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현실은 메타포
지갑을 열어보았다. 신용카드 한 장, 명함 몇 장, 신분증 한 장이 들어 있다. 내 지갑에서 실물 화폐가 사라진 게 언제더라. ‘욕망의 상호일치’를 추구하면서 지난하게 이루어지던 물물교환 시대가 저물고, 교환가치를 화폐로 은유하는 시대를 맞이한 뒤, 합리적 교환을 위한 다양한 약속의 방법들이 팽창해간다. 약속의 구조는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해지고, 셈은 난해해진다. 신용과 정보가 운전하는 돈의 흐름 안에 있으면서도 어쩐지 그로부터 소외되는 기분이다. 한때는 다양한 가치로 뻗어나갔을 욕망들이 ‘돈’ 하나로 수렴되었다. 이 현실에 포섭되기는 싫지만, 벗어날 수도 없으니 답답하다.
손수민은 이 사회에서 어떻게 ‘돈’이라는 불안한 약속이 계속 지탱될 수 있는지 의문을 갖는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가 발발한 뉴욕의 그 시간을 바로 그곳에서 경험한 그에게는, 신용과 속임수 더 나아가 사기의 그물망 위에서 그 본질을 드러내고 말았던 자본의 속살이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세상은 ‘우리는 신을 믿는다’고 새겨 넣은 돈을 유통시키지만, 이를 가능케 했던 믿음은 근거를 잃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의 삶을 더 강력하게 휘어잡는 ‘돈’에 대하여, 도대체 우리는 어떤 입장을 가질 수 있을까.
작가는 끝없이 변하는 돈의 가치와 흐름을 은유하듯 템포를 바꿔가며 비트를 흘리고, 그 위로 지하철에서 춤추는 스트리트 댄서의 다이내믹한 움직임과 증권거래소의 분주한 움직임을 교차한다. 활기 넘치던 금융시장이 폭발한 순간 무너져 내리는 사람들의 표정과 손짓을 “욕망이 얼마나 좋은데”라는 글씨와 음성이 무심하게 뒤덮는다. “욕망은 늘 정답을 알고 있지. 욕망은 절대 실패하지 않아.” 하지만 욕망은 언제라도 천연덕스럽게 나를 배신한다.
김지연 전시기획자·소환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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