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EU “독과점 우려”…세계 7위 국적항공사 탄생 ‘난기류’
대한항공·아시아나 결합 진통
그간 대한항공은 한국을 포함한 14개국 경쟁당국에 M&A 관련 설명서와 신고서 등을 제출하고 심사를 기다렸다. 그 결과 현재까지 한국·중국·터키·대만·베트남·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호주·필리핀·영국 등 11개국에서 승인 또는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그러면서 M&A 성사에 탄력을 받는 듯 했지만 EU가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도 승인을 주저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필수 신고국’이라 한 곳에서라도 승인을 못 받으면 M&A 자체가 무산된다. 말레이시아·싱가포르·호주·필리핀·영국 등 다섯 곳의 ‘임의 신고국’에선 승인을 못 받아도 현지 영업 활동을 포기하면 M&A가 가능하다.
대한항공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달 미국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여기(아시아나항공 M&A)에 100%를 걸었다”며 “무엇을 포기하든 성사시킬 것”이라고 강조할 만큼 간절하다. 그도 그럴 것이 M&A가 성사되면 여객·화물 운송 실적 기준 세계 7위 수준의 거대 항공사가 탄생한다. 이를 위해 그동안 1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하는 등 전사적인 역량을 쏟아 부으면서 결착만을 기다린 지 어느덧 3년이 되어간다. 각국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 로펌과 자문사 등에 의뢰해 도움을 받는 데만도 1000억원 넘게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M&A에 실패하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항공사 합병 땐 경쟁당국 승인 필요
앞서 아시아나항공은 2010년대 들어 실적 부진과 유동성 위기가 심화하면서 2019년 M&A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이후 채권단 대표인 KDB산업은행이 2020년 대한항공과의 결합 결정을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항공업은 조선업의 경우처럼 주요국의 ‘역외 적용 조항’ 대상인 산업 분야라 국내 기업 간 결합이더라도 해외 경쟁당국 승인을 필요로 한다. 역외 적용 조항은 외국에서의 행위이더라도 자국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 국내법을 적용, 관할권을 행사하는 경우다.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결합이 2021년 EU 반대로 무산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EU는 두 조선사의 결합이 독과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U는 대한항공 역시 아시아나항공과 결합했을 때 독과점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외신들은 지난 5월 미국 법무부가 대한항공의 M&A에 대해 우려의 뜻을 내비쳤다고 보도했다. 대한항공의 M&A가 미국 항공 시장 경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이를 막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전망이 밝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경쟁당국(공정취인위원회)은 일본 내에 다수의 저비용항공사(LCC)가 있어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결합이 독과점으로 이어질 확률을 높지 않게 보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다만 한국과는 유서 깊은 경쟁국인 만큼 이 또한 안심할 수 없다.
다만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불리한 조건을 내세워 국내 항공업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 경우 소비자 피해가 예상된다. 예컨대 운수권을 내놓으면 한국과 EU·미국·일본을 오가는 직항편이 줄어들고, 알짜 슬롯을 반납하면 항공기가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 등 선호되지 않는 시간대에 이·착륙을 해야 한다. 대한항공은 이를 최대한 고려해 기업과 소비자 양쪽에 모두 득이 되는 방향으로 나머지 승인을 받는다는 입장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심사 연장 기간 동안에 EU 집행위원회와 원만하게 시정 조치 협의를 마치고, 최종 승인을 받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미국과 일본 상황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EU 경쟁당국이 불허를 염두에 뒀다면 심사 기한을 연장하기보다는 단번에 불허 방침을 발표했을 것”이라며 “대한항공의 대안 제시를 기다렸다가 이를 보고 면밀히 검토해 조건부 승인할 공산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U가 승인하면 미국과 일본도 이를 참고해 긍정적 검토에 나설 확률이 높아진다는 게 황 교수의 설명이다. 반면 이근영 한국교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한국 항공사와 독일·프랑스 등의 EU 항공사가 서울과 EU 주요 도시를 오가는 운수권 협정에서 같은 운항 횟수를 약속했더라도 실제로는 한국 항공사의 운항 횟수가 더 많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편의성을 중시하는 국내 승객들이 한국 항공사 이용을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했기 때문”이라며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M&A에 EU 항공사들 반발이 거센 만큼 EU 경쟁당국의 고민이 깊을 것으로 내다봤다.
M&A 성사돼도 고려할 부분 많아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M&A가 무산될 경우의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이 경우 경영 정상화 작업이 어려워진 아시아나항공은 파산까지 이를 수 있고, 산업은행도 매각에 실패하면서 국민 세금 회수가 어려워진다. 대한항공 역시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입는 한편 조원태 회장의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다시 경영권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EU 등이 무리한 조건을 요구해도 대한항공이 울며 겨자 먹기로 수용하면 국내 항공업은 경쟁력 저하라는 ‘승자의 저주’에 처하게 된다”며 “M&A가 무산돼도 문제이지만 성사돼도 고려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 “대한항공과 경쟁 항공사 있어야”…티웨이·에어프레미아 등 LCC 부상
「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결합에서 또 다른 변수는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다. 사정은 이렇다. 업계에 따르면 EU와 미국 경쟁당국은 결합 후의 대한항공이 너무 커지는 걸 원치 않는 한편, M&A 이후 대한항공과 경쟁할 수 있는 다른 한국 항공사가 있어야 한다고 요구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한국을 오가는 노선에서 대한항공의 독과점이 우려되는 게 핵심 쟁점이라, (대한항공이) 외국 항공사에 운수권과 슬롯(특정 시간대 항공기의 이·착륙 권리) 일부를 넘기더라도 이들만으로는 견제가 원활하게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보고 다른 한국 항공사의 역할을 추가로 원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는 한국 입장에서도 국내 항공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 필요한 측면이 있다. 대한항공이 운수권이나 슬롯을 반납하되, 그 다수를 한국 항공사가 가져오는 식으로 ‘항공 주권’을 지킬 수 있다. 이에 EU와 미국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는, 최대주주가 대한항공 또는 아시아나항공이 아닌 국내 LCC의 역할론이 힘을 얻고 있다. 티웨이항공과 에어프레미아가 대표적이다. 국내 LCC 최초로 장거리 노선에 진출한 티웨이항공은 지난해부터 호주 시드니 등 노선을 운항 중이다. 올해는 대형 항공기를 최대 5대 추가 도입해 장거리 노선을 확장할 계획이다.
신생 LCC인 에어프레미아도 유명섭 대표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대한항공이 미주 5개, 유럽 4개 노선에서 신규 경쟁자를 찾고 있으며 이 노선에서 새로운 진입자가 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황”이라고 말할 만큼 적극적이다. 에어프레미아는 이미 미국 로스엔젤레스(지난해)와 뉴욕(올해)에 각각 취항했고, 지난달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취항하는 등 EU 노선도 추가로 노리고 있다. 티웨이항공과 에어프레미아는 대한항공이 M&A를 위해 반납을 고려할 슬롯 역시 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들 LCC의 경쟁력을 EU와 미국 경쟁당국이 얼마나 높게 볼지는 미지수다. 대형 항공사와는 규모 면에서 비교가 어려울뿐더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결합하면 두 기업 산하 LCC인 진에어·에어서울·에어부산도 통합된다. 이 경우 LCC 시장점유율마저 티웨이항공이나 에어프레미아를 지금보다 크게 앞서게 된다. EU 집행위원회도 지난 5월 대한항공에 보낸 서면에서 “다른 경쟁사들은 서비스 확대가 어려워 충분한 경쟁 압박을 가하지 못한다”며 한국 항공사 중 M&A 이후의 대한항공을 견제할 곳이 안 보인다는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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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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