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중동 유학생이 다 ‘아미’ 아니다

윤준호 2023. 7. 7.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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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거주하는 이란인의 계좌 개설 문제를 취재하려고 국내에 있는 이란 유학생들을 수소문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이란인의 계좌 개설 문제는 2018년부터 지속됐다.

정부는 이란 국적자라고 하더라도 자금 출처와 사용 목적을 증빙하면 계좌를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소미씨는 번번이 은행에서 계좌 개설을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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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거주하는 이란인의 계좌 개설 문제를 취재하려고 국내에 있는 이란 유학생들을 수소문했다. 그런데 인터뷰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웠다. 학생 대부분이 취재를 거부해서다. 이들은 국내 언론이 중동 여학생들을 죄다 K팝 팬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했다.

취재에 응하는 것을 한참 망설였다는 소미(가명·25)씨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 설득 끝에 이뤄진 인터뷰였다. 소미씨는 “‘아미’(그룹 방탄소년단의 팬클럽 이름)도 아닌 내 이야기를 한국 사람들이 관심이나 가질지 싶었다”고 했다.
윤준호 사회부 기자
그는 “계좌 하나 때문에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다는 상황을 친구들이 믿지 못하는 걸 보고 문제를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며 “K팝이 좋아서가 아니라 한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러 온 외국인, 그저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로 사람들이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국내 언론은 중동에서 온 외국인 학생들을 최근 K팝이나 한류 콘텐츠에 열광하는 열성 팬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울시가 BTS 소속사인 하이브와 손잡고 지난달 13일 개최한 ‘BTS 페스타’도 그랬다. 행사 기간 내내 BTS 페스타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다. 히잡을 쓴 여학생이 ‘BTS의 누구 팬이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장면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었다. 폐쇄적일 것이라 여겨지는 아랍권 나라 사람들마저 K팝에 열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K팝이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한국을 찾는 해외 관광객이 늘어나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한국을 찾은 중동의 젊은이들을 아미로 퉁쳐 한국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소비하고 그쳐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한국에서 살아가며 마주하는 문제들은 뉴스에서 쏙 빠져 있다는 것, 이것이 이란 유학생들이 한국 언론에 유감스러운 지점이었다.

한국에 거주하는 이란인의 계좌 개설 문제는 2018년부터 지속됐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 일환으로 한국에서도 이란 국적자의 금융 거래가 제한됐다. 외교부는 은행연합회에 계좌 개설을 무조건 거절하지 말고 적법하게 심사해달라고 협조를 구했다고 입장을 냈지만, 바뀐 게 없다는 게 이란인 단체 측 설명이다.

소미씨 역시 7년째 한국에 거주 중이다. 앞서 이란에서 장학생으로 선발돼 서울에 있는 모 대학 어학당에서 공부했다고 했다. 이후 한국에서 활동하는 이란 무역 관련 회사에서 일했다. 전문성을 갖추려고 한국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는 그는 단지 본인 명의 계좌가 없다는 이유로 2년째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이란 국적자라고 하더라도 자금 출처와 사용 목적을 증빙하면 계좌를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소미씨는 번번이 은행에서 계좌 개설을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거절당한 것만 십여 차례라고 했다. 지난달 또 계좌 개설을 신청했는데, 이번에도 거절당하면 이란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다. 곧 체류 기간이 만료되기 때문이다.

소미씨는 이란에서 한국으로 유학 오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말리고 싶다고 했다. 외국인을 겨냥한 한류 콘텐츠의 지속적인 개발이 필요하다는 뉴스들이 씁쓸한 까닭이다.

윤준호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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