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부른 바다...남해안 방어가 주문진서 잡힌다
독도서 제주 오분자기, 울산서 다금바리 잡혀
지난달 21일 새벽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 앞바다. 거센 빗줄기를 맞으며 조업을 시작한 고등어잡이 어선 제5 재성호 갑판에서 베트남 출신 선원이 “방어!”라고 외쳤다. 몸길이가 70~80㎝, 무게는 7~8㎏ 정도인 방어 10여 마리가 그물 안에서 펄떡이고 있었다. 2시간 남짓한 조업에서 고등어 700여㎏, 방어 48마리(380㎏)를 잡았다. 김철환(66) 선장은 “많을 땐 방어가 하루 1000마리 넘게 나오는데, 오늘은 조업량이 좀 적은 편”이라고 했다. 온대성 어종인 방어는 주로 제주도 인근이나 남해안에서 많이 잡혔지만, 바다 수온이 오르면서 최근에는 동해에서도 꽤 올라온다는 것이다. 강원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강원 동해안에서 가장 많이 잡힌 어종은 방어(약 6137t)로, 조업량이 한 해 전(3404t)의 2배 가까이로 늘었다.
기후변화 여파로 우리나라 곳곳에서 어업 풍경이 바뀌고 있다. 전복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양식이 불가능해 귀한 대접을 받던 제주 오분자기는 지난해 서해안 충남 보령은 물론 동해 독도에서도 서식이 확인됐다. 흑산도 특산물인 홍어는 한참 북상해 군산 주변에서도 무더기로 낚인다. 동해에서 많이 잡히던 살오징어는 최근 서해 조업량이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지난 50년간 우리나라 바다 표층 수온이 1.23도 상승하면서 나타났다는 분석이 있다. 이 기간 동해의 표층 수온이 1.43도 올라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동해 어민들은 “예전에는 ‘6~7월부터는 오징어, 9~10월부터는 전어’처럼 시기별로 잘 잡히는 어종을 예상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맞지 않는다”고 했다. 40년 경력 선장도 뭐가 잡힐지 도통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달 16일 강릉 앞바다에서는 몸길이 1.8m, 무게 160㎏짜리 초대형 참치(참다랑어)가 잡혀 310만원에 팔렸다. 과거 원양어선에서나 낚을 수 있던 크기다. 강릉 수협에서 만난 한 어민은 “며칠 전부터 5~6㎏짜리 참치가 고등어 못지않게 올라오기도 한다”고 했다. 이날 주문진 앞바다 곳곳에서는 미리 쳐 놓은 정치망 그물을 걷어올릴 때마다 고등어와 오징어 사이로 어른 팔뚝보다 큰 씨알 굵은 방어가 10여 마리씩 따라 올라왔다.
남쪽 바다에서 잡히던 어족이 북상하는 현상은 전국 바다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흔히 ‘다금바리’라고 하는 자바리는 주로 제주도 남부인 서귀포 인근 해역에서 잡히는 열대성 어종이다. 그런데 이런 다금바리가 남해권인 부산과 울산은 물론, 동해권인 강원과 경북 연근해에서도 보이기 시작했다. 낚시 경력 20년인 허모(46)씨는 최근 울산 방파제에서 다금바리를 낚았다. 허씨는 “2~3년 전부터 남해는 물론이고 동해에서도 다금바리를 잡았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고 했다. 삼척 수협 관계자는 “재작년엔 12마리가 위판장에 나왔다”며 “과거 못 보던 어종이 꽤 있다”고 했다.
바닷물이 따뜻해지면서 동해를 누비던 한류성 어종은 사라지고 있다. 한 해 15만t까지 잡히던 명태는 1990년대 들어 어획량이 1만t 아래로 떨어지더니, 2000년대 들어선 아예 연근해에서 사라졌다. 해양수산부가 ‘살아있는 명태를 찾는다’고 사례금으로 50만원을 내걸 정도다. 현재 우리 식탁에 오르는 명태는 대부분 러시아나 일본에서 수입한 것이다. 반면 난류성 어종인 고등어와 오징어, 멸치 어획량은 늘고 있다.
기후변화가 심해지며 이런 현상은 더 늘 것으로 보인다. 국립수산과학원은 “2000년대 이후 한반도 해역의 어종 변화가 두드러지고 있다”며 “올여름 우리나라 해역 여름철(7~8월) 수온이 평년보다 0.5~1.0도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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