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다부동전적기념관
1989년 2월3일 노태우 대통령은 군 원로와 참전용사 등으로 구성된 ‘전쟁기념사업회’ 창립 멤버 159명과 만찬을 했다. 2월4일자 ‘대선배님 깍듯이 예우’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노 대통령은 만찬에서 전쟁기념관 건립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이 자리에는 이형근, 정일권, 백선엽 장군 등이 참석했다. 이듬해 9월28일 노 대통령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기공식에 참석했다. 1994년 6월 개관한 전쟁기념관은 조성 단계부터 전쟁을 미화하는 ‘공간’이라는 논란을 불렀다.
서울 한복판 전쟁기념관을 찾는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느낄까? 전쟁을 ‘기념’하는 것은 평화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는 역설적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곳 전시물들 중에는 이런 취지와 동떨어진 것들이 다수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전시물들도 적지 않다. 1950년 6월28일 국군이 한강 인도교를 폭파해 민간인 수백명이 희생된 사건을 ‘북한군을 방어한 성공적인 전술’로 평가한다. 제주 4·3사건도 ‘공산좌익들의 선거 방해 책동’으로 설명한다. 군인 전사자의 추모 공간은 있지만 희생된 민간인을 기리는 추모공간은 없는 것도 빠지지 않는 비판이다.
경북 칠곡군에는 ‘다부동전적기념관’이 있다. 한국전쟁 역전의 발판이 된 ‘다부동 전투’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981년 건립됐다. 경북도가 이 기념관에 다부동 전투를 지휘한 백선엽 장군의 동상을 세웠다. 백 장군은 한국전쟁 셀프 공적 논란에다가 간도특설대 복무 전력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포함된 인물이다. 동상 제막식이 열린 지난 5일 정문 앞에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역위원회 등이 제작한 ‘친일파가 전쟁 영웅이 되는 나라, 아~대한민국’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기념관에는 이달 중 이승만 전 대통령과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동상도 들어선다. 민간단체가 제작했으나 수년째 설치 장소를 찾지 못한 두 동상을 경북도가 옮겨 왔다. 기념관을 보수들의 성지(聖地)로 만들겠다는 기획으로 보인다.
나라를 위해 애쓴 이들을 예우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독재·친일의 경력을 미화하는 것은 국민의 공감을 받기 어렵다. 보수·진보를 떠나 모두가 기억해야 할 인물들 아닌가. 정부의 ‘역사전쟁’에 올라탄 경북도 행보가 씁쓸하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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