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감각 반복훈련으로 극복… 내 몸을 ‘양궁 AI’처럼 만들었다”

진천=강동웅 기자 2023. 7. 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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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경기 4회연속 출격 오진혁의 장수비결
“두 번 연속 놓친 단체전金 반드시 탈환
데이터값 몸안에 계속 쌓아 실력 유지
누가 아나요, 파리서도 활시위 당길지”
남자 양궁 리커브 국가대표 오진혁이 지난달 23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개인 장비를 갖춘 채 훈련을 준비하고 있다. 9월 개막하는 항저우 아시아경기 출전을 앞두고 있는 오진혁은 “이번 대회 때는 꼭 단체전 금메달을 찾아오고 싶다”고 말했다. 진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오진혁(42·현대제철)은 한국 양궁 국가대표 선수 중 나이가 가장 많다. 남자 대표팀 막내 김제덕(19·예천군청)과는 23세 차이가 난다. 컴파운드 코치 가운데 두 명은 오진혁보다 나이가 어리기도 하다. ‘맏형’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무거운 나이다.

하지만 오진혁의 엉덩이는 대표팀 새내기보다 가볍다. 지난달 23일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오진혁은 후배들 사이를 쉴 틈 없이 활보했다. 김우진(31·청주시청)이 지친 기색을 보이자 “오늘은 너무 더우니 훈련을 일찍 끝내야겠다”고 다독이더니 금방 자리를 옮겨 여자 리커브 막내 임시현(20·한국체대)에게 “슈퍼 루키님, 오늘 훈련 끝나고 집에 가는 버스는 몇 시인가요?”라고 장난을 쳤다.

오진혁은 4월 열린 양궁 리커브 국가대표 최종 평가전에서 4위에 오르며 9월 개막하는 항저우 아시아경기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2010년 광저우 대회부터 4회 연속 출전이다. 5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에서는 개인전 은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오진혁에게 ‘롱런’ 비결을 묻자 “다른 선수들에 비해 내가 뭘 특별히 잘하는지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신 그는 “매일 양궁을 배우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진혁은 “막내 (김)제덕이가 활에 쌓인 미세한 먼지를 매일같이 닦는다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됐다. 활에 먼지가 조금이라도 앉아 있으면 쏠 때 방해가 되는데 제덕이를 보며 장비를 정말 디테일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고 말했다.

물론 몸이 ‘한창때’ 같지는 않다. 오진혁은 “양궁은 내 감각에 100% 의존하는 스포츠다. 그런데 나이가 많아지면서 내 감각이 떨어지는 게 크게 체감된다. 사용하는 근육도 줄고 있다. 몸 구석구석 미세한 근육을 모두 활용해야 하는데 이제는 큰 근육으로 활을 쏠 수밖에 없으니 경기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8년 전부터 몸의 변화를 감지한 오진혁이 선택한 자구책은 ‘몸의 기계화’였다. 그는 “감각으로 활을 쏘기 어려우니 ‘내 몸을 기계처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반복적인 훈련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쏴야 잘 맞는다’라는 데이터값을 내 몸에 쌓아두다 보니 실전에서 이전과 같은 실력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오진혁은 2012년 런던 대회 때 한국 남자 양궁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을 차지했다. 기세를 이어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때도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단체전 결과는 동메달이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도 결승에서 대만을 넘지 못해 단체전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 단체전 우승 멤버였던 오진혁은 “그동안 아시아경기에 세 차례 출전해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모두 따 봤기 때문에 성적에 대한 갈증이 크지는 않다”면서도 “두 대회 연속으로 단체전 우승을 놓친 건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이번 항저우 대회 때는 단체전 금메달을 꼭 찾아오고 싶다”고 말했다.

오진혁은 2017년 오른쪽 어깨 회전근 4개 가운데 3개가 파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은퇴를 권했지만 그는 “양궁보다 재미있는 건 없다”며 남은 근육 하나로 여전히 화살을 쏜다. 오진혁은 “양궁을 통해 다른 누군가와 경쟁하며 몰입하는 순간순간이 정말 즐겁다. 나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보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멈출 수 없어서 계속해서 활을 잡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아시아경기가 내 마지막 국제무대일 수도 있다. 내년에도 태극마크를 달려면 치열한 경쟁을 견뎌내야 하는데 어깨가 버텨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서 “2년 전에도 도쿄 올림픽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지만 올해 아시아경기 출전권을 따냈다. 혹시 아나. 포기하지 않는다면 내년 파리 올림픽에서도 활시위를 당기고 있을지”라며 웃음지었다.

진천=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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