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악마의 무기’ 집속탄을 우크라에 지원하나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국제적 논란을 불러 일으킨 무차별 살상 무기 집속탄(cluster bomb)을 지원하는 방침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민간인 살상 위험으로 ‘악마의 무기’로도 불리는 집속탄은 국제적인 금지 협약까지 체결된 무기다.
6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조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집속탄을 포함해 총 8억달러 규모의 추가 군사 지원을 하는 방안을 조만간 발표할 방침이다. 집속탄이 광범위한 민간인 피해 등 전쟁 범죄를 불러 일으킨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를 지원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한 것이다.
집속탄은 하나의 폭탄 속에 수백여개의 ‘새끼 폭탄’을 품고 있는 형태의 무기로, 모폭탄을 투하하면 공중에서 새끼 폭탄이 사방으로 흩뿌려져 광범위한 지역에 폭발을 일으킨다.한 발 터뜨리면 축구장 3~4개 면적을 초토화시킬 수 있을 만큼 위력이 강한 무기로 알려졌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처음 개발했으며, 미군은 베트남전에서 1억t 이상의 집속탄을 사용해 악명을 떨쳤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 모두 집속탄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집속탄의 또 다른 문제는 최대 40%에 달하는 불발탄 비율이다. 새끼 폭탄 중 상당수가 지뢰처럼 불발탄으로 남아 있다가 수년 뒤 터져 극심한 민간인 피해를 일으키는 것이다. 국제인권단체들에 따르면 각종 분쟁지역에서 집속탄으로 죽거나 다친 이들의 절반 이상이 민간인이며, 사상자의 3분의 1은 어린이였다. 집속탄이 처음 사용된 2차 세계대전 당시 이 폭탄 때문에 사망한 민간인은 5만6600~8만65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위험성에 2006년 레바논 전쟁 당시 이스라엘의 집속탄 사용이 문제가 되면서 2008년 집속탄의 사용 및 제조, 보유, 이전을 금지하는 국제협약인 ‘집속탄금지협약(CCM)’이 체결됐다. 120개국이 참여한 이 협약에 따라 전세계 집속탄 비축량의 99%가 폐기됐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 중 3분의 2 가량도 이 협약에 참여했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 우크라이나는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미국, 국제적 논란에도 집속탄 지원 까닭은
미국이 집속탄 지원을 결정한 것은 일단 우크라이나 측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에 대응하기 위해 드론으로 투하할 수 있는 MK-20 집속탄과 포로 발사하는 155㎜ 집속탄을 지원해 달라고 미국에 요청해 왔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전범 무기’라는 오명 탓에 지원에 신중한 입장이었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마지막으로 집속탄을 사용했고, 2015년 이후에는 외국 수출을 하지 않았다. 미국은 2016년 집속탄 생산을 중단했지만 현재 100만개의 MK-20 집속탄을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국제적인 논란에도 불구하고 집속탄 지원 방침을 굳힌 것은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포탄의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은 개전 후 1년간 우크라이나에 200만발 이상의 155㎜ 곡사포 포탄을 지원했다. 155㎜ 포탄은 24~32㎞ 떨어진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어 우크라이나 지상군이 가장 선호하는 포탄이다.
문제는 우크라이나군의 포탄 소진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지난 봄까지 우크라이나군은 동부 격전지 바흐무트에서 장기간에 걸친 소모전으로 엄청난 양의 포탄을 쏟아 부었고, 최근 시작한 ‘대반격’ 작전에서도 매일 7000~9000발의 포탄을 발사해야 러시아군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밝혀 왔다.
이 때문에 대반격 시작 전부터 군사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군이 빠른 속도로 포탄을 소진한다면 앞으로 러시아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 쓸 포탄마저도 고갈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동맹국의 포탄 재고 부족은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전선에서 지구 반바퀴나 떨어진 한국산 포탄에 눈독을 들여온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산 포탄의 폴란드 우회 수출 논의가 나온 것도 서방 동맹국들의 포탄 비축 상황과 무관치 않다.
라이언 브롭스트 민주주의수호재단 연구원은 “집속탄은 적은 수의 탄약으로 더 많은 목표물을 파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군에게 중요한 무기”라며 “미국은 이라크전 이후로 집속탄을 사용한 적이 없기 때문에 많은 양의 집속탄 재고를 신속하게 지원할 수 있어 매력적인 옵션”이라고 AP통신에 말했다. 그는 “집속탄 재고를 활용하면 우크라이나의 포탄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미국과 다른 동맹국의 155㎜ 포탄 비축 압력을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인도적 무기로 분류되는 집속탄 지원은 이 무기의 사용에 오랫동안 반대해온 일부 동맹국과 국제인권단체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의 도덕적 명분도 약화할 수 있다.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미국 정부는 불발율이 낮은 집속탄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패트릭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은 “집속탄 지원은 미국이 오랫동안 검토해온 사안”이라며 “우리가 제공을 고려하고 있는 탄약에 불발 비율이 2.35%보다 높은 구형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인권단체 경고…“집속탄 사용, 전쟁범죄로 이어질 수 있어”
국제인권단체는 집속탄 사용 및 지원 중단을 촉구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이날 성명을 통해 “현재 집속탄으로 민간인들이 희생되고 있으며 앞으로 그 피해는 수년간 이어질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은 집속탄 사용을 즉시 중단하고 이 무기를 더 확보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미국의 집속탄 지원 방침을 두고서도 “민간인에 장기적 고통을 초래할 것”이라며 “집속탄 사용이 국제법을 위반하는 무차별 공격과 전쟁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집속탄 퇴출 운동 단체인 집속탄금지연합(CMC)이 지난해 발표한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6개월간 집속탄으로 인해 689명이 사망했다. 우크라이나 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레바논, 예멘 등 여러 국가가 집속탄 공격을 받은 뒤 수년이 흐른 지금도 불발탄 등의 피해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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