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록치 않은 계절 희망에 부푼 이유
김연수 지음
레제
책 표지의 시원한 물 사진 때문일까. 이런 여름이라면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홍보 띠지의 문구도 노선이 확실해 보인다.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만으로”. 누구도 이렇게 착하게는 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굴어보자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앞에 현실의 여름은 녹록지 않다는 뜻일까.
작가 김연수의 새 책인데, 작심한 여름 상품 같다. 엄청난 흡인력, 이런 과가 아니다. 오히려 ‘작품’을 남겨야겠다는 부담 없이 내키는 대로 써내린 것 같은 짧은 글 모음집인데, 암울한 이야기도(‘두 번째 밤’) 싱거운 이야기도(‘위험한 재회’) 가슴 치는 사랑 이야기도(‘풍화에 대하여’) 있다. 대체로 픽션인데, 논픽션도 적지 않다. 독자 입장에서도 내키는 대로 골라 읽으면 될 텐데, 김연수는 작품마다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선정해 플레이리스트(노래 목록)를 작성해 두었다. 그러니까 읽으면서 듣는 소설책이다. 주말 오후 냉방 좋은 카페에라도 앉아 한 편 읽고 음악 듣는 3040 여성 독자의 모습이 상상된다.
이제부터 내용 얘기. 책 제목부터 걸린다. 통상 ‘많은’은 ‘여름’을 수식하지 않는다. ‘긴’이나 ‘짧은’이 어울릴 텐데, ‘긴 여름’은 지루하거나 고통스럽기 십상이다. 여름은 지속의 개념이지 양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런데 양적으로, 너무 많다고 했다. 그것도 시원한 물 사진을 배경으로.
이번 여름은 고통스럽더라도 다가오는 새로운 여름들은 얼마든지 “최고의 여름”이 될 수도 있다는 긍정의 메시지다. 그런데 소설가는 긍정 전도사와는 가장 거리가 먼 사람 아닌가? 반전이 있다. 김연수는 표제작 ‘너무나 많은 여름이’에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일본의 한 철학자가 생면부지의 인류학자와 나눈, 인생의 본질을 묻고 답한 서신 교류를 소개했다. 여름을 넘기기 힘든 철학자. 그런데 자기가 죽고 난 이후 여름이 최고의 여름이 될 거라는 희망에 부풀었다고 한다. 이 역설을 이해하는 게 이번 여름의 숙제다.
‘젖지 않고 물에 들어가는 법’도 놓치지 마시기 바란다. 비법이 소개돼 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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