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살 인도자였다”…소설로 쓴 마약 밀수 반성문
지난달 동대구역에서 처음 만난 임제훈 작가(37)는 작은 목소리로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수줍음이 많아 보였다.
임 작가는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는 게 힘들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2월, 4년의 징역을 살고 만기 출소했다. 오랫동안 갇혀 지냈고, 출소 후에도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가 용기를 내 인터뷰하기로 한 건 지난 6월26일 그가 쓴 장편소설 <1그램의 무게>(북레시피)가 출간됐기 때문이다. 처음 쓴 책으로 내놓은 이 장편소설에 수감 생활의 원인이 된 그의 과거가 담겼다. 그래서 이 책에는 ‘실화소설’이란 설명이 붙었다.
“2017년부터 캄보디아에서 마약 밀수 및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마약 판매 실화 이야기를 소설 형식으로 적어보았습니다.”
임 작가가 지난 2월9일 출판사에 보낸 투고 이메일은 이렇게 시작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마약을 투약하진 않았지만, 팔았다. 돈을 벌기 위해 캄보디아로 가 마약 거래에 뛰어들었다. 주인공 임제훈은 다름 아닌 임 작가 자신이다. 평소 불리는 별명(박사)도 그대로 썼다.
“제가 저지르고 경험한 이야기를 쓴 소설입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책 출간을 알리며 이렇게 썼다.
“마약을 팔면, 투약하면 어떻게 되는지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 막연한 이야기가 아닌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평생 죄악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마약 전과자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뽕? 주사기에 그거?”
2017년 5월23일, 임제훈은 캄보디아행 비행기를 탔다. 중고 핸드폰 수출 사업을 하러 가자던 친구가 얼마 전 했던 말 때문이다.
“캄보디아에 폰팔러 가는 거 아이다.”
“…”
무슨 소리냐는 듯 친구를 봤다.
“마약.”
“…마약?”
“그래 마약. 뽕.”
“뽕? 주사기에 그거?”
친구는 현지에 함께 일할 사람이 있다고 했다. 돈은 된다. 약은 먹지 말자. 목표만 이루고 빠지자.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목표는 간단했다. 빚 다 정리하고 10억씩. 임제훈은 친구의 말에 잠시 침묵했다. 마약은 영화에서나 접한 낯설고 두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큰돈을 만지는 자기 모습이 떠올랐다. 욕심이 두려움을 이기는 순간이었다.
그는 실패한 태권도 선수였다. 고향 대구에서 학창 시절 선수로 생활했지만, 선수로 대학에 가지 못했다. 경찰경호학과에 일반 학생으로 입학했지만, 두껍기만 한 책을 보고 그만뒀다.
이후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다 태국 방콕에서 환치기(불법 송금) 업체에서 일했다. 방콕에선 돈을 잘 벌었다. 그러다 태국에서 쿠데타가 벌어져 한국에 돌아왔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는 카페도 차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일을 하기도 어려웠다. 쉽게 번 많은 돈을 생각하니, 힘들게 벌 적은 돈이 눈에 들지 않았다.
친구와 불법 도박사이트를 시작했는데, 오히려 도박에 빠져 빚쟁이가 됐다. 유흥업소 여성들을 관리하는 ‘보도방’을 차리고, 바닷가 작은 마을에 다방도 꾸렸지만 모두 망했다. 친구 제안에 부산에 핸드폰 가게를 차려 휴대폰을 개통해 유심칩을 팔기도 했다. 그러다 가게 된 곳이 캄보디아다. 여기서 인생을 바꿔보자. 나름의 승부수였다.
캄보디아에 도착하고 며칠 뒤, 그는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에겐 낯선 캐리어가 딸려있었다. 안에는 필로폰 약 800g이 담겼다. 관문은 터무니 없이 쉽게 열렸다. ‘성공했다’는 희열보다 ‘왜 안 걸렸지’하는 의아함이 느껴졌다.
필로폰을 0.5~1g 정도로 작은 봉지로 나눠 포장했다. 이곳저곳에 마약을 운반해 숨겨놓는 ‘드랍퍼’도 했다. 캄보디아로 돌아와서는 텔레그램으로 마약을 팔았다. 인터넷 곳곳에 홍보 글을 올리고 메시지를 보내온 투약자들에게 입금 방법과 물건 받을 곳을 안내했다.
한국에서 물건을 팔던 일당이 붙잡히면서 꼬리가 잡혔다. 2018년 1월, 한국 수사기관의 정보를 토대로 캄보디아 경찰에 붙잡혔다. 다음 달 친구와 한국으로 송환돼 재판에 넘겨졌다.
언젠가 붙잡히지 않을까, 발각되진 않을까 짐작하긴 했다. 그런데 실제 붙잡히고 나니 두렵고, 후회됐다. 하지만 반성하지는 않았다. 먼저 붙잡힌 일당을 원망했다. 실수를 복기했다. 다음엔 잡히지 않을 것 같았다.
처음엔 범죄 전력이 없는 ‘생 초범’이라 집행유예를 기대했다. 주범격인 친구가 모든 혐의를 안고 가기로 하고 말을 맞췄다. 한 사람이 수감돼도 다른 사람이 밖에서 사업을 꾸려가면 됐다.
하지만 징역 4년 실형이 선고됐다.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았다. 가족들은 어떻게 하지. 노랭이(반려견)를 못 본 지 너무 오래됐는데, 날 기억해 줄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어려웠다. 선고가 나온 뒤 접견을 온 어머니에게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억울하다고 둘러댔다. 어머니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못 마친 대학 왔다고 생각하그라. 비울 거 비우고 채울 거 채워가 건강하게 나오이라.”
알 수 없던 감정의 정체 ‘죄책감’
재판받을 땐 구치소 ‘마약 초범방’에 머물렀다. 말이 초범이지, 오랫동안 투약하고 매매했던 이들도 많았다. 한 방에 있던 수감자 중에는 텔레그램으로 임제훈에게 물건을 사간 손님도 있었다. 이들은 구치소에서도 약을 끊지 못했다. 두통약, 수면제, 다이어트약 등을 몰래 모아뒀다가 가루로 만들어 코로 흡입했다. ‘코킹’이다.
처음엔 나가서 다시 마약을 팔기 위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 손님 관리 차원에서 이들을 관찰했다. 그런데 점점 알 수 없는 감정이 일었다. 이들이 밉고 혐오스러웠다. 동시에 알 수 없는 감정도 느껴졌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이들에게 약을 팔았을 거라며 무시하려 했던 감정, 그것은 ‘죄책감’이었다.
그는 자신을 ‘자살 인도자’라고 표현했다. 마약에 빠져 자살한 이들의 소식을 접했을 때 든 생각이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 마약을 팔았을 뿐이라 합리화해왔다. 하지만 그걸 산 이들은 물론 나 자신과 가족의 인생도 엉망으로 만든 것이다. ‘약쟁이’들에 대한 혐오는 자신을 향했고, 죄책감은 더 커졌다.
혐오와 죄책감이 가득했을 때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책이었다. 처음 읽은 게 소설<노인과 바다>였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노인의 모습이 왠지 자신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위안이었는지 감동이었는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책을 읽으며 지난 잘못을 다시 돌아보았다.
수감 생활을 이어가면서 <7년의 밤>·<종의 기원>(이상 정유정),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소설을 찾아보며 빠져들었다. 문학이란 이런 것인가. 소설 속의 인물에게 공감했다. 누군가는 미웠고 누군가는 사랑스러웠다. 평생 책 한 권 제대로 본 적이 없었지만, 수감 중 읽은 소설이 80권 정도 됐다.
‘소설가나 작가는 될 수는 없겠지. 그래도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임 작가는 수감 생활 2년째부터 자신의 경험담을 소설로 쓰기 시작했다. 소설의 작법이나 이론은 배운 적이 없었다. 그저 최대한 솔직하게 써보자고 했다.
상자를 뒤집어 책상처럼 썼다. 같은 방 재소자들은 매일 연필로 쓰는 ‘삭삭’ 소리를 싫어했다. 그렇게 60페이지 공책을 채워갔고, 출소할 무렵에 100권이 넘었다. 출소하면서 가져나온 원고는 20여 권이었다. 집으로 와 컴퓨터에 옮겨 적으니 A4 용지로 800페이지가 넘었다.
탈고를 마치고 출판사에 투고하는 방법을 찾아 보았다. 공식 메일로 투고 샘플과 요약 내용을 정리해 보내는 법을 참고했다. 그리고 지난 2월 여러 출판사에 메일을 돌렸다. 그리고 한 곳에서 답이 왔다.
“쉽지 않네요.”
북레시피의 김요안 대표는 조금 긴장한 채 한 남자를 기다렸다. 출판사로 들어온 남자는 앞머리를 눈까지 길게 길렀다. 사실 김 대표는 임 작가의 메일을 보았을 때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마약 밀수 경험담을 쓴 소설이기에, 분명 부정적으로 볼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김 대표는 진솔하게 적힌 소개 글에 호기심이 느껴졌다.
전체 원고를 받아보니 내용이 나쁘지 않았다. 우선 처음 쓴 소설이라기에 믿기지 않는 분량의 장편이었고, 사건의 흐름과 시점의 변화, 플롯이 잘 갖춰져 있었다. 마약 거래와 재판, 구치소의 상황을 보여주는 현장감과도 상당했고 서사의 몰입감도 뛰어났다.
“소설 창작법을 학교에서 공부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많이 읽고 많이 느끼면서 자연스러운 공부를 한 것 같아요.” 전화 인터뷰에서 김 대표가 말했다.
무엇보다 소설에 담긴 진솔한 마음이 느껴졌다. “유명해지려는 게 아니라, 죄책감을 씻기 위해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모두 드러내도 된다는 말이 울림이 있었습니다. 괜찮냐고 물어보니 ‘가명으로 쓰거나 나를 노출하고 싶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글을 투고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임 작가는 자신을 드러내고 마약의 실상을 알리려고 했다.
그러니까 <1그램의 무게>는 임 작가의 자전소설이자 한 권의 반성문인 셈이다. 그리고 마약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려주기 위해 쓴 경고문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책을 내면서도 걱정했다. 작가가 아무리 반성과 죄책감을 담아 소설을 썼다고 해도, 출간 후 그의 책을 소개한 기사에는 악성 댓글이 달렸다.
“죄를 지은 사람이긴 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 끼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큰 포용일 수 있잖아요. 응원해 주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하고 본인(작가)도 마음을 닫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김 대표는 임 작가가 ‘계속 글을 쓰고 싶다’고 한 말을 기억하며 응원했다. “작가로서의 길을 계속 같은 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방식도 고민했으면 하고요. 꿈을 갖고 계속 매진해 나가 더 좋은 결과로 싹 틔웠으면 좋겠습니다.”
임 작가에게 인터뷰를 마치고 앞으로 작품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잘 모르겠네요. 나와보니까 어렵네요.”
소설을 한 권을 썼다고 과거의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거액의 추징금과 아직 갚지 못한 채무가 무거운 빚으로 남았다. 출소했다고 모든 것을 새롭게 다시 출발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생각한 것보다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어려움을 몰랐던 것은 아니기에, 다시 딛고 일어나 보려 하고 있다. 임 작가는 요즘 한적한 시골에 어머니와 살며 반려견과 산책하고 책도 읽고 게임도 하며 지낸다고 했다. 일자리를 구하려 해도 쉽지 않다. 그저 처음의 마음이 꺾이지 않기를, 다른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그렇게 바라며 다시 힘을 내본다.
‘다시 읽고 싶은 긴-이야기 코끼리’는 다시 읽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 장문의 내러티브 기사로 소개하는 경향신문 뉴콘텐츠팀의 버티컬 채널입니다. 곳곳에 숨은 이야기를 찾는 이들과 영감을 나눕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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