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기발한 ‘우리 시대 다빈치’…“한옥은 휴먼 터치 느껴져 좋아요”
건축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
헤더윅은 ‘팽이 의자’로 유명한 스펀 체어 등의 가구 디자인부터 건축·도시설계까지 폭 넓은 분야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펼치고 있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다. 현대미술 기획사무소 ‘숨 프로젝트’가 기획한 이번 전시에선 헤더윅과 그가 1994년 설립한 헤더윅 스튜디오의 대표적인 디자인 작품 30점이 전시된다. 7.5m 길이 투명 아크릴 막대 6만6000개에 25만 개의 씨앗을 담아 ‘씨앗 성당’으로 불리는 ‘2010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 204개의 성화봉으로 꽃다발 모양을 만든 2012년 런던 올림픽 성화대, 뉴욕의 인공섬 공원 ‘리틀 아일랜드’, 세계적 기업 구글의 신사옥 ‘베이뷰’, 새롭게 디자인된 런던의 명물 이층버스는 물론 최근 서울시에 제안했던 한강 노들섬 재개발 프로젝트 ‘사운드스케이프’ 모델까지. 세계 곳곳에서 존재감을 빛내고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의 사진, 드로잉, 아이디어 모형, 3D 프린트 등이 촘촘하고 정교하게 전시돼 있다. 더불어 프로젝트 탄생 배경과 과정, 완성작품의 영향력과 파장 등 디자인과 건축에 대한 헤더윅의 철학을 읽을 수 있는 영상 및 미디어도 진행된다.
9월6일까지 ‘헤더윅 스튜디오’ 전시
그는 2016년 서울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진행된 전시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상’ 개막 당시 방한했을 때도 승효상 건축가를 만나 오래된 건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 “오래된 것에는 혼이 들어 있다. 모든 게 새것이면 개성도 혼도 없다. 도시의 오래된 부분을 허물지 않고 용도를 바꾸는 방법을 고민한다면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혹시나 해서 한국에서 본 인상적인 건축물을 물었더니 주저 없이 “한옥”이라며 심지어 “한옥에서 하룻밤 자본 경험도 있다”고 답했다.
“높은 빌딩이 즐비한 가운데 한옥이 자리잡은 모습은 나 자신을 겸손하게 만들고 동시에 감성적인 터치를 느끼게 해줬다. 문 안으로 들어서면 정원이 있고, 신발을 놓는 곳(댓돌)이 있고, 그 위에 (대청)마루가 있고, 더 들어가면 방이 있는 구조가 매우 흥미로웠다. 이렇게 겹겹이 쌓인 레이어는 각도에 따라 그 공간을 달리 보이게 하면서 감동적인 장면들을 선사한다. 어느 공간을 가나, 심지어 창문을 열어서 위로 매다는 장치에서도 ‘휴먼 터치’가 느껴졌다.”
헤더윅이 완성한 수많은 프로젝트들에는 늘 ‘기발한 상상력’이라는 수식어가 동반된다. 이 수식을 달게 된 첫 번째 요소는 건물들이 네모반듯하지 않고 매우 흥미롭고 독특한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뉴욕 맨해튼 허드슨 야드의 명물이 된 ‘배슬’은 벌집 모양의 개방형 건물로 유명한데, 이는 인도 라자스탄의 계단식 우물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처음 이 공간의 건축을 의뢰 받았을 때 클라이언트는 ‘반짝반짝 빛나는 조각을 만들어 달라’고 하더라.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참여할 수 있는 조각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한덩어리 같지만 다 펴 놓으면 1마일(1.6㎞)이 되는 거리에 2500개의 계단을 갖춘 조형물을 만들었다. 그래서 배슬은 밖에서 보면 거대한 조각품이고, 안에서 보면 나만의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룸이자 창이다.”
배슬을 비롯해 헤더윅의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인상적인 외형을 가진 건 “감성은 건물의 중요한 기능적 요소”라는 그만의 철학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건물의 기능을 말할 때 안에서 사용하는 자들을 위한 요소, 방이 몇 개인지, 어떤 뷰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동선을 가졌는지 등을 생각하지만 모든 건물은 건물 안과 건물 밖, 양쪽 고객을 위한 기능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건물 안 고객은 고작 몇천 명 내외인 반면, 밖에서 건물을 보며 지나치는 고객은 몇십 만, 몇백 만 명이다. 나는 이들에게도 즐거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룩(외관 이미지)도 건물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깔끔한 선, 작은 제품에만 통해
헤더윅이 주장하는 ‘감성이 느껴지는 건물’을 좀 더 집약적으로 표현하자면 키워드는 ‘휴먼 터치’와 ‘지속가능성’이다. 현대적인 건물들이 들어설 때는 옛날의 문화적 요소를 다 지워버리지 않도록,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다양성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것. 그는 TED 강연에서 “런던 건물들의 수명이 길어봤자 40년”이라고 했다. 40년이 못 돼서 건물이 헐리고 새로 지어지기를 반복한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지구 환경위기를 걱정할 만큼 수많은 유해환경 요소들이 배출되고 있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건물이라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고, 그만큼 지구를 위한 환경을 지킬 수 있다. 그러려면 나 같은 디자이너와 건축가, 또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아티스트 등 다양한 장르의 창조적인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감성’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뭔가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머리와 손, 하트(마음)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리에서 스치는 건물에서도 하트가 느끼는 ‘감성’이 필요하다는 걸 잊고 산다. 서울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굉장히 많은 보물을 갖고 있는 도시다. 오래된 한옥을 그대로 카피하진 않더라도 그 지혜의 일부분을 이어가길 바란다. 한국은 공예문화가 발달해서 내 얘기를 충분히 공감할 것 같다.”(웃음)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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