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규제' 묶여 반세기···상대적 박탈감 털고 상전벽해 꿈꾼다 [부동산 집파일]

한민구 기자 2023. 7. 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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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고도지구 완화에 산자락 주거지역 기지개
1972년 남산성곽길 시작으로 규제 확대
경관보호 효과 있었지만 노후화 심해져
서울도 규제서 '관리'로 정책 방향 틀어
개발 막혔던 東후암동, 첫 추진위 구성
이태원2동은 리모델링 → 재건축으로 선회
도봉·강북 등 북한산 일대도 "恨 풀렸다"
[서울경제]

도시에서 본격적으로 높이 규제가 시작된 것은 고층 건물이 대중화되면서부터다. 산업혁명 이후인 1916년 미국 뉴욕시는 용도지역제로 알려진 조닝법을 도입해 높이를 규제하기 시작했으며 서울도 공업화가 개시된 1965년 도시계획법 시행령으로 고도지구 규정을 신설했다. 고도제한이 없다면 대다수의 시민들이 자연경관과 역사 문화 자산을 감상하지 못하는 데 더해 건강과 직결된 일조와 통풍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행령이 제정된 뒤 서울시는 1972년 남산 성곽길 일대를 시작으로 1976년 국회의사당 주변, 1980년 남산 주변, 1990년 북한산 주변, 1993년 구기·평창 등 주요 산과 주요 시설물을 중심으로 고도지구를 넓혀왔다.

문제는 이 같은 규제가 건축물 노후화 등 도시 패러다임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해외에서는 일찌감치 고도제한을 완화하는 움직임이 이어져왔다. 1977년부터 도시경관 보호를 목적으로 건축물 높이를 37m로 관리해온 프랑스 파리시는 2010년 경제 침체 타개책의 일환으로 중심부는 50m, 외곽 지역은 180m로 고도제한을 완화했다. 일본 도쿄시도 1920년부터 가로경관 보호를 위해 황실과 인접한 일정 구역 내 건축물 높이를 31m로 제한하다 2002년 도쿄역 인근을 ‘특정도시재생긴급정비지역’으로 지정하고 황실과의 거리에 따라 150~200m까지 고도제한을 푼 상태다.

반면 서울 주요 산자락에 위치한 수많은 노후 아파트·주택 밀집지들은 그간 방치돼왔다. 소방차도 들어오지 못해 재개발을 추진했던 지역들은 사업성 문제로 줄줄이 정비예정구역에서 해제됐으며 일부 아파트 단지도 재건축 시 층수를 기존보다 낮춰야 하는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고도지구가 지정된 구역과 그렇지 않은 구역 간 개발 격차가 벌어지며 생긴 사회적 박탈감도 문제였다. 서울시의 이번 ‘신(新)고도지구 구상’으로 일대 정비사업은 물론 도시 경쟁력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지난달 말 오세훈 서울시장은 남산 일대를 포함해 ‘경관보호가 필요한 주요 산(남산, 북한산, 구기·평창)’에 대한 고도지구 재정비안을 발표했다.

◇남산 일대 재정비에 약수·후암·이태원 웃고 한남은 ‘갸웃’=‘남산 주변 고도지구’는 현 높이 관리의 기본 방향을 유지하되 지역의 여건에 따라 조정이 이뤄졌다. 이 가운데 규제가 가장 크게 완화되는 곳은 중구 약수역 일대다. 시는 지난해 약수 지구단위계획을 8년 만에 재정비하며 약수사거리 일대에 대한 높이 규제를 대로변의 경우 최고 60m까지 조정한 바 있다. 약수역이 지하철 ‘더블 역세권’일 뿐만 아니라 동호대교와 가까워 강남으로의 접근성이 좋고 인근에 장충체육관·신라호텔·동국대·공원 등이 위치해 개발의 필요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남산에 인접한 약수역 8·9·10번 출구 방면은 지구단위계획상 최고 높이가 20m(완화 시 28m)로 유지돼왔다. 이번 구상으로 이 지역의 높이 규제도 최고 40m로 완화되며 역세권 활성화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와 중구청은 약수역 주변으로 전시회장 등 문화시설 유치를 장려하고 있다. 반면 버티고개역 부근 신당9구역(중구 신당동 432-1008번지 일대)은 2019년 도시계획위원회를 통해 이미 완화된 높이(28m)를 적용받아온 만큼 변화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용산구에서는 동후암동과 이태원2동 일부에 대한 고도제한이 20m에서 28m로 완화됐다. 고도제한 완화 소식에 동후암동에서는 재개발추진위원회 설립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구청 관계자는 “사업성 문제로 그간 정비구역 지정을 포함해 관련 정비가 한 번도 이뤄지지 못했던 지역”이라며 “높이 완화 소식에 일부 주민들이 추진위 구성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동후암동은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과 서울역이 도보 10분 거리인 역세권임에도 건너편에 위치한 서후암동에서는 최고 높이 100m 이하로 재정비 용역이 추진되고 있는 것과 달리 개발이 한 번도 이뤄지지 못했다.

리모델링을 준비하다 재건축을 염두에 두기 시작한 아파트 단지도 나타났다. 1994년 이태원2동에 최고 5층으로 준공된 남산대림아파트(400가구)가 주인공이다. 소유자협의회 측 관계자는 “내년이면 준공 30년이 지나 재건축이 가능해진다”며 “그간 높이 규제를 고려해 리모델링을 추진했으나 이번 완화로 재건축을 원하는 목소리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해당 관계자는 “9층까지 올릴 수 있어졌지만 재건축을 위해서는 최소 12층은 돼야 사업성이 나올 것”이라며 “확정안이 나와야 사업 방향을 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남뉴타운의 고심은 깊어지는 모양새다. 이 일대는 2016년 시가 발표한 ‘한남지구 재정비촉진계획 변경 지침’에 따라 해발 90m로 고도가 제한돼 있다. 남산고도지구에 포함돼 있지 않은 만큼 이번 완화 대상에서는 빠졌다. 다만 남산과 맞닿은 지역들의 고도제한 완화 폭이 28m(9층 수준)에 그치면서 지형 차를 고려하더라도 한남2구역(최고 14층), 한남3구역(최고 22층)이 큰 폭으로 완화될지는 현재로서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북한산 일대 정비사업지 개발 시계 다시 도나=고도지구 중 규모가 가장 큰 구역은 ‘북한산 주변 고도지구’다. 대상지들이 장기간 방치되며 강북구 고도지구안에는 준공된 지 20년이 지난 건축물이 81.4%에 달했으며 도봉구 고도지구의 경우에도 3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 비율이 66.4%에 육박했다.

규제지역이 넓은 만큼 사업성 문제로 좌초된 정비사업도 수두룩하다. 도봉구에서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고도지구의 영향을 받는 재개발 정비예정구역 중 7개소가 사업성 부족으로 구역이 해제되며 개발 시계가 멈췄다. 이 가운데 △방학동 604-35번지 △쌍문동 494-22번지 △쌍문동 524-87번지는 소방차의 진입이 불가능할 정도로 골목이 좁고 낙후된 지역이었다. 오언석 도봉구청장이 “고도지구 내 도로·주차장 등 기반시설이 부족해 주거 환경이 열악한 실정”이라며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고도제한 완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 이유기도 하다.

시는 이에 따라 제2종일반주거지역에 대한 고도제한을 20m에서 28m까지 완화했다. 또한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정비사업 시 최대 15층(45m)까지 추가로 완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다만 15층 수준의 규제 완화를 받으려면 북한산으로의 열린 경관 확보를 위한 ‘경관 관리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야 한다.

도봉구는 이번 고도제한 완화를 재건축·재개발 활성화의 계기로 삼는다는 방침이다. 서울에서는 앞서 고도지구 완화로 정비사업이 다시 탄력을 받은 사례가 있다. 지난해 12월 완화된 ‘배봉산 주변 고도지구’로, 해당 지역은 그간 높이 12m 이하의 고도제한이 적용돼왔다. 그러다 최고 높이가 7층·24m로 조정되며 동대문구 휘경5구역(휘경동 43번지 일원)은 총 634가구(공공주택 45가구 포함) 규모의 신축 아파트로 탈바꿈하는 정비계획안이 확정된 상태다. 대상지는 2016년 정비예정구역에서 해제돼 2018년 다시 재개발을 추진하는 등 부침을 겪어온 곳이다.

강북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고도지구 내 정비예정구역이었던 11개 구역은 사업성 결여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순차적으로 구역이 해제된 후 방치돼왔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공재개발에 희망을 걸었던 3개 지역 △수유동 391번지 △수유동 486번지 △미아동 791번지도 사업성이 낮아 재개발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판단에 따라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번 완화 방안이 발표되며 주목할 지역은 미아 791-2882번지(소나무협동마을)다. 대상지는 정비예정구역으로 선정됐으나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으며 한 차례 해제됐던 곳으로, 현재 신속통합기획에 합류한 상태다. 최대 15층 완화를 적용받기 위해서는 ‘경관 관리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한다고 시가 밝힌 만큼 해당 구역에 대한 신통기획안이 이를 엿볼 수 있는 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순희 강북구청장은 “고도제한 관련 구민 숙원 사업이 결실을 거둬 구민의 ‘한(恨)’이 풀렸다”며 “앞으로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한민구 기자 1mi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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