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훔친 땅에 건국” 트윗... 유니레버 시총 3조원 날렸다
미국에서 소수인종·성소수자의 인권과 다양성을 고양하기 위한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 운동에 올라탄 기업들이 잇따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과도한 PC주의가 주류 사회 질서와 역사·문화를 급격하게 흔들고 악마화하는 데 대해 보수·중도 성향 국민의 염증이 커지면서다. 기업 평판이 나빠지고 매출·주가가 직격탄을 맞아 기업들이 ‘PC 리스크(위험)’ 관리가 필요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는 지난 5~6일(현지 시각) 뉴욕 증시에서 주가가 계속 하락해 이틀 만에 시가총액이 전 거래일(3일) 대비 25억달러(약 3조3000억원) 감소했다. 자회사인 유명 아이스크림 업체 ‘벤앤드제리스(Ben and Jerry’s)’가 4일 미 독립기념일을 맞아 올린 트윗 내용에 격분한 소비자들이 벤앤드제리스 불매운동에 돌입하면서 주가가 내려갔다.
환경·반전(反戰) 등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행동주의 기업으로 잘 알려진 벤앤드제리스는 이날 “독립기념일의 축하 분위기 때문에 미국 탄생에 대한 진실이 가려져선 안 된다. 미국은 원주민에게서 훔친 땅에 건국됐다. 우리는 7월 4일을 기해 땅 반환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는 트윗을 올렸다. ‘반환해야 할 땅’으로 이 업체는 사우스다코타주 블랙힐스에 있는 바위산 러시모어 국립기념지를 첫손에 꼽았다. 러시모어엔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 미국을 빛낸 대통령 4인의 대형 두상이 조각돼 있으며 연 2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 벤앤드제리스는 “원래 주인인 라코타 인디언들에게 러시모어를 반환하고 인디언 조상을 기리는 곳으로 바꿔야 한다”고 썼다.
최근 미 진보 학계에선 개척 시대 원주민 학살·탄압 등을 반성해야 한다는 수정주의 사관(史觀)이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소수인종에 대한 반성과 배려를 넘어, 미 건국 자체를 ‘백인의 도둑질’로 헐뜯는 트윗이 나오자 많은 이가 반발하기 시작했다. 마이크 리 상원의원(유타) 등 각계 인사들이 “평생 벤앤드제리스 아이스크림을 사먹지 않겠다”고 밝혔고, 크리스티 놈 사우스다코타 주지사는 “역사에 무지한 자들이 미 자유의 상징을 헐뜯고 있다”고 비난했다. 벤앤드제리스는 지난 1일 캐나다 건국일 ‘캐나다 데이’에도 “캐나다는 원주민에게서 훔친 땅에 세워졌다”는 트윗을 게재해 캐나다에서도 불매운동이 일고 있다.
미 언론들은 이번 벤앤드제리스 보이콧을 ‘제2의 버드라이트 사태’로 부른다. 지난 20여 년간 미 맥주 판매량 1위 제품이었던 앤하이저부시사(社)의 버드라이트는 지난 3월 전미대학농구 시즌에 젊은 층에게 잘 알려진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 딜런 멀바니를 홍보에 활용했다. 그러자 맥주 주소비층인 중·장년 남성들이 “성전환을 유행처럼 장려하느냐”며 대대적 불매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버드라이트는 1위 자리를 뺏기고 앤하이저부시 주가는 30% 가까이 폭락했다. 버드라이트는 결국 트랜스젠더 모델을 철회하고 전국에 맥주를 공짜로 뿌리는 수준으로 절치부심 중이지만 회복이 쉽지 않은 상태다.
스포츠용품 기업 아디다스는 5월 여성 수영복 모델로 ‘여성 정체성’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흑인 남성 모델을 내세워 논란이 됐다. 여성 선수 단체 등에게 “생물학적 여성을 뭔가 잘못된 존재로 취급하는 극단적 레인보 워싱(rainbow washing·성소수자 인권으로 모든 것을 뒤덮는 것)” “남성의 여성 종목 진출을 정당화한다”는 반발이 일었다. 대형 유통 업체 타깃, 커피 체인 스타벅스, 엔터테인먼트 기업 디즈니도 어린이용 ‘프라이드(Pride·성소수자 슬로건)’ 상품 등을 선보였다가 항의가 빗발치자 이런 마케팅을 슬그머니 접었다.
미 기업들이 지난 10여 년간 성소수자나 소수인종에게 우호적인 마케팅을 벌여온 것은 젊은 소비자들에게 ‘힙’해보이고 정의로운 이미지를 쌓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정·신앙·애국심 등 보수적 가치를 높이 사는 국민들이 ‘더는 우리 영역을 공격하지 말라’고 반격하면서 역풍이 불고 있다. 특히 미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이념 전쟁이 격화되는 지금, 기업들은 진보·보수 양쪽 모두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분석했다.
한편 글로벌 콘텐츠·미디어 기업들의 다양성·평등·포용 증진정책(DEI) 책임자들도 줄줄이 물러나고 있다. ‘흑인 인어공주’와 ‘라틴계 백설공주’를 만든 디즈니, ‘흑인 클레오파트라’로 역사 논란까지 일으킨 넷플릭스, ‘흑인 슈퍼맨’을 내세운 워너 브라더스의 DEI 책임자 등이 ‘블랙 워싱(black washing)’ 논란 가운데 최근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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