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에 외면 받은 만성질환… 외로움과 싸운 투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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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질병과 관련한 책과 드라마를 볼 때면 '병을 없애거나 무찌르는' 내용을 기대한다.
신간 '보이지 않는 질병의 왕국'은 자가면역질환을 앓았던 저자가 20여년간 겪은 투병기다.
그의 병세가 악화하던 시기만 해도 자가면역질환이 거의 연구되지 않았기에 그는 진단을 받지 못하고 병원을 전전해야만 했다.
그의 병세가 악화하던 2012년에는 자가면역질환이 거의 연구되지 않았고 잠재된 정신질환의 표출로 보는 관점이 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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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질병의 왕국/메건 오로크/진영인 옮김/부키/1만9000원
많은 사람이 질병과 관련한 책과 드라마를 볼 때면 ‘병을 없애거나 무찌르는’ 내용을 기대한다. 현대 의학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기대치 또한 높아진 탓이다. 그러나 여전히 질병의 진단과 치료가 ‘칼로 무 자르듯 명확하지’ 않은 질병도 넘쳐나는 것이 현실이다.
그에게 고통은 실체가 있었지만, 암과 같은 명쾌한 진단명이 없다 보니 주변의 이해를 오롯이 얻기는 어려웠다. 오랜 기간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동안 의사의 진단은 ‘마음의 병’으로 기울었다. 그렇게 별 소득 없이 치료비로 빚만 쌓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가 결국 받아든 것은 ‘자가면역질환’.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침입할 경우 T세포와 B세포가 이를 공격해 방어에 나서는데, 자가면역질환의 경우는 면역계가 과도하게 반응하면서 정상 세포를 적으로 오인해 이들을 공격하면서 발생하는 질환이다. 그의 병세가 악화하던 2012년에는 자가면역질환이 거의 연구되지 않았고 잠재된 정신질환의 표출로 보는 관점이 흔했다. 지금은 자가면역질환자 수는 미국에서만 2400만명∼500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과 십수 년의 시간 사이의 변화다. 자가면역질환뿐이 아니다. 일부 암이나 다발성경화증, 결핵은 과거 감정 억압의 결과나 히스테리, 혹은 ‘기력을 빼앗기는 병(Consumption)’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은 마이크로바이옴(특정 환경에 존재하는 미생물과 그 유전정보)와 장 건강의 중요성이 당연한 듯이 강조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주장은 터무니없는 소리 취급을 받았다.
저자는 미국 의료계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한다. 의사는 자기 전공 분야밖에 모르고, 명확한 검사 결과에 의존하는가 하면 대체의학은 보험적용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급성질환은 잘 치료하지만 복잡한 만성질환 치료에는 형편없다”고 일갈한다.
안타깝지만 의학의 눈부신 발전의 혜택이 누구에게나 골고루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지난 3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서 모든 사람이 경험한 것처럼 진단과 치료 등이 세부화하기 전까지, ‘미지의 질병’은 자료나 해답 없이 환자가 그 불확실성을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많은 환자가 보이지 않는 질병의 왕국에서 고통받고 있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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