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밟으라 말하는 이들에게[젠더살롱]
자타가 공인하는 서울 페미니스트의 명절, 서울퀴어문화축제 기간이 돌아왔다!
페미니즘을 접한 이후 가장 뜨거운 여름날이면 으레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있었고 누가 등 떠밀지 않아도 그 뜨거운 축제에 참여해 그간 감춰둔 더 뜨거운 끼를 뽐내는 것이 페미니스트로서 당연한 연례 행사가 된 지 오래다. 그리고 올해도 뜨거운 화제로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축제의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퀴어퍼레이드다. 세상 곳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다채로운 퀴어, 페미니스트들이 각종 편견과 혐오에 맞서 당당하게 서울 한복판 거리를 춤추고 노래 부르며 누비는 장면이 고되고 더딘 이 활동에 희망을 불어 넣는 한줄기 빛과 소금이다.
축제의 한복판에서 지옥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런데 우리 못지않게 이 축제를 기다리는 이들이 또 있다. 바로 축제 맞은편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퀴어의 존재를 지우고 죄악시하며 폭력을 일삼는 이른바 혐오세력들이다. 이들은 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 못지않은 열정으로 비가 오고 뙤약볕이 쏟아져도, 그 앞에 나타나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시기, 질투하듯 지옥에 갈 것이라며 폭언을 퍼붓는다. 하지만 미운 정도 정이라고, 몇 년간 이어진 이 잘못된 만남이 이제는 익숙할 지경이라 교회에서 “동성애는 죄악”이라고 외쳐댈 때, 중간에 멘트를 빼앗아 더 많은 이가 “동성애는 사랑”이라고 외치며 이상한 불협화음을 만들어가고 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퀴어들과 지옥을 이야기하는 보수 기독교인의 대조되는 모습이 참 기괴하고 슬프다. 문제는 이들의 이러한 행태가 단지 축제에서 훼방을 놓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번 서울퀴어퍼레이드는 지난 몇 년간 열렸던 서울광장이 아닌 을지로입구역 인근에서 열렸다. 서울광장에는 기독교단체에서 주최하는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가 열렸다. 여러 정황에 따르면, 서울광장에서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리지 못하도록 기독교 세력이 서울시를 압박하고 공간을 점유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차별과 폭력은 성교육계로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남양주의 한 단체에서 ‘사춘기 자녀의 성문화 이해하고 소통하기’ 주제로 양육자 대상 강의를 요청받았다. 평소 양육자와 함께 성교육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던지라 기대와 바람을 담아 그간 교육현장에서 어린이·청소년을 만나며 경험하고 고민했던 바를 양육자와 나누고, 어떻게 가정에서 자녀 성교육을 실천할 것인지 함께 연습하는 자리로 열심히 준비했다. 그런데 교육 일정이 다가오고 홍보가 시작되면서부터 주변 남양주에 거주하는 지인들에게 염려 섞인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보수 기독교인들이 강사가 동성애를 옹호하고 퀴어퍼레이드에 나간 전력이 있다며 강의를 못하게끔 압력을 넣고 있었다. 다행히 교육을 의뢰한 단체는 교육 주제와 상관없는 이런 식의 사상 검증과 사전 검열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하여 강의는 무사히 진행되었고 현장에서도 그 어떤 문제 없이 아름답게 마무리됐다. 하지만 매번 이렇게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이번 사태가 그다지 놀랍지 않았던 것은 이미 앞서 무수히 많은 강사가 기독교 세력의 조직적인 횡포에 시달리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서울시교육청 학부모지원센터에서 이와 같은 민원이 들어왔다는 이유로 다년간 전문성을 쌓아온 강사의 강의를 취소하기까지 했다. 그저 강사 한 명의 교육이 취소된 게 아니다. 수많은 이의 교육 들을 기회가 박탈당한 것이며, 더 많은 강사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교육현장을 위축시키는 행태다. 행정이 혐오에 굴복하면 혐오세력은 이런 경험을 자양분 삼아 자라나게 되며, 그럴수록 곳곳에 있는 소수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라 말하는 세상에 내몰리게 된다.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밝혀라!” 반복되는 십자가 밟기
작금의 사태를 바라보며 십자가 밟기를 떠올린다.
십자가 밟기는 과거 일본 에도 시대, 기독교 탄압 정책의 일환으로 십자가 상이 새겨진 금속판 위를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게 하면서 이에 동요하거나 거부하는 기독교인을 색출해 처벌했던 것을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탄압받은 역사를 가진 기독교가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라”며 다른 소수자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십자가를 휘두르고 있다. 당장 나부터도 또 어떤 혐오세력의 낙인으로 강의가 사라지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말하기를 멈출 수 없다. 내가 찾아가는 학교와 회사에, 각종 청소년 기관과 청년단체에, 그리고 심지어 교회에도 퀴어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한참 더 무지하던 청소년 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슬쩍 물어본 적이 있다. 또래들에 비해 작고 왜소하여 ‘계집애 같다’며 놀림받던 나는 괜스레 더 센 척을 하며 악담을 퍼부었다. 얼마 후엔가, 다른 친구를 통해 그 친구가 동성애자였다는 걸 전해 듣고 부끄러움에 몸서리쳤다. 나는 끝끝내 그 친구에게 사과 한마디 못 하고 멀어질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지금까지도 부끄러운 기억이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여전히 무지하던 대학생 시절,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다양한 방법을 찾아 헤매다 태국으로 6개월에 걸친 해외봉사를 가게 됐다. 참여자들과 친해지고자 서툰 태국어로 교육에 참여한 청소년에게 (칭찬이랍시고) ‘잘생겼다’며 덕담을 했더니 그 청소년이 “저는 예쁘다고 칭찬해 주세요”라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 청소년이 남성용 교복을 입고 있었기에 의아해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트랜스젠더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느 교실에 가도 한 반에 대략 2, 3명 정도는 꼭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있었다. 태국어의 여성, 남성 주어가 달라서 알 수 있었던 게 그 정도였으니 겉으로 알 수 없는 성적 지향(동성애, 양성애, 무성애, 이성애 등)의 다양성까지 고려하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이성애자가 아니거나 자신의 지정 성별(사회에서 부여받은 성별)과 성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성소수자’인 사람이 최소 10%는 넘겠구나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태국의 물이 다르다거나 날씨, 역사, 종교로 인해서 ‘유난히’ 그 비율이 높아진 것이 아니다. 그저 혐오와 차별에서 벗어났을 때 대략 그 정도 혹은 그 이상의 비율로 성소수자의 존재가 드러날 수 있으나 지금까지 다른 지역에 그런 사회가 많지 않았기에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물론 태국이라고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에 이것이 최대치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누구도 빠짐없이
그래서 나는 지금도 교육을 하면서 늘 이 공간에 최소 10% 이상의 성소수자가 있을 것이라 전제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연애 이야기를 할 때도 ‘여자친구, 남자친구’보다 ‘애인’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누군가 장난처럼 ‘게이 같다’고 할 때 게이 같은 게 대체 뭔지, 당장 앞에 게이가 있다면 어떤 느낌일 것 같은지 묻는다. 별 대단한 사명감도 아니다. 학창 시절 비겁하게 사과하지 못했던 부끄러움을 기억하고 또랑또랑한 목소리의 태국 청소년이 눈앞에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좋겠고, 또 한국의 성소수자도 그 태국의 청소년처럼 자신감 넘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동물들 사이에서도 동성애가 얼마나 자연스럽고 흔한지, 얼마나 많은 나라와 사람들이 동성애, 동성혼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구구절절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이번만큼은 그저 한 번만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서 이웃의 눈을 바라보며 대화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애써 과학과 숫자의 권위를 빌리지 않아도, 아니 설령 종교처럼 그것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대도 어쩌겠는가, 우리의 이웃인 것을. 그저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 그 가르침이면 충분하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인 이한 작가와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이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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