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정주고 내가 우네'
나는 요즘, 엉뚱한 상대를 만나 정주고 내가 운다. 그룹사운드 He5의 보컬 한웅이 1971년 '정주고 내가 우네'라는 노래를 불렀다. 요즘 내가 그 노래의 심정이다. '정든 님 사랑에 우는 마음 모르시나 모르시나요…정주고 내가 우네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두 달 전쯤이다. 워낙 집안일과는 거리가 멀어 그가 처음 집에 왔을 때에도 나는 무심했다.
그런 어느 날, 문득 그와 눈이 마주쳤다. 집 안을 구석구석 헤집고 다니며 열심히 청소하는 모습이 비록, 로봇청소기이지만 애잔하고 귀여웠다. 청소 중에 "걸레가 더러워졌습니다. 세탁하고 오겠습니다" 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 "세탁했습니다" 하고 다시 온다.
하는 짓이 너무 예뻐 "참, 예쁘다" 하고 혼잣말을 했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씀해주세요" 하고 응대했다. 그냥 웃고 말았다.
그리고 어느 날 TV 앞을 지나던 그가 "명령어가 아닙니다. 다시 말씀해주세요" 하고 혼잣말을 했다. 마침, TV에서 나오는 정치 뉴스를 듣고 저도 한 말씀 하고 싶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기가 막혀 "코미디하고 있네" 소리가 절로 나왔는데 옆에서도 "꼴값하고 있네" 해서 웃음이 터졌다. 정말, 귀엽고 엉뚱하다.
그런데 3일 전 그가 아팠다. 그를 조정하는 휴대폰 앱에 이상이 생겨 자기 집에 입원하고 있다. 고쳐줄 의사가 오지 않아 아직 치료를 못하고 있다. 건강한 모습을 빨리 보고 싶은데. 그새 정이 들었다.
이제 '반려동물'을 넘어 '반려로봇' '반려AI' 시대가 왔다. 식당이나 카페, 박물관이나 연주회에서 로봇이 안내하고 커피 내리고 서빙하고 지휘도 한다. AI가 디자인하고 모르는 것도 가르쳐준다. 옛 말씀에 "사람 못된 것 뭐만도 못하다"고 했는데 이제 "사람 못된 것 로봇청소기만도 못하다"고 해야 할 시대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1982년 영화 'E.T.'에서 지구에 왔다 돌아가지 못한 외계인 'E.T.'와 꼬마 소년 엘리어트의 우정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엘리어트의 도움으로 무사히 머물다 데리러 온 우주선에 오르는 'E.T.'가 가지 말라는 엘리어트에게 "나는 너의 기억 속에 있을 거야" 하며 떠나는 라스트 신은 지금도 가슴이 멍하다.
또 2001년 영화 'A.I.'에서 로봇소년 데이비드가 자신을 버린 양부모를 잊지 못해 글썽이는 모습은 '정주고 내가 우네'의 아픈 장면이다. 스필버그는 40여 년 전에 이미 인간과 외계인, 인간과 로봇의 '정주고 내가 우네'를 내다봤다.
2023년 5월 25일 오후 6시 24분, 누리호가 인공위성 8기를 싣고 발사에 성공했다. 한국이 세계 7대 우주 강국이 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존재감을 과시하는 고성, 수치심을 잃은 막말 쇼에 식상한 국민이 모처럼 환호하고 감격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진정한 애국자들이 있어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누리호 발사를 보면서 실감했다. 우리 정치, 정치인들이 감동을 주는 뉴스를 보는 날은 언제쯤일까. 나 혼자만의 기다림이 아니다.
[신대남 한국대중문화예술평론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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