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가스라이팅
의존적 관계가 지나칠 위험
종속이 심화돼서는 안되고
성숙되고 자유로운 관계로
한동안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가 대중매체에 자주 등장했다. 생소한 그 단어의 뜻을 찾아보니, '가스등'이라는 오래된 연극의 제목에서 비롯한 용어란다. 내용인즉 다른 이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들고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들어 그 사람에게 심리적 내지는 정신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그 뜻을 파악하는 순간 어딘지 모르게 내 내면에서 섬찟한 느낌이 올라왔다. 왜 그랬을까?
성직자 혹은 수도자로서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의 사정을 듣고 대화를 나누며 필요한 도움을 주는 영적지도라는 종교적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주제가 실제로 심각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겐 나의 활동에 대해 깊이 성찰하며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영적지도라는 맥락이 지도자라는 입장에서 어떤 종교적 혹은 영적 권위를 남용하여 내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하거나 조정하는 상황으로 바꿔버릴 수 있는 여지가 아주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도생활의 영역에서는 '영적지도'라든가 '장상' 혹은 '순명' 등 전통적으로 상하 관계가 아주 뚜렷하게 강조되어 왔기에 요즘 들어서 그 관계 안에 발생하는 부정적인 요소들이 드러나면서 '영적 괴롭힘' 혹은 '영적 권한의 남용'이라는 문제가 논의 주제로 등장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종교적인 맥락에서 '영적지도'는 그 관계를 '스승과 제자', 혹은 '아버지와 자녀' 등 위아래가 분명한 관계로 설정해서 실천해왔지만, 이제 현대에 들어서 점차 '동반자'로 전환되어 이해하는 풍조가 형성되고 있다.
주변을 돌아보니 내가 관계를 맺는 사제들이나 수도자 중에도 소위 카리스마가 강해 주위에 따르는 사람들을 많이 거느린(?) 이들이 있다. 또 사회적으로도 어떤 종교적으로 아주 강한 카리스마로 수많은 사람을 추종자로 만들어 결과적으로는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이 언론에 가끔 고발되는 일도 있다.
내가 살아온 수도자로서의 여정을 돌아보아도 비슷한 모습들이 눈에 띈다. 젊은 수도자로서 늘 정기적으로 영적지도자를 만나 내면의 이야기를 나누고 영적 조언을 듣는 게 중요한 관습이었다. 어느 경우엔 자신도 모르게 지나치게 지도자에게 의존하게 되어 그 관계가 일그러지는 경험도 했다. 또 반대로 나에게 영적 도움을 청하는 이들이 때로는 심리적 기제인 투사를 통해 지나치게 나에게 의지해 의존적인 존재로 변하는 모습에 가끔은 놀라기도 했다.
그런데 이 관계는 분명 그 추구하는 본연의 의미에 따라, 더 성숙하고 더 자유로운 관계로 성장해야 한다. 하지만 내면의 숨겨진 진실들을 다루는 관계이다 보니 마치 조심스레 살얼음 위를 걷는 아슬아슬한 느낌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 균형이 일그러져 관계가 엉망이 될 여지가 많기도 하다. 종교적 상담이건 심리적 상담이건 이것이 사람의 마음속 사정을 다루다 보면 그만큼 관계성이 중요하고,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때로는 그 경계를 넘어서거나 벗어나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다.
이런 경우 내담자에게는 과하다는 판단이 들긴 하지만, 나는 그 관계를 끝내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이 관계의 본질이 자유롭고 성숙한 인간으로의 성장이기에 일그러지는 관계의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인간이기에 친밀함에 대한 애착이 없을 수 없고,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인간적인 욕구가 없지는 않지만,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자유로운 관계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유지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애착이 생기기도 하겠지만, 그 애착에는 서로 종속되지 않는 유대로 이끄는 질서가 있어야 바람직하겠다.
[심종혁 서강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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