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벽돌책] 따뜻한가 차가운가, 아이러니한 모파상의 글
한때 소셜미디어 계정 프로필에 ‘맥주, 자전거, 아이러니를 좋아한다’고 적었더랬다. 맥주는 맛있고 시원해서, 자전거는 타면 즐거워서 좋아한다. 아이러니는 왜 좋아하느냐. 다른 방식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삶과 세계에 대한 어떤 진실을 아이러니가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기에 끌린다.
세상은 복잡하다. 삶도 복잡하다. 그 복잡함은 한 사람의 이해를 훌쩍 뛰어넘는다. 인간은 논리를 세우고 모델을 만들지만 결국 인생도 세상도 우리의 공들인 전략을 비웃고 간절한 기대를 배신한다. 성실한 자를 처벌하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에게 보상을 주고, 그래서 만사 포기하려는 순간 갑자기 선물을 안기기도 한다.
현대문학에서 나온 ‘기 드 모파상’에는 모파상이 길지 않은 작품 활동 기간에 쏟아내다시피 써낸 단편소설 300여 편 중 63편이 실려 있다. 대부분은 현대 기준으로는 단편이라기보다는 엽편 쪽에 가깝다. 808쪽짜리 책에 63편이니까 편당 평균 길이는 12쪽 남짓이다. 책 자체는 두껍지만 콩트집 읽듯 무겁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전쟁의 참혹함을 말하는 작품에서부터 괴기소설로 분류해야 할 단편까지 주제와 소재는 실로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나는 결말이 아이러니한 글들에 특히 매료됐다. 모파상은 아이러니의 대가다. 대단히 효율적으로 아이러니의 앞부분을 쌓아올리고 정확한 호흡으로 주인공과 독자를 낭패감에 빠뜨린다. 그 낭패감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라 믿었던 생각이 틀려서일 수도 있고, 성실하고 선량하다고 믿어온 특정 인물이 실망스럽게 행동해서일 수도 있다.
기대와 실체의 괴리 앞에서 신념이나 태도를 바꾸는 사람들을 저자는 비웃는 걸까. 모파상은 인간혐오자일까? ‘목걸이’ 같은 단편을 여러번 읽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작가가 그런 속물성에서 벗어나기 힘든 우리네 삶에 덤덤히 연민을 보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연주의 작가로 불린 그는 그저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썼을 뿐일지도 모르겠다. 독서모임 멤버들과 함께 읽고 따뜻한 책이냐, 차가운 책이냐를 한참 이야기했다. 토론은 즐거웠고 좀처럼 결론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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