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저널] 신숙주와 해동제국기
조선시대 對日외교 지침서 역할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해외를 찾는 발걸음들이 분주하다. 코로나19 시기를 겪으면서 해외여행을 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갈망이 분출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한·일 관계가 크게 회복되고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일본을 찾는 여행객들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등을 통해 자신이 경험한 여행기를 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조선시대 일본을 다녀온 후 체계적으로 여행기를 남긴 대표적인 인물이 신숙주(申叔舟:1417~1475)이다. 신숙주는 1443년(세종 25) 세종의 명을 받들어 일본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병마에 시달리다가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가족들도 긴 여행을 우려했으나, 신숙주는 흔쾌히 왕명을 받들었다. 26세 신숙주의 당시 직책은 서장관(書狀官)으로, 통신정사(通信正使)와 부사(副使)에 이어 서열 3위였다. 서장관은 외교와 문장에 뛰어난 사람이 임명되는 직책으로, 세종은 집현전 학자 신숙주에게 큰 믿음을 보였다.
최근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일본의 최남단 오키나와에 대한 기록인 ‘유구국기(琉球國記)’에서는 먼저 “유구국이 우리나라와 거리가 가장 멀어 그 상세한 것을 규명할 수 없으므로 우선 조빙(朝聘) 및 명호(名號)의 차례만을 기록하여 후일의 고증을 기대한다”고 하여, 유구국에 대해서는 후대의 자료를 참조할 것을 지적했다. 이어 유구국의 특산물로 유황을 소개하고 해상무역이 발달했다는 것, 남녀의 의복은 일본과 대동소이하다는 것 등을 기록하고 있다.
해동제국기는 신숙주가 일본을 다녀온 지 28년 만인 1471년(성종 2) 겨울에 왕명으로 완성되었다. 이처럼 긴 시간이 소요된 것은 신숙주가 일본 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의 외교관례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해동제국기는 일본에 대한 외교와 여행의 지침서로 자리를 잡아 갔다. 후대에 일본을 찾는 조선통신사들의 필수 목록에 해동제국기가 꼭 들어가 있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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