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자벌레는 산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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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대가 파열되었네요.
손가락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보며 의사가 말했다.
의사의 진단을 떠올리자 갑자기 손가락이 더 아픈 것 같았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에 잠겨 나는 두 달 전에 파열되었고 원상태로 봉합할 수도 없는 인대가 시시각각 통증을 유발하는 내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의 사정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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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두 달 전에 오른손 중지를 다쳤다. 아팠다. 손을 쓰지 않으면 아무 통증도 없었지만 오른손을 어찌 안 쓰랴. 잡다한 집안일은 물론이고 평소 손을 쓴다는 의식조차 없었던 지극히 사소한 동작들, 예컨대 생수병 뚜껑을 돌려서 연다거나 머리를 빗는다거나 심지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도 나는 매순간 오른손 중지 아래쪽에서부터 맹렬하게 치고 올라오는 통증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느꼈다. 그런데도 병원에 가지 않은 것은 이러다 점점 괜찮아지겠지 하고 멋대로 낙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나아지는 것 같다는 착각이 종종 들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너무 미련했기 때문이다.
병원을 나섰다. 근처 녹지 공원으로 문득 발길이 갔다. 폭염경보가 발효된 날이어서인지, 산책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이들로 늘 붐비던 곳인데 아무도 없었다.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았다. 원상 복구가 불가능하다니. 의사의 진단을 떠올리자 갑자기 손가락이 더 아픈 것 같았다. 손을 쓰고 있지 않은데도 통증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벤치에 앉은 채로 일없이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어라, 거기 웬 자벌레 한 마리가 있었다. 녀석은 내 발 앞에서부터 길 건너편 벤치를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사람으로 치면 왕복 16차선 정도 될 짧지 않은 거리인데도 저렇게 부지런히 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그러나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자벌레는 곧바로 몸을 돌리더니 다시 내가 앉은 벤치로 기어왔다. 그렇게 이 벤치에서 저 벤치, 다시 저기서 이리로 녀석은 천천히 오고 또 갔다. 목적지는 없었다. 이동 자체가 목적이었다. 그러니까 녀석은 산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깅을 하고 있었다고 해도 되겠지만 이런 폭염 속에서 조깅은 삼가야 한다는 것쯤 자벌레도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있지 않을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에 잠겨 나는 두 달 전에 파열되었고 원상태로 봉합할 수도 없는 인대가 시시각각 통증을 유발하는 내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의 사정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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