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되팔 때 작가에게 보상…거래 음성화 우려도
미술계 ‘추급권’ 도입 후폭풍
미술가가 뒤늦게 말년이나 사후에 인정을 받아 그림값이 껑충 뛰더라도, 소장자만 이익을 보고 정작 노쇠한 작가 자신이나 유족은 아무 혜택도 받을 수 없는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화랑협회 “우리 현실선 시기상조”
그래서 프랑스는 일찍이 1920년에 추급권(Droit de suite)을 법제화했다. 추급권 혹은 작가 재판매보상청구권(Artist‘s Resale Right)은 미술가가 타인에게 판 작품이 또 다른 이에게 재판매될 때마다 그 대금 중 일부를 작가나 저작권을 가진 유족이 배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2010년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면서 EU에서 시행하고 있는 추급권 도입이 거론되기 시작했고 미술가들이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30일 재판매보상청구권 도입을 포함한 미술진흥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미술가들의 10년 넘은 숙원이 비로소 이루어졌다. 한국미술협회·한국사립미술관협회 등 21개 단체 연합인 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도 이 법의 제정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온 바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미술진흥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후 환영 성명을 내고 “미술품은 복제가 쉬운 음반, 도서, 영상물과 다른 특징을 갖고 있어 작가가 최초 판매 후 추가적인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편 미술품의 가격은 작가의 평생에 걸친 창작 노력과 활동에 따른 명성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재판매보상청구권은 미술품의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한 창작자 권리보장 제도이다”라고 밝혔다.
다만 아직 세부사항 중에 정해지지 않은 것이 많고 시행까지 4년이 남았기 때문에, 미술가들은 크게 체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문체부는 “작가·업계 등 미술관계자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되어 제도가 시행될 수 있도록 법 시행을 위한 충분한 준비기간을 뒀다”며 “재판매보상청구권 도입은 공포 후 4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2006년 모든 회원국에서 추급권 도입이 완료된 EU의 경우, 추급권이 인정되는 기간은 저작권이 유지되는 기간인 작가 사후 70년까지다. 반면에 한국에 도입되는 재판매보상청구권은 작가 사후 30년까지 인정된다. 따라서 예술가가 빈곤에 시달리다가 사후에 작품값이 급상승한 대표적인 예인 이중섭(1916~1956), 박수근(1914~1965) 등은 사후 30년이 훨씬 지났으므로 해당되지 않는다.
재판매보상금 요율은 EU의 경우 작품 재판매 금액의 0.25~4%가 로열티로 작가나 유족에게 돌아가며, 로열티는 재판매 1회당 1만2500유로(1770만여 원)를 넘길 수 없다. 한국은 앞으로 작가 및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대통령령으로 요율을 정할 예정이다.
경매업·전시업 등 신고제로 전환
이와 관련해 캐슬린 김 뉴욕주 변호사는 “왜 미국은 EU와 달리 추급권을 도입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문을 뗐다. “이 제도는 신진 미술가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제도이다. 신진 미술가들은 작품의 1차 판매도 힘들다. 그러므로 신진 미술가가 많은 국가에는 유리한 제도가 아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유럽과의 미술 교역에서 자국 미술가들이 이익을 보기보다는 유럽 미술가들에게 돈을 더 주는 결과가 나오기에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것이다.”
김 변호사는 “한국도 이러한 이유로 유럽과의 미술 교역에서 적자만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추급권의 혜택은 극소수의 유명작가에게만 돌아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추급권 도입에 따른 미술품 거래의 투명화 효과도 독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아직까지 기업이나 기관과 같은 대형 고객보다 개인이 주요 고객인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특성상, 개인 고객들의 거래가 활발해야 미술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 그런데 재판매보상청구권이 도입되는 경우, 정부 및 이를 징수하는 관련 기관과 단체 등에게 중요한 거래 정보를 제공하여야 하기 때문에 개인 고객들이 미술품 거래에 부담을 갖게 될 것”이라며 “이 제도로 인해 시장이 왜곡되거나 거래가 음성화할 가능성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한편 발빠르게 대응하는 업체도 있다. 주요 미술품 경매회사인 케이옥션은 미술진흥법 통과 후인 지난 3일, 자사가 구축한 미술품 종합유통체계인 K-Office를 활용하여 재판매보상권이 효과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작품 아카이빙이나 검색 시스템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미술품 유통 내역의 체계적인 관리, 미술품 경매의 낙찰 정보 공시와 유통 경로 표시, 이해관계자의 참여 등에 대한 사전 고지 등을 포함한 ‘공정하고 투명한 미술품 경매’ 로드맵을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했다.
한편 미술진흥법은 화랑업, 미술품 경매업, 미술품 자문업, 미술품 대여·판매업, 미술품 감정업, 미술 전시업 등 미술의 유통 및 감정과 관련한 다양한 업종을 신고제로 바꾸어 제도권 내로 편입하는 안도 포함하고 있다. 문체부는 “이 제도의 도입으로 업계에 대한 짜임새 있는 정책 지원체계가 구축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반면에 화랑협회는 “미술 서비스업자의 신고제가 도입되면, 화랑은 고객, 판매, 그 외 영업정보를 (관련 정부 기관이) 요청할 시 제공해야 하는 등 각종 제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오히려 시장이 왜곡되거나 음성화되는 것은 아닌지, 조정기에 들어선 미술시장이 더 위축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가 깊다”고 밝혔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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