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귀걸이 소녀’ 속 파란색은 왜 특별해 보일까

서민아 KIST 책임연구원 2023. 7. 8. 0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주말]
[서민아의 물리학자의 팔레트]

대중 강연에서 항상 던지는 질문이 있다. “물리학자 뉴턴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사과! 맞는다. 뉴턴 하면 사과지. 그런데 정작 빛을 연구하는 물리학자에게 뉴턴 하면? 답은 ‘무지개’다. 뉴턴은 프리즘으로 우리가 하얗다고 생각하는 햇빛 속에 일곱 빛깔 무지개(빨주노초파남보)가 숨어 있음을, 그리고 프리즘을 이용해 이 색깔을 나누어 펼쳐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책에 밝힌 사람이다. 그것이 바로 빛의 과학, 광학(光學·Optics)의 시작이었다.

최근에는 흑백사진 속에서 색깔 맞추기, 드레스가 파란색으로 보이냐 흰색으로 보이냐 등 ‘보이는 색깔’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그래서 답이 뭐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답은 없다. 사람에 따라 밝은 곳에 놓인 파란색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두운 곳에 놓인 흰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사람마다 색을 보는 시각 세포의 민감도가 조금씩 다르고, ‘본다’는 것은 단순히 눈을 통과한 빛의 양뿐만 아니라 뇌의 ‘판단’이 더해져야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저마다 다르게 ‘착시’를 겪는다는 뜻이다.

빛과 색은 다르다. 빛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분석하는 것은 엄밀하게 뉴턴이 이끌던 과학의 영역이고 색에 대해 다가가는 것은 좀 더 예술적이고 인문학적 접근이다. ‘색깔’이라는 것은 빛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를 가지고, 이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빛에서 출발해, 우리의 기억을 관통하여 언어화된 색의 유희를 즐기고 있는 셈이다. 갑자기 왜 이렇게 색깔에 대한 이슈와 논쟁이 늘어난 걸까. 어쩌면 ‘빛과 색’의 관계에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접근하면서 생긴 일종의 새로운 흐름이 아닐까.

지금부터는 우리가 아는 색깔에 대한 절대적이고 단편적인 정답을 과감하게 버려보자. 빛이 어떤 마법을 부려 우리가 그렇게 색을 바라보게 된 건지 그 숨겨진 이야기들을 천천히 풀어내 볼까 한다. 어디서 출발할까. 색의 비밀에 대해 한 걸음 다가가려고 하니 곧바로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색은 무슨 색일까?” 빛과 색의 관계를 연구하는 처지에서는 파랑이 단연 1순위다. 수많은 색 중에서도 파랑은 유독 자연에 없는 색이다. 자연에 흔하게 존재하지 않기에, 오랜 역사에서 많은 사람이 가장 갈망해 온 색이 바로 파랑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늘이나 바다의 파란색은 그 자체가 파란색 색소를 지닌 게 아니다. 파란색 빛이 산란을 많이 일으켜 눈으로 들어와 ‘파랗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색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화가들에게 이 귀한 색깔은 특별했다. 우리에게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알려진 네덜란드 화가 페르메이르는 울트라마린(청금석)이라는 보석에서 추출한 파란색 물감을 즐겨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파랗게 보이는 부분에만 파란 물감을 칠하지 않았다. 가령 흰색 커튼이나 앞치마 등 밝은 색 사물은 햇빛을 받은 부분은 다소 노랗게 보이고, 그늘져 어두운 부분에서는 푸른빛이 돈다는 과학적 사실을 직관적으로 간파하고 있었다. 빛과 색이 어떻게 캔버스 위에서 함께 어울려 춤출 수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고흐도 과학자만큼이나 파란색에 민감했다. 다행히 고흐가 그림을 그리던 시절에는 다양한 합성을 통해 만들어진 값싼 파란색이 등장했다. 그는 코발트블루라는 파란색에 들어가는 원소의 비율을 의식해 물감 제조사를 고를 만큼 색을 고르는 데 신중하고 애착이 있었다. 그에게 파란색은 단순히 하늘의 푸르름을 표현하는 색이 아니었던 것 같다.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명화 속 하늘의 파란색을 떠올려 보자. 그에게 노란색이 사랑의 표현이자 생의 에너지였다면, 그와 대비되는 어두운 파란색은 내면의 깊은 심연을 의미했다. 파란색을 사랑한 화가들은 특별히 빛의 효과를 의식해 그리거나, 색을 선택하고 만들 때 신중함을 보였다. 마치 과학자들처럼.

화가들은 파란색 물감을 이용해 수백 년 전의 빛을 화폭에 담아 놓았다. 기나긴 팬데믹이 끝나며 미술관들이 다시 문을 활짝 열었다. 화창한 여름날에 어느 미술관에 찾아 들어가 화가들이 숨겨둔 파랑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그 옛날 빛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행운을 당신도 누릴 수 있기를.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