸드백과 경쟁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참고자료
‘모던 걸 참회록’, 별건곤 제16, 17호, 1928.12
이서구, 모뽀모걸의 신춘행락 경제학, 별건곤 제51호, 1932.5
최지혜,경성백화점 상품 박물지, 혜화111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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