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과 서방 첫 수교 맺은 스웨덴… 믿음직한 세계 외교 가교역할

엄형준 2023. 7. 7.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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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에서 무덤까지', '팝 혼성그룹 아바', '바이킹의 후예.' 스웨덴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표현들이다.

스웨덴이 바로 6·25전쟁 이후 서방 세계에서 처음으로 북한과 국교를 수립하고, 지금도 가장 가까운 나라라는 '외교적 중요성'이다.

스웨덴은 1973년 북한과 외교 관계를 맺은 후, 지금까지 서방과 북한의 가교 역할을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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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과 한반도/이정규/리앤윤/1만5000원

‘요람에서 무덤까지’, ‘팝 혼성그룹 아바’, ‘바이킹의 후예.’ 스웨덴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표현들이다. 그러나 비교적 관심이 덜하거나 잘 알지 못하는 스웨덴에 대한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스웨덴이 바로 6·25전쟁 이후 서방 세계에서 처음으로 북한과 국교를 수립하고, 지금도 가장 가까운 나라라는 ‘외교적 중요성’이다.

6·25전쟁 당시 중립국이었던 스웨덴은 병력 대신 의료지원단을 보내 연합군은 물론 중국과 북한의 포로들까지 돌봤고, 휴전 이후에는 중립국 감독위원회에 참가하며 북한과 인연을 맺었다.
이정규/리앤윤/1만5000원
수교의 계기는 1970년대 들어 중국과 미국이 화해모드를 조성하고 북한이 내부 개발을 위해 서방의 기술을 필요로 하면서 마련됐다. 스웨덴은 정치적으로 사회주의적 목소리가 컸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경제적 기대감이 일면서 기꺼이 북한의 손을 잡았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스웨덴은 1973년 북한과 외교 관계를 맺은 후, 지금까지 서방과 북한의 가교 역할을 해 왔다. 북·미 간의 중요 협상이 있을 때마다 스웨덴이 중재에 나서거나 수도인 스톡홀름이 만남의 장소로 거론된 이유다. 현재도 스웨덴의 평양 주재 대사관은 북한에 대사관이 없는 미국 정부를 대신해 미국 국민의 영사 보호 임무를 맡고 있기도 하다.

북한과 스웨덴 양국 관계에도 굴곡은 있다. 한때 새로운 시장으로 주목됐던 북한은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 원자재 수출 수입이 급감하면서 채무가 늘었고, 이후 스웨덴으로부터 빌린 돈을 거의 갚지 않고 있다. 1976년과 1996년 두 차례에 걸쳐 북한 외교관들이 밀수하다 적발돼 귀국조치된 일도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당당한 태도를 보이며 스웨덴을 당황케 했다. 저자는 그럼에도 스웨덴이 중립 노선과 가치에 기반한 규범 외교 차원과, 빌린 돈을 받고 강대국인 미국과 협력해야 하는 실리적 필요에 의해 북한과의 긴밀한 관계를 지속할 것으로 평가했다.

외무고시에 합격한 후 34년간 직업 외교관으로 활동하고, 주스웨덴 대한민국 대사를 끝으로 정년퇴직한 저자는 스웨덴과 북한의 특별한 관계에 주목했고, 이를 박사학위 논문으로 다뤘다. 책은 그의 논문을 중심으로 살을 덧붙이고 다듬은 결과물이다.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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