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벨’로 두쪽 난 영화계, 9년만에 결국 ‘비상벨’사태로

유주현 2023. 7. 8.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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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 파행, 무슨 일이
이용관
28년 역사의 부산국제영화제가 비상사태다. 지난달 26일 한국영화인총연합회 등 18개 주요 영화인 단체가 조종국 운영위원장 해촉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내자 이용관 이사장이 전격 사퇴했고, 조 위원장은 임시총회에서 해촉됐다. 5월 11일 허문영 집행위원장 돌발 사퇴로 시작된 혼란은 수뇌부가 모조리 대행체제가 되며 일단락됐지만, 아직 불씨는 남아 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이자 오랜 세월 한류 확산에 기여해온 부산영화제의 위기에 영화계 뿐 아니라 전국민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이용관 사단의 영화제 사유화로 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영화제 마켓위원장을 지낸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시작은 2014년 다이빙벨 상영 문제부터다. 소위 다이빙벨 3인방이 사태의 중심에 있지만, 김지석 전 수석프로그래머와 강수연 전 집행위원장의 죽음도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부산영화제는 2014년 세월호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놓고 부산시와 대립하면서 분열이 시작됐다. 서병수 전 부산시장은 강도 높은 감사로 수뇌부를 압박했다. 창립 멤버로 주인의식이 강한 이용관 당시 집행위원장 등 강경파는 영화제 보이콧을 불사했고, 김지석 전 프로그래머 등 온건파는 시와 협상해서 영화제를 이어가자는 입장이었다. 수습 차원에서 배우 강수연이 공동집행위원장으로 동원됐지만 결국 강경파는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구원투수 격으로 창립멤버인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이 초대 민간 이사장으로 추대됐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문화융성위원장을 지낸 김동호 이사장-강수연 집행위원장 체제는 친정권 성향이라는 강경파의 비판을 받았다. 그 와중에 2017년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이 돌연사하자, 강수연은 그 빈자리에 이용관 재판에서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홍효숙 프로그래머를 임명해 사무국이 들고 일어났다. 때마침 정권이 교체되며 강경파가 재등판했고, 김 이사장과 강 위원장은 동반 사퇴했다. 결국 이용관은 2018년 1월 대법원 유죄판결을 받고도 일주일 만에 부산영화제 2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이 과정에서 영화판은 두쪽이 났다. 강경파와 온건파는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빈소에서 손님을 따로 맞았고, 부산영화제가 추모의 뜻에서 ‘지석상’을 만들었지만 유가족은 호응하지 않았다. 강수연 추모제 때도 부산영화제 수뇌부는 아무도 초대받지 못했다.

험한 재판 과정을 겪은 이 이사장은 영화제 조직을 충성도 높은 측근들로 채워갔다. 영화진흥위원장을 지내고 마켓위원장으로 온 오석근, 이번 사태의 트리거가 된 조종국 전 위원장이 대표적이다.

허문영 위원장은 예외였다. 영화계 신망이 두터웠던 그는 이미 2018년 위촉이 유력했으나 당시 본인도 이사장 후보에 불과했던 이 전 이사장이 사퇴시킨 바 있다. 문웅 전 사무국장은 “그때부터 이사회 영화인들이 화가 났다. 고 이춘연 대표를 비롯해 서울쪽 이사들은 왜 멋대로 하느냐며 노발대발했다. 그래서 2021년에 뒤늦게 허 위원장을 모셔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이빙벨 사태부터 사분오열된 영화계는 이제 ‘이용관파’와 ‘반 이용관파’로 나뉘어 골이 더 깊어졌다. 허 위원장의 사퇴도 사실 돌발적인 게 아니다. 지난해 영화제가 끝난 이후 이사장이 직원 채용, 예산 수립 등 모든 사안에 과도하게 개입하며 불만을 키웠고, 허 위원장은 그에 대한 문제제기로 사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영화인들이 ‘비토’한 조종국 위원장도 개인 평판보다 절차가 문제였다. 관계자들은 “밀실행정으로 집행위원장을 의사결정에서 배제시키는 구조를 만든 것” 이라 입을 모은다. 이에 대해 이 전 이사장은 “10년 넘게 예산 동결 상태인 여건에서 합리적인 예산 수립과 집행, 부산시와 영진위로부터 오랫동안 지적받아 온 고질적인 계약 관행과 결재 시스템 개선, 이를 효율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조직 개편을 위해 수개월간 집행부 논의를 거쳤다. 결코 서둘거나 일방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영난으로 이사장이 조급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부산영화제는 약 150억 예산 중 국고와 지방교부금 외에 약 40%를 후원금과 광고협찬에 의존하고 있다. 티켓 판매와 마켓 수익은 수억원에 불과하다. 매년 9월 협찬이 들어오기 전에는 인건비가 고갈되는 구조라 임금체불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해 부산시가 지방교부금의 24%를 인건비로 쓸 수 있게 조례를 바꿨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다. 이 전 이사장은 “당장의 임금체불도 부산시의 특별허가를 받아 해결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내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진즉에 물러나려 했다”고 말했다.

석 달 앞으로 다가온 올해 영화제는 무사히 열릴까. 수뇌부 대행체제를 떠받칠 혁신위원회 구성이 한창이지만, 여전히 지배구조가 화두가 되고 있다. 부산 영화계 핵심인사로 꼽히는 김이석 동의대 교수는 “프로그래밍은 어느 정도 준비된 상태지만 대행체제에서 리더십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면서도 “옛날식 카리스마 리더십이 아니라 개방적인 의사소통 구조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면, 영화의 미래를 점치기 힘든 현 상황에 맞는 영화제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들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영화산업 지형도가 바뀌면서 전세계 영화제들도 나름의 위기를 맞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영화제 자체가 올드한 플랫폼이라는 시각도 있다. 부산 콘텐츠마켓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만우 경성대 부총장은 “영화산업은 장르융합성을 살려야 한다. 할리우드만 해도 라디오·TV·필름 등 모든 콘텐트 산업이 다같이 존재하는데, 부산이 영화인들만의 영화제를 고수하는 건 세계적인 트렌드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오동진 평론가도 “300여편의 아시아 영화가 모이는 부산영화제가 아시아형 OTT를 만들 수도 있다. 새 술을 담을 새 부대가 필요한데,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60대 운영진의 거버넌스는 생산력이 다했다.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이용관 이사장의 30년 헌신도 평가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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