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용부동산 추락, 30조 펀드 시한폭탄 우려 [상업용부동산발 금융위기 경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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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최대 연 7.5%의 배당수익률(기대수익률)로 화제를 모았던 E자산운용의 한 해외 부동산펀드가 만기를 앞두고 손실 위기에 처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은행가의 업무용(오피스) 빌딩에 투자한 이 펀드는 2018년 출시 당시 기대 배당수익률이 연 6.4~7.5%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 2월부터 배당금 지급이 전면 중단됐다. 공실(빈 사무실)이 늘면서 수익이 확 줄었기 때문이다. 매매가격 또한 20% 이상 하락해 올해 10월 만기를 앞두고 원금 손실 가능성까지 커지고 있다. E운용사 관계자는 “임차인 확보와 (만기 연장 위한) 대출 연장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프랑스·중국 등 주요국 도심의 업무용 빌딩이 공실로 신음하면서 국내에서 설정된 해외 부동산펀드에도 ‘경고등’이 들어왔다. CBRE그룹의 보고서에 따르면 3월 기준 전 세계 오피스 공실률은 12.9%에 이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13.1%에 육박하는 수치다. 이로 인한 임대수익 하락으로 부동산펀드의 배당금 지급이 지연·중단되고 있고, 가치가 떨어지면서 만기를 앞둔 펀드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생겼다. 대개 자산운용사·금융사가 주도한 국내 설정 부동산펀드에는 기관·개인투자자 가릴 것 없이 대거 참여하고 있어 대규모 손실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까지 우려된다.
7일 관련 업계와 금융감독원·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국내 자산운용사·시중은행·증권사 등이 설정한 해외 부동산펀드는 지난해 말 기준 71조8000억원이다. 코로나19 직전 불었던 부동산 투자 바람 속에 10년 전인 2013년 말 5조원보다 14배 이상 급증했다. 이 가운데 올해 9조5000억원을 비롯해 3년 내 만기가 도래하는 펀드만 30조원에 이른다. 이들 펀드가 주로 투자한 상품은 최근 미국·프랑스·중국·일본 등지에서 공실률이 치솟고 있는 업무용 빌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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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순위 대출 땐 손해 위험 특히 큰 상황…부동산·담보채권 할인 매각 등 출구 방안 모색해야
업무용 빌딩은 그동안 투자 안정성이 높아 국내·외 자본의 주요 투자처였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의 해외 부동산 투자는 지역별로 투자 업종 편차가 있지만 약 70% 이상이 업무용 빌딩”이라며 “코로나19 이후 시장 변화로 피해가 큰 업무용 빌딩이나 호텔 등에 대한 투자 집중도가 현저히 높아 공실로 인한 충격이 상대적으로 크게 전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실로 인한 가치 하락도 본격화할 조짐이다. 부동산 분석회사인 그린스트리트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미국 오피스 빌딩의 가치는 지난해 동기 대비 25% 하락했다. 펀드 설정 당시 매매가격보다 가치가 떨어져 원금 손실 가능성이 큰 펀드도 적지 않다. 실제 E자산운용의 독일 펀드는 물론 내년 3월이 만기인 M자산운용의 미국 부동산펀드도 자산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이 펀드는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오피스 빌딩 4개 동에 투자한 상품으로, 펀드 설정 당시 매입가격은 2억8600만 달러(약 3750억원)였는데 지금은 2억6000만 달러(약 3400억원)에도 못 미친다.
불안감이 확산하면서 금융당국의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15일 “상업용부동산 같은 대체 투자 자산의 가격 조정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이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의 해외 부동산 투자 현황을 파악 중이라고 밝힌 가운데 특히 해외 대체 투자가 많은 보험사와 증권사가 주요 관리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행인 건 그나마 국내 업무용 빌딩 시장은 수요 증가와 공급 부족으로 견고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펀드 부실에 따른 직접적인 피해 외에도,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미국·유럽을 중심으로 상업용부동산발(發) 금융위기가 밀려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은 “잠재적 위험요소로 미국 상업용부동산발 금융위기가 거론되는 만큼 우리도 위기의 전이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사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세종의 박영준 변호사는 “해외 부동산의 투자수익을 높이기 위해 후순위 대출로 접근했던 경우 손해 위험이 특히 큰 상황”이라며 “계약 만기가 도래하고 있지만 차환에 실패하거나 부동산 매수인을 구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부동산이나 담보채권 할인 매각 등 다양한 출구전략을 검토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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