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의 악순환… 경제적으로 안전할까

이복진 2023. 7. 7.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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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보다 불로소득 수익이 더 큰 세상
내집 마련 ‘영끌’·학자금·카드빚에 허덕
소수 부유층에 부가 빨려 들어가 허탈
현장 경험 바탕 이론 정립한 경제학자
“불평등 근본 원인 직시, 양극화 막아야”

문명의 운명/마이클 허드슨/조행복 옮김/아카넷/3만2000원

국내총생산(GDP)과 국민총소득(GNI)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어째서 내 주머니는 자꾸만 얄팍해질까. 빚을 져서 빚을 갚게 만드는, ‘부채의 늪’에 빠진 오늘날 세상은 과연 경제적으로 안전한 것일까. 부채를 떠안지 않으면 내 집 마련을 할 수 없는 부동산 현실, 취직하자마자 빚에 시달리게 만드는 학자금 융자, ‘내일의 나’에 의존하며 긁어대는 신용카드, 빚을 져서 빚을 갚게 만드는 은행 등 약탈적 금융이 난무하는 오늘날 세상에서는 누구도 경제적으로 안전할 수 없다.

심화되는 불평등과 경기 침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불로소득 계급의 부 획득 방식을 알아야만 한다. 그들은 어떻게 부자가 됐을까. 왜 금융자산과 부동산은 국민총소득보다 훨씬 더 빨리 증가할까. 사회는 “노력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저자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노동으로 얻는 수익보다 불로소득(이자·부동산 임대료·주식 배당금 등)으로 얻는 수익이 더 큰 세계에서는 결국 소수의 부유층들에게 모든 부가 빨려 들어가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모멘텀을 잃은 미국과 경제적 성공을 거듭하는 중국의 갈등,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붕괴 직전의 버블, 상위 1퍼세트 계급의 부 독식 등 저자는 지구적 위기들을 분석하고 다가올 경제적 붕괴를 막기 위해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개혁만이 서구 세계의 양극화 추세와 의존관계를 역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저자는 이것이 과연 정의로운지 질문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을 직시하고 소수 계급이 부를 독점하는 세계를 깨부숴 경제적 양극화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지난 50년간 가장 혁신적인 경제사가이자 가장 중요한 경제사가’, ‘현대 자본주의의 강점과 약점을 해박하고 정확하고 설득력 있게 분석한 인물’,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유일한 경제학자’ 등의 평가를 받는 세계적인 경제학자다. 특히 2006년에 이미 2008년 미국 내 악성 주택담보 대출 위기를 예견했을 뿐 아니라, 이 사태가 미국 주식시장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며 그 여파로 부채 인플레이션을 남기는, 이른바 금융 과잉 현상을 경고한 소수의 경제학자로 주목받았다.

그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교재에서 비롯된 대학 교수들의 세계관과 달리 직접 현장에서 쌓아올린 경험을 토대로 이론을 정립했기 때문이다. 현실 경제에 대한 답이 경제학 교과서에 없음을 깨닫고 월스트리트로 뛰어들어 금융 경제 원리를 체감하고 이해했다. 세이빙스뱅크트러스트에서 3년간 통계분석가로, 체이스맨해튼은행에서 다년간 국제수지 전문가로 일한 덕분에 은행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체득했다. 이러한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과 전 세계 지대를 추구하는 금융화한 현대 경제의 작동을 꿰뚫어보았다. 또한 화폐와 회계의 기원뿐 아니라 노동의 기원과 노동의 대가가 지불되는 방식, 토지 보유와 과세의 기원, 부채의 기원과 역사를 탐구해 이론도 폭넓게 정립했다.

그 분석의 결과는 한마디로 정리된다. “부채는 상환될 수 없고, 상환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상환될 수 없는 부채라면 말소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뜻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이 주장에 대해 저자는 “경제적 붕괴를 초래하지 않고도 부채를 말소시킬 방법이 있다”고 힘줘 이야기한다.

저자는 소수의 지대 수취자 계급이 서구의 경제 통제권을 장악하고, 빚에 시달리는 노동자와 고비용에 허덕이는 산업으로부터 소득을 빼앗아감으로써 새로운 실세가 됐다고 말한다. 미국의 병폐는 금융화한 독점 자본주의 체제에서 지대 수취자 계급이 경제적 지대를 가져간 탓에 산업 생산 비용에 거품이 생기면서 초래된 결과다. 금융화한 체제는 서구 경제를 양극화함으로써 몰락을 재촉하고 있다.
마이클 허드슨/조행복 옮김/아카넷/3만2000원
책은 모두 13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에서는 지대 추구 세력으로부터 경제를 해방한다는 19세기 산업자본주의의 목표가 실현되지 못하고 금융자본주의가 대신 출현한 과정을 설명한다. 2장은 금융자본주의가 고전경제학과 자유시장 개념을 뒷받침하는 도덕철학을 어떻게 뒤집었는지 살핀다. 3장은 이러한 반혁명이 어떻게 국제화해 세계적 금융 과두지배 체제를 확립했는지 추적한다. 4장은 불로소득이자 특혜의 결과라는 고전적인 경제적 지대 개념을 고찰한다. 5장은 봉건제 소멸 이후 유럽을 지배한 지주귀족이 어떻게 오늘날 금융 과두집단으로 변신했는지 설명한다. 6장은 이러한 동력을 국제적인 배경 속에서 살핀다. 7장은 정부가 사회적, 환경적 파괴로부터 경제를 보호하지 못하게 방해하려는 최악의 시도를 설명한다. 8장은 안정을 해치고 양극화를 초래하는 이 경제적 동력이 어떻게 정치화했는지 검토한다. 9장은 지대 수취자 집단이 민주주의 체제에서 어떻게 정부를 장악해 통제력을 공고히 했는지 설명한다. 10장은 미국이 외교 정책으로 다른 나라들의 중앙은행에 예치된 자금을 미국 재무부에 융자하게 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11장은 미국 신자유주의자들의 조언이 어떻게 구소련의 탈산업화를 초래했는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공기업과 공익사업을 지대를 낳는 금융수단으로 바꿔놓았는지 고찰한다. 12장은 고전적인 가치 개념과 지대 개념을 검토한다. 13장은 금융화한 경제, 사영화한 경제가 왜 경제성장과 대다수 주민의 번영과 양립할 수 없는지 이야기한다.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개혁만이 서구 세계의 양극화 추세와 의존관계를 역전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신냉전은 세계 발전의 향후 진로를 결정하고 로마제국이 걸었던 경제적, 인구학적 붕괴의 길을 피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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