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행복을 위한 선택

기자 2023. 7. 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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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임신 8개월이에요!” 이 말에 대다수는 기꺼운 마음으로 임신부와 태아를 축복할 것이다. 그렇다면 레즈비언이 임신을 했다면? 안타깝게도 ‘사회적 논란’이 될 게 뻔하다. 동성애를 죄라고 주장하거나 이성애만 가능하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성적 지향을 추구하거나 지지하는 이들 중 누군가도 불편하게 여길 수 있다. 결혼과 출산을 통한 ‘정상성’ 추구가 오히려 그 정상성 안에 갇히게 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저출생 시대에 임신이라니!”라며 반가워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오수경 자유기고가 <드라마의 말들> 저자

‘레즈비언 유부녀’ 김규진씨가 얼마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임신 8개월에 접어들었음을 공개했다. 김규진씨는 지난해 말 벨기에에서 시험관 시술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한국에서의 시술을 포기한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 병원에선 법적인 부부나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성애 부부에게만 정자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논란이 될 걸 뻔히 알면서도 김규진씨는 “아이를 낳는 동성 커플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임신 사실을 공개했다고 한다. 이 소식은 단박에 환영과 거절이라는 복잡한 반응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4년 전 동성 연인과 결혼식을 올릴 때도, 임신 사실을 알린 지금도 그의 선택은 사회적 경계를 허물며 상상력의 범위를 넓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어떤 주제를 사회적 의제로 제시하는 것. 많은 이가 이 주제에 관해 와글와글 떠들게 하는 것. 이게 사회운동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단지 ‘나답게’ 사는 길을 선택했을 뿐인데도 그는 사회운동가가 되었다. 그의 선택이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논란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행복’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출산을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현재 행복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선택한 가정에서 행복했고 자신이 행복하니 아이도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런 선택은 행복이란 무엇일까라는 추상적 질문에 대한 최선의 답이 아닐까? 삶과 사랑의 방식을 소신껏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을 지지하는 가족과 동료가 있고, 그 선택을 유지할 기반이 되는 사회에 속하는 것. 국가의 존재 이유 중 하나는 사회 구성원의 행복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규진씨가 말한 행복에 관해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 사회는 구성원을 행복하게 할 조건을 갖추고 있을까?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은 현재가 행복하지 않다면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 비혼과 비출산이 늘어나는 이유다. 이런 현상을 국가적 ‘위기’로 인식하는 것 같지만 나는 그 위기 담론이 외려 개별적 존재를 소외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마다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억압하며 국가의 안녕을 위한 의무만 강조할 뿐이다. 국가를 위한 인력이 부족하니 아이를 낳아라. 정상가족이 붕괴될 지경이니 결혼을 해라.

정말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사회 구성원의 행복에 관심 두기 바란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이와 가정을 꾸리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행복한 일상을 누리며 미래를 설계할 권리를 보장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 차별금지법과 가족구성권 3법(생활동반자법, 비혼출산지원법, 혼인평등법)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하자.

오수경 자유기고가 <드라마의 말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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