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버츠 미국 연방 대법원장을 생각하는 이유

김황식 전 국무총리 2023. 7.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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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황식의 풍경이 있는 세상]

존 로버츠(John Roberts)는 요즘 국내 뉴스에도 자주 등장하는 미국 연방 대법원장입니다. 연방 대법원이 내놓는 판결에 대한 논란이 미국 사회에서 부쩍 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2007년 미국 연방 대법원을 방문하여 그분을 만났습니다. 방문 당시 그는 저에게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었습니다. 조금은 세속적인 이유였지만.

일러스트=김영석

공화당 출신 부시 대통령은 2005년 7월 은퇴한 오코너 대법관의 후임으로 그를 지명했습니다. 그러나 청문회 준비 중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작고하자 부시 대통령은 그를 대법원장으로 바꿔 지명했습니다. 상원 표결에서 찬성 78표, 반대 22표로 인준안이 통과됐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보수 성향 법조인이었지만,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준 투표에 참여한 공화당 의원 대다수는 물론이고 민주당 의원들까지 지지해 초당적 지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상원의원이던 버락 오바마는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50세로 대법관 중 최연소일 뿐만 아니라 대법원장으로 임명되었으니 종신까지 대법원장으로 30년 이상 근무할 가능성이 있어 보였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이 정상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한, 당시 가장 나이 많은 대법관은 80대 중반이었고 나머지 대법관들도 대부분 60~70대였으니 아버지나 삼촌 연배 대법관들로 구성된 대법원을 이끌어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연령이나 서열이 중시되는 동양적 사고로는 좀 불편하고 어색한 대법원 분위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면담을 기다리는 도중에 안내하는 행정 책임자에게 저의 오지랖 넓은 걱정을 내비쳤습니다. 그분은 웃으며 그런 염려는 없다고 단언하였습니다. 대법관 각자가 각자에게 맡겨진 일만 충실하게 하면 되는 것이고, 특히 로버츠 대법원장은 지혜롭고 겸손한 분이기 때문에 선배 대법관들을 인간적으로 잘 배려하며 대법원을 지극히 원만하게 운영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한국 사회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가 저를 만나자 우리는 똑같이 2005년에 대법관이 되었다는 사소한 공통점을 꺼내며 편안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의 인품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엘리트 중 엘리트였습니다. 하버드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하였고, 재학 중 엘리트의 상징인 ‘하버드 로 리뷰(Harvard Law Review)’ 편집장으로 활약했습니다. 많은 독서량에 명문을 쓰는 문장가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한때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관의 재판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고, 법무부 송무 담당 부차관 및 로펌 변호사 그리고 연방 항소법원 판사로 일하는 등 다양한 경력을 쌓았습니다.

대법원장이 된 그는 대법원에서 정치색을 최대한 빼려고 노력했습니다.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며 사안에 따른 합리적 판단으로 균형자 역할을 다했습니다. 예컨대, 건강보험과 관련한 이른바 오바마 케어 문제에서는 행정부 손을 들어주면서 공화당에서 너무 진보적이란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미국 정치권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분위기로 넘어가고, 트럼프 대통령의 지명에 따라 보수 성향 대법관이 많아지자 그의 역할은 한계에 부닥쳤고, 대법원에 대한 정치권의 비판도 심해졌습니다.

그는 “우리는 민주당과 공화당과 일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바마 대법관, 트럼프 대법관이 아니며 부시 대법관과 클린턴 대법관도 아니다”라며 대법원은 정치권에서 독립하여 중립적으로 일함을 강조하며 맞섰습니다. 아무튼 정치와 이념 극단화 영향으로 연방 대법원은 힘든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래도 2021년 갤럽 여론조사에 의하면 로버츠 대법원장이 설문 대상 고위직 11명 중 유일하게 민주·공화 지지층 모두에서 과반 지지를 받으며 가장 훌륭히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오는 9월 새 대법원장이 선출됩니다. 헌법과 법률에 충실하고 이념에 휘둘리지 않으며, 오로지 국민 편에 서서 법원을 이끌 수 있는 균형감과 인품을 가진 분이 선출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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