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의 악순환… 경제적으로 안전할까
내집 마련 ‘영끌’·학자금·카드빚에 허덕
소수 부유층에 부가 빨려 들어가 허탈
현장 경험 바탕 이론 정립한 경제학자
“불평등 근본 원인 직시, 양극화 막아야”
문명의 운명/마이클 허드슨/조행복 옮김/아카넷/3만2000원
국내총생산(GDP)과 국민총소득(GNI)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어째서 내 주머니는 자꾸만 얄팍해질까. 빚을 져서 빚을 갚게 만드는, ‘부채의 늪’에 빠진 오늘날 세상은 과연 경제적으로 안전한 것일까. 부채를 떠안지 않으면 내 집 마련을 할 수 없는 부동산 현실, 취직하자마자 빚에 시달리게 만드는 학자금 융자, ‘내일의 나’에 의존하며 긁어대는 신용카드, 빚을 져서 빚을 갚게 만드는 은행 등 약탈적 금융이 난무하는 오늘날 세상에서는 누구도 경제적으로 안전할 수 없다.
저자는 ‘지난 50년간 가장 혁신적인 경제사가이자 가장 중요한 경제사가’, ‘현대 자본주의의 강점과 약점을 해박하고 정확하고 설득력 있게 분석한 인물’,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유일한 경제학자’ 등의 평가를 받는 세계적인 경제학자다. 특히 2006년에 이미 2008년 미국 내 악성 주택담보 대출 위기를 예견했을 뿐 아니라, 이 사태가 미국 주식시장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며 그 여파로 부채 인플레이션을 남기는, 이른바 금융 과잉 현상을 경고한 소수의 경제학자로 주목받았다.
그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교재에서 비롯된 대학 교수들의 세계관과 달리 직접 현장에서 쌓아올린 경험을 토대로 이론을 정립했기 때문이다. 현실 경제에 대한 답이 경제학 교과서에 없음을 깨닫고 월스트리트로 뛰어들어 금융 경제 원리를 체감하고 이해했다. 세이빙스뱅크트러스트에서 3년간 통계분석가로, 체이스맨해튼은행에서 다년간 국제수지 전문가로 일한 덕분에 은행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체득했다. 이러한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과 전 세계 지대를 추구하는 금융화한 현대 경제의 작동을 꿰뚫어보았다. 또한 화폐와 회계의 기원뿐 아니라 노동의 기원과 노동의 대가가 지불되는 방식, 토지 보유와 과세의 기원, 부채의 기원과 역사를 탐구해 이론도 폭넓게 정립했다.
그 분석의 결과는 한마디로 정리된다. “부채는 상환될 수 없고, 상환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상환될 수 없는 부채라면 말소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뜻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이 주장에 대해 저자는 “경제적 붕괴를 초래하지 않고도 부채를 말소시킬 방법이 있다”고 힘줘 이야기한다.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개혁만이 서구 세계의 양극화 추세와 의존관계를 역전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신냉전은 세계 발전의 향후 진로를 결정하고 로마제국이 걸었던 경제적, 인구학적 붕괴의 길을 피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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