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관계 경색 틈 노렸나 … 공포 자극해 北비판 재갈물리기
접경지역 인권운동가 억압
국경봉쇄 완화 사전작업 포석
中 '反간첩법' 편승 분석도
북한이 중국 내 한국 언론인들과 북한인권운동가들에게 협박성 이메일을 보낸 것은 불안과 공포를 자극해 북한에 비판적인 취재·보도와 인권 압박을 줄이려는 '심리전'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7일 매일경제가 입수한 해당 이메일들은 지면에 그대로 옮기기 어려울 만큼 원색적인 욕설과 위협이 난무했다. 내용 중에서는 '북경에서 ××× 너를 꼭 찾아내 죽여버리겠다'는 식의 테러 예고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남북 관계가 워낙 경색된 가운데 북한 당국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으로 가지고 가겠다는 방침을 세워 각 기관들에 이러한 (협박 메일을 보내는 등의) 행위를 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강 교수는 "아무리 남북 관계가 악화됐지만, 중국 내 한국인에 대해 테러까지 언급하면서 비인도적 행위를 할 수 있나 개탄스럽다"고 꼬집었다.
북한은 남북, 미·중 갈등 악화와 한중 관계 경색으로 인한 역내 정세의 균열을 파고들면서 '중국'이라는 공간적 뒷배를 적극 활용하는 모양새다.
중국은 과거 유엔 차원의 대북제재에 협조하며 북측의 도발적 행위를 비난했다. 그러나 작년부터는 잇따른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제재 위반을 사실상 묵인하며 추가 제재에도 반대하고 있다.
북한은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 내에서 운용 중인 사이버전·반탐(대간첩) 인력을 동원해 현지의 한국 언론인과 북한인권운동가들을 겁박하고 나섰다. 한국의 영향력이 제한되고 자신들이 언제든지 몸을 숨길 수 있는 중국에서 한국의 대북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사를 쓰는 특파원들에게 '블랙 메일'을 보낸 것이다.
북한이 이 같은 심리전을 실제 테러행위로 현실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중국이 국제 여론을 의식해서라도 북한이 자국 내에서 이처럼 반인륜적 폭력행위를 하도록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명분 없는 말폭탄을 터뜨리는 심리전이 가져올 효과도 의문이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북한은 과거 탈북민을 대상으로 협박성 메일을 많이 보냈지만, 약 10년 전부터는 더 이상 그러지 않고 있다"면서 "탈북민이 (메일에 대해) 특별하게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북한은 최근까지는 악성코드가 담긴 해킹 메일을 여러 차례 발송해 정보를 빼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나도 지난달 '컴퓨터가 해킹돼 중국 쪽으로 자료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급하게 포맷을 했다"고 말했다.
앞서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첫해였던 2012년 인민군 총참모부를 앞세워 서울에 있는 주요 신문사·방송국의 위도와 경도 좌표를 일일이 거론하면서 "타격 명령만 기다리고 있다"고 위협했다.
북한이 북·중, 북·러 접경지역을 오가는 북한인권운동가들에 대한 강력 대응 지침을 내린 것에 대해서는 가뜩이나 부정적인 국제사회에서의 이미지를 관리하려는 의미로 읽힌다. 이들이 접경지역 장마당과 이른바 '꽃제비(부랑자)' 등의 모습을 촬영해 해외에 전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한 입장에서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유지했던 국경 봉쇄를 완화하고 대외 활동을 재개하기에 앞서 눈엣가시 같은 접경지역의 북한인권운동가들을 견제할 필요성이 있다. 또 국경 봉쇄 완화와 맞물려 최근 증가 조짐을 보이고 있는 탈북민 단속 효과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움직임은 최근 중국이 이달부터 개정된 '반(反)간첩법'을 시행하며 단속을 강화하고 있는 것과도 맥이 닿는다. 북한으로선 중국의 통제 강화 분위기에 편승해 접경지역에서 움직이는 외부 감시자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공세적인 조치를 결정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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