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선물하는 일, 그저 옛 인류의 순진한 발상일까

2023. 7. 8.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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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하이드 '선물'
편집자주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을 꺼내 보는 '다시 본다, 고전'이 두 번째 시즌을 엽니다. 한국상담대학원 대학교 교수이기도 한 진은영 시인과 20년 이상 출판 편집 기획자 생활을 거쳐 온 강창래 작가가 <한국일보>에 격주 토요일마다 글을 씁니다.
'선물'을 쓴 미국의 작가 루이스 하이드. 위키피디아 커먼스

마거릿 애트우드의 글을 읽다 한 시인이 쓴 책에 대한 찬사를 발견했다. 당신이 글, 그림, 노래, 영화 그 무엇이든 만들 계획이 있다면 루이스 하이드의 '선물'을 꼭 읽어야만 하는데, 그건 당신이 “제 정신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란다. 이 책은 1983년에 출간된 후 40년 동안 입소문과 선물을 통해 다양한 예술가들 사이를 지하 기류처럼 흘러 다녔다고 한다. 저자는 소설가 콘래드의 문장을 인용해 책의 핵심 주제를 이렇게 밝힌다. “예술작품은 우리 존재의 어떤 부분에 호소하는데, (……) 그것은 우리가 일궈낸 성취라기보다는 선물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더 영구히 지속된다.”

선물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gift’가 재능이라는 뜻도 가졌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 말은 쉽게 이해된다. 그러나 이 책이 위대한 예술가는 놀라운 재능을 선물처럼 받은 존재라서 평범한 이의 노력으로는 넘볼 수 없는 어떤 영역에 ‘계신다’는 뻔한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재능이 선물이라면 재능의 실현으로 여겨지는 예술은 선물의 증여와 같은 속성을 지녔다는 것을, 그리고 이 세계의 어떤 구석에선 여전히 선물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느라 하이드는 문화인류학의 고전들, 기독교 무정부주의 사상, 자동차 회사의 비용-편익표, 휘트먼과 파운드의 시집들 사이를 부지런히 오고 간다.

선물. 게티이미지뱅크

미국에서는 한번 준 것을 되돌려달라는 무례한 이를 ‘인디언식 증여자(Indian giver)’라고 부른다. 미 대륙에 정착한 한 영국인이 인디언의 집에 초대를 받은 상황을 상상해보자. 주인은 백인 손님과 전통 파이프 담배를 나눠 피우고 돌아가는 손님에게 파이프를 선물한다. 집으로 돌아온 영국인은 나중에 이 유물을 모국의 박물관에 기증하리라 생각하며 벽난로 선반에 자랑스럽게 진열해 둔다. 얼마 뒤 이웃의 인디언들이 그를 방문했을 때 그들은 주인이 파이프를 자신들에게 줄 거라고 기대한다. 통역사를 통해 인디언 손님에게 파이프를 선물하는 게 예의라는 말을 들은 이 영국인은 충격을 받아 중얼거린다. “이렇게 사유재산에 대한 감각이 희박한 자들이 있나!”

‘백인식 소유자(white man keeper)’는 “재산을 돌고 도는 선물의 순환고리에서 빼내 창고나 박물관에 두는” 사람이다. 선물은 정확히 이러한 백인 소유자의 본성에 반대한다. 우리가 받은 것은 우리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 나눠주는 것이 선물의 원리이다. 그런데 인디언식 선물은 서로 주고받는 게 아니다. 대체로 받은 것은 제3자에게 건네지고 그에 의해 또 다음 사람에게 건네진다. 선물이 대가 없이 건네질 때마다 사람들 사이에는 느낌과 생기가 생겨난다. 수건돌리기가 놀이의 공동체를 만들어내듯 선물은 계속 돌아가며 사람들 사이에 결속감을 부여하고 느낌의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하이드는 예술작품도 선물처럼 움직인다고 말한다. 시를 한 줄도 읽어본 적 없는 시인, 소설을 한 편도 읽은 적 없는 소설가가 있을까? 좋은 작가들은 언제나 좋은 독자였다. 그들은 다른 예술가의 작품에서 자극받은 생기를 자신의 작품 속에 담아 다른 독자에게 선물하는 독자이다. 선물을 받은 인디언이 다른 이들에게 더 많은 선물을 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동하듯 예술가는 받은 선물을 증식시켜서 다른 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작품에 헌신한다. 우리가 종종 재능이라고 부르는 선물의 출처가 꼭 선배 예술가들인 것만은 아니다. 노발리스에게는 17세에 요절한 약혼녀가, 네루다에게는 민중이 영감의 원천이었다. 재능이 어디에서 흘러나오든 좋은 시와 그림, 음악과 영화가 지나가는 자리에는 늘 느낌이 생겨나고 정서적 유대 속에서 서로 접촉하는 공동체가 마술처럼 생겨난다. 아, 우리는 이 시, 이 소설, 이 음악을 사랑해. 우리는 함께하며 고통을 통과할 수 있어.

미국 포드사의 로고가 박힌 배지. 포드사는 1971년 출시한 소형 자동차 핀토에 결함이 있어 인명 피해를 예상했지만 비용상 문제로 이를 고치지 않았고, 출시 이후 1977년까지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낳았다. 이후 비슷한 시기 캘리포니아주에서 1억 달러 지급 명령이 내려지자 그제야 리콜을 실행했다. 위키피디아 커먼스

너무 낭만적인 생각 아닌가? 하이드 역시 초고도 상품경제의 한복판에서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물건 취급하는지 잘 알고 있다. 1971년 미국의 포드사는 소형 자동차 핀토를 출시했는데, 가벼운 후방 충돌에도 연료탱크에 불이 날 위험이 있었다. 안전장치가 없으면 매년 180명이 죽고 180명이 다칠 거라 예상되었지만, 국가고속도로안전교통 안전국이 계산한 1인당 인명 손실 비용이 20만 달러였기에 포드는 이 장치를 달지 않기로 했다. 사망·상해 보상에 부서진 차 값을 다 물어줘도 안전장치 총 설치 비용 1억3,750만 달러의 절반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출시 이후 차량 화재로 500명 이상이 죽었지만 방침은 달라지지 않았다. 1980년 인디애나주에서 소녀 세 명이 핀토 사고로 불에 타 숨졌을 때도 배심원들은 포드의 무죄를 선언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캘리포니아주의 한 재판에서 배심원단이 생산자 책임을 물으며 차량 소유주에게 1억 달러를 지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포드사는 리콜을 실행했다. 두 명만 죽어도 배상금이 리콜 비용을 초과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계산법이 우리가 상품경제의 합리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배상 비용이 늘기 전까지 안전장치를 달지 않겠다고 결정한 포드사 임원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졸업선물로 핀토를 사줬을 리는 없다. 이런 합리성을 관철시키려면 내 아이를 제외한 어떤 아이도 느낌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상품의 핵심은 소비자는 절대 내 가족이 아니라는 것, 즉 감정적 분리를 정확히 실행하는 데 있다. 그런 분리가 없다면 그들은 매일 밤 자신이 만든 차 속에서 자기 아이처럼 보이는 아이들의 몸이 불타고 있는 최고의 지옥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물경제는 감정적 결속을 되살리며 마땅히 느껴야 할 고통을 보여줌으로써 상품경제가 합리적 야만성을 실현하는 사태를 저지할 수 있지 않을까? 그토록 많은 예술가가 끔찍한 미래의 묵시록적 서사를 자주 활용하는 것은 지옥을 상상하고 느끼는 것도 일종의 정서적 능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선물 경제는 먼 옛날 순진한 인류가 잠시 거쳤던 경제 모델이 아니다. 우리 삶에는 여전히 선물의 영역들이 존재한다. 세상을 떠나며 모르는 사람에게 장기를 기증하는 이들이 있다. 의료사회학자들은 생명의 일부를 나누는 고귀한 행위가 선물의 영역에 속한다고 말한다. 생명은 오직 선물할 수 있을 뿐 거래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사의 영역에는 시장의 힘으로 조직하거나 지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뱅크에 있는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입구. 1994년 미국 코네티컷에선 저작권 보호 기간을 20년 늘려 수익을 예술과 인문학을 위한 기금으로 쓰자는 법안이 제안됐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사가 의회에 대대적인 로비를 하면서 이는 물거품이 됐다. 위키피디아 커먼스

하이드에 따르면, 예술은 상품이면서도 독특하게 선물로서의 본질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예술가와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삶에서 선물로 남겨둬야 할 영역을 지켜야 할 소명이 있다. 그는 책 곳곳에서 예술이 공동체를 창조하고 보호한 사례를 제시한다. 심지어 예술이 예술을 보호하고 양육할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1994년 미국 코네티컷주의 한 상원의원은 가난한 예술가와 학자를 지원하기 위해 기한 지난 지식재산권을 활용하는 법안을 제안했다. 당시 개인 창작자들은 사후 50년, 기업에서 도급으로 제작한 작품(대다수 영화)은 75년 동안 저작권을 보장받고 있었다. 새로 제안된 법안은 저작권 보호 기간을 20년 더 늘려서 그 수익을 예술과 인문학을 위한 기금으로 쓰자는 것이었다. 과거의 예술이 만든 부를 미래의 예술에 선물로 준다는 꽤 괜찮은 발상이었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사가 의회에 대대적인 로비를 하면서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었다. ‘예술을 지원하는 예술 법안’으로 불렸던 법안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독자적인 ‘저작권 기간 연장 법안’으로 탈바꿈해 억만장자 기업들이 더 막대한 부를 쌓는 데 이용되었다.

하이드의 표현대로 ‘법적으로 절도에 가까운 소행’이었지만 이 암담함이 우리의 결론은 아니다. 이 사례의 핵심은 선물 경제가 오래된 원시 부족 문화나 요정 이야기 속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라는 것. 단지 사회의 부가 예술로, 삶으로 흘러넘치는 현실의 통로를 집요하게 가로막는 세력이 있을 뿐이다. 자, 정부와 의회의 머릿속에 고리대금업자의 상상력이 주입되지 못하도록 만국의 예술 애호가여 단결!

선물·루이스 하이드 지음·전병근 옮김·유유 발행·672쪽·3만원

진은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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